
벨라루스 대통령 선거가 열린 9일 수도 민스크 시내에서 출구조사 결과에 항의하던 시위 참가자 한 명이 무장 경찰에 체포되고 있다. 민스크=AP 연합뉴스
‘유럽 최후의 독재자’로 불리는 알렉산드르 루카셴코 벨라루스 대통령이 6연임에 성공하며 30년 철권 통치를 이어가게 됐다. 그러나 국민을 공포로 억압하는 압제정치에 더해 구 소련 붕괴 후 정치ㆍ경제적으로 의존해온 러시아에마저 등을 돌리면서 벨라루스의 지정학적 고립은 더욱 심화할 것이란 우려가 나온다.
10일 벨라루스 중앙선거관리위원회가 발표한 초기 개표결과, 루카셴코 대통령은 전날 열린 대선에서 80.23%를 득표해 최대 경쟁자로 꼽혔던 여성 야권 후보 스페틀라나 티하놉스카야(9.9%)에 압승을 거뒀다. 다른 세 후보는 2% 미만의 저조한 득표율에 머물렀다. 벨라루스 선거법에 따르면 대선은 등록 유권자의 50% 이상이 투표해 과반 득표한 후보가 당선된다.
1994년 치러진 벨라루스의 첫 자유선거에서 초대 대통령에 당선된 루카셴코는 26년간 권좌를 지키고 있다. 2년 뒤 국민투표를 통해 초대 대통령 임기를 5년에서 7년으로 늘렸고, 2004년 대통령 연임 제한 규정을 없애며 종신집권의 길을 열었다. 그는 집권 초기 정치를 안정시키고 빠른 경제 성장을 이끌었다는 긍정 평가도 받지만, 소련식 권위주의적 통치로 독재 체제를 구축했다는 비판이 훨씬 많다. 지금도 벨라루스 국가 산업의 80%가 정부 소유인 점이 단적인 예다.
그의 당선으로 벨라루스는 한층 더 고립된 처지로 내몰릴 게 확실하다. 미 일간 워싱턴포스트(WP)는 친(親)러시아 노선 폐기 움직임을 이유로 제시했다. 그간 다방면에서 밀접한 교류를 이어온 양국은 석유ㆍ가스 공급가, 연합국가 창설 등을 둘러싸고 의견 충돌을 겪으며 미묘하게 어긋나기 시작했다. 그러다 지난달 루카셴코가 ‘러시아 대선 개입설’을 꺼내 들면서 완전히 돌아섰다. 대선을 겨냥한 테러를 획책했다는 혐의로 러시아 민간용병업체 소속 요원 33명을 전격 체포한 것인데, 러시아 측은 “루카셴코의 정치쇼”라고 맹비난했다.
친미ㆍ친유럽 등거리 외교도 함께 흔들리고 있다. 주요 선거 때마다 끊이지 않는 야권 탄압과 부정선거 의혹 탓이다. 루카셴코는 우크라이나 평화 협상인 ‘민스크 회담’을 이끄는 등 이미지 개선에 공을 들여왔지만, 이번 대선에서도 어김없이 유력 야권 주자들의 후보 등록을 거부하고, 체포까지 단행하며 서방의 신뢰를 잃었다는 평가다. 그나마 선전한 타하놉스카야도 사실 대선 출마를 준비하다 5월 당국에 체포된 반체제 성향의 유명 블로거이자 남편인 세르게이 티하놉스키를 대신해 출사표를 던진 것이다.
내부 위기 역시 대선을 계기로 폭발할 조짐이다. WP는 “이번 선거가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확산 위험을 이유로 사상 처음 유럽안보협력기구(OSCE) 참관인 감시 없이 진행됐다”고 전했다. 러시아와의 갈등, 장기화한 경제 침체로 국민 불만이 급증한 상황에서 이 같은 부정선거 가능성은 성난 민심에 제대로 불을 붙였다.
실제 전날 출구조사 발표 직후 수도 민스크 시내에서는 시민 수천명이 참여한 대규모 반(反)정부 시위가 열려 심상치 않은 대선 후유증을 예고하고 있다. 경찰이 최루탄을 쏘는 등 강제진압에 나서면서 200명의 시위대가 체포됐다고 AFP통신은 전했다. 티하놉스카야 측도 출구조사 발표 직후 “다수는 우리 편에 있다”며 선거 결과 불복을 시사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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