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정부 시위대, 대통령 사진도 불태워
경찰 1명 사망 등 유혈사태 양상으로
美ㆍ佛?등 9일 레바논 원조 화상논의
"국민들은 정권의 몰락을 원한다!"
초대형 폭발 참사가 발생한 레바논 베이루트에서 분노가 극에 달한 민심이 그야말로 폭발했다. 이번 참사가 관리 소홀과 부패 등 정부의 무능 때문인 것으로 드러나자 반(反)정부 시위대가 정부 부처를 습격하고 이 과정에서 유혈사태까지 벌어졌다.
8일(현지시간) 로이터통신 등에 따르면 베이루트의 순교자광장에선 1만여명의 시위대가 모여 경찰과 극한 대치를 벌였다. 시민들이 손에 든 돌과 경찰의 최루탄이 맞선 가운데 일부 군대까지 동원되는 일촉즉발의 상황도 연출됐다. 시위대의 플래카드에는 "국민은 정권의 몰락을 원한다" "떠나라, 너희는 모두 살인자다"라고 적혀 있었다. 진압 경찰 쪽에서 실탄이 발사됐다는 외신 보도까지 나왔다. 경찰 1명이 사망하고 양측에서 170명이 넘는 부상자가 나왔을 만큼 이날 시위는 격렬했다.
일부 시위대는 외무ㆍ경제ㆍ에너지ㆍ환경부 등 4개 정부 부처와 은행협회를 점거하기도 했다. 이들은 미셸 아운 대통령의 초상화를 불태우는가 하면 "사퇴 아니면 교수형"이라고 적힌 푯말 아래 처형대를 설치하는 등 결기를 내보였다. 레바논 정부는 결국 군대를 투입해 3시간여 대치 끝에 시위대를 청사에서 몰아냈다. 영국 BBC방송은 "기관총이 장착된 차량을 탄 군인들이 거리를 순찰하는 모습도 목격됐다"고 전했다.
사태가 심상치 않자 하산 디아브 총리는 서둘러 10일 조기 총선 방침을 밝혔다. 하지만 현 정권에 등을 돌린 민심을 가라앉히기엔 역부족이란 평가가 나온다. 설령 총선이 실시되더라도 경제 실정 등으로 반감을 사고 있는 이슬람 시아파 무장정파 헤즈볼라에 대한 지지가 예전 같지는 않을 것으로 보인다. 디아브 총리가 헤즈볼라의 지지를 얻어 지난 1월 출범한 후에도 경기회복 등의 성과가 없었기 때문이다.
사실 이번 반정부 시위에는 오랜 내전과 경기침체에다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에 따른 경제 악화 등에 따라 악화된 민심이 응축돼 있다는 분석이 나온다. 부패한 정치와 최악의 경제위기 상황에서 대폭발 참사가 곪을대로 곪은 상처를 터뜨린 셈이다. 실제로 외신들은 이날 집회의 규모가 지난해 10월 사드 하리리 당시 총리를 사임하게 했던 집회 이후 최대 규모였다고 전했다.
레바논 국민들은 국제사회의 연대와 구호의 손길에도 마음이 편치 않다. 베이루트를 깜짝 방문했던 에마뉘엘 마크롱 프랑스 대통령을 중심으로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과 시진핑(習近平) 중국 국가주석 등 주요국 정상들이 유엔과 함께 오는 9일 레바논 원조 화상회의를 열 계획이다. 하지만 시위대는 자칫 레바논 정부에 면죄부를 줄까 싶어 "무능한 정권에 더 이상 돈을 쏟아붓지 말라"고 외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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