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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국 집권층 '전가의 보도'된 왕실모독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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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국 집권층 '전가의 보도'된 왕실모독죄

입력
2020.08.10 14: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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군부쿠데타 이후 처벌 강도 한층 높아져
16일 대규모 시위... 혐의 적용할지 촉각

태국 반정부 시위의 주최자인 인권변호사 아논 남빠(오른쪽)가 7일 코로나19 비상사태 칙령 위반 혐의로 경찰에 체포돼 조사를 받고 있다. 방콕=AP 연합뉴스

태국 반정부 시위의 주최자인 인권변호사 아논 남빠(오른쪽)가 7일 코로나19 비상사태 칙령 위반 혐의로 경찰에 체포돼 조사를 받고 있다. 방콕=AP 연합뉴스


태국의 반정부 시위가 '왕실모독죄'라는 최대 암초를 만났다. 태국 군부가 2014년 쿠데타 이후 반대세력 탄압 과정에서 '전가의 보도'처럼 악용하고 있는 이 혐의를 시위대에 적용하는 방안을 검토하고 있어서다. 집권세력이 금명간 왕실모독죄 수사를 본격화한다면 태국은 더 큰 정치적 혼란에 빠질 수 있다는 분석이다.

태국 형법 112조에 명시된 왕실모독죄가 무서운 이유는 혐의 적용이 광범위하고 자의적이라는 데 있다. 당초 왕실모독죄는 글자 그대로 왕실 인원에 대해 인신공격을 하거나 그 기원을 부정하는 경우에 대한 단발성 처벌 위주였다. 하지만 쿠데타로 집권한 현 정권은 '모독'에 대한 명확한 법적 정의가 적시되지 않은 점을 이용해 적용 범위를 최대한 확장했다. 2015년 4월 쿠데타와 관련된 계엄령을 해지하면서 "왕실을 모독할 경우 영장 없이 혐의자를 체포 및 구금하겠다"고 발표한 것이다.

실제로 현 정권은 2016년 태국 학생운동의 핵심세력이었던 짜뚜팟 분팟타라락싸를 왕실모독죄로 체포해 교도소에 가뒀다. 왕실에 대해 비판적인 내용이 담긴 영국 BBC방송의 관련 기사를 페이스북에 공유했다는 이유에서였다. 최대 15년 형량까지 가능한 왕실모독죄 적용이 반정부 세력으로 집중되자 활동가들은 연이어 해외로 빠져나갔다. 특히 지난해 12월 추칩 치와숫 등 3명의 도피자들은 베트남에서 행방불명돼 아직 생사 여부조차 확인되지 않은 상태다. 이와 관련, 야권은 "2018년 메콩강에서 발견된 활동가 수라차이 단왓타나누손의 측근처럼 살해됐을 가능성이 높다"고 주장하고 있다.

왕실을 향한 태국인들의 독특한 정서도 법 악용에 활용되는 모습이다. 대학생 등 반정부 시위의 핵심세력을 제외하면 대다수 중장년 태국인들은 반독재ㆍ민주화에 대한 열망을 보이면서도 "왕실만큼은 건드려선 안된다"는 입장이 확고한 편이다. 심지어 시위대 내에서도 "입헌군주제에 대한 발전적 토론과 왕실에 대한 직접적인 비판을 구분하자"는 목소리가 나올 정도다.

하지만 이번 시위를 주도하고 있는 인권변호사 아논 남빠는 왕실모독죄 위협 앞에서도 물러나지 않겠다는 뜻을 명확히 했다.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비상칙령 위반 혐의로 체포된 그는 9일 법원의 보석 결정으로 풀려난 직후 "치앙마이로 이동해 입헌군주제 문제에 대해 연설할 것"이라고 밝혔다. 왕실모독죄 처벌을 감수하더라도 개헌 및 적폐 척결 등 이번 시위의 핵심 주장을 관철시키겠다는 의지다.

태국 집권세력은 아논에 대해 왕실모독죄 적용을 검토하면서도 당장은 상황을 지켜보는 모습이다. 10일 태국 현지 외교소식통에 따르면 정권 내부에선 "왕실모독죄를 너무 빨리 적용하면 시위가 격화할 수 있다", "시위 양상을 조금 더 지켜본 뒤 법 적용 여부를 판단하자" 등의 의견이 제기되고 있는 것으로 전해졌다. 지난달 18일 시작된 태국 반정부 시위는 4주차인 오는 16일 방콕에서 대규모 집회를 예정하고 있다. 아논 등 반정부 시위 핵심 인사들은 이날 군중 연설을 할 계획이다.

하노이= 정재호 특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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