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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석열 검찰총장의 신임 검사 신고식 발언 파장이 거세다. “민주주의라는 허울을 쓴 독재와 전체주의를 배격해야 한다”는 말이 현 정권을 겨냥한 것으로 해석되서다. 여권은 윤 총장이 직접 원고를 작성하며 보수 진영의 현 정권 비난 프레임인 ‘독재’ ‘전체주의’를 동원한데 분개한 모습이다. 보수 진영의 차기 대권주자로 거론되는 윤 총장이 7월21일 주호영 미래통합당 원내대표가 국회 연설에서 언급한 ‘독재’ ‘전체주의’를 재거론하니 “차라리 정치를 하라”는 요구가 나온다.
□ 윤 총장은 지금 고립무원 상태다. 1월 인사에서 측근들은 좌천됐고 7일 인사에선 친정부 성향 검사들이 대검 참모와 주요 보직을 꿰찼다. 이어질 후속 인사에서는 검찰의 직접 수사 축소로 대검 중간 간부 요직들이 대거 폐지된다. 윤 총장의 눈과 귀가 모두 봉쇄되는 모양새다. 더구나 법무ㆍ검찰개혁위가 검찰총장의 수사지휘권 폐지 및 고검장으로의 이양을 권고하고 법무부도 적극 검토 중이라니, 윤 총장은 ‘식물 총장’이 될 판이다.
□ 정치권과 법조계에서 윤 총장의 향후 행보를 놓고 의견이 분분하다. 임기가 끝나는 내년 7월말까지 완주할지, 이참에 정치에 뛰어들지를 놓고 여러 경우의 수가 거론된다. 윤 총장은 정치에 뜻이 없으며, 체질적으로 정치는 맞지 않는다고 누누이 말해왔다. 검사 신고식 발언도 찬찬히 뜯어 보면 자유민주주의와 ‘법의 지배’에 대한 철학과 소신, 누구나 동의 가능한 설득력 있는 수사의 중요성을 원론적으로 강조했다고 볼 수도 있다.
□ 그러나 윤 총장이 ‘독재’ ‘전체주의’라는 정치성 짙은 용어가 몰고올 후폭풍을 전혀 몰랐다고 보긴 어렵다. 검찰과 자신을 옥죄는 현 정권에 대한 작심 비판으로 보이는 이유다. 윤 총장은 2년 임기를 마친다는 입장이지만 상황 변화가 변수다. 야권의 차기 대선주자 선호도 1위로 상승세인 점, 여권의 집중 공격이 자신의 정치적 가치를 높이는 점 등은 윤 총장의 선택을 재촉할 수 있다. ‘독재’ ‘전체주의’ 발언은 결과적으로 윤 총장이 정치에 좀 더 다가서게 만들었다. 하지만 골수 검찰주의자가 변화무쌍한 정치의 세계를 온전히 감당할 수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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