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엔트로피 제로의 '유토피아'

입력
2020.08.10 04:30
수정
2020.08.10 07:33
26면
0 0

지구 최저기온 (8.10)

근육도 신경도 없고 소화-배설계도 분화되지 않은 최하등동물 해면(sponge)이야말로 '모든 정념이 사라진', 유토피아적 존재라 할 만하다. iucn.org

근육도 신경도 없고 소화-배설계도 분화되지 않은 최하등동물 해면(sponge)이야말로 '모든 정념이 사라진', 유토피아적 존재라 할 만하다. iucn.org


과학이 계산한 이론적 최저 온도는 영하 273.15도다. 그 온도를 절대영도(Absolute Zero), 또는 켈빈영도(Zero Kelvin)라 한다. 우주 입자의 운동에너지가 완벽히 사라지는 엔트로피 제로의 세계. 빅뱅 이전 우주의 씨앗이라는 '무한히 작은 한 점으로 수렴하는 세계'가 거기이고, 종교인들이 말하는 법열마저도 초월한, 무념ㆍ무상ㆍ무감의 세계가 거기다. 소설가들은 '유토피아'라는 절대부정의 조어로 그런 공간을 상상했다.

지구 지상 관측사상 최저 기온은 1983년 7월 21일 구 소비에트 보스토크 기상관측소에서 측정된 영하 89.2도였다. 인류가 상주하는 지역의 최저 기온은 1964년 시베리아 북극권 오이먀콘(Oymyakon)의 야쿠시아(Yakutia)에서 관측된 영하 71.1도, 최고 기온은 1922년 리비아의 57.8도였다. 과학자들은 건강한 사람이라면 최고 160도, 최저 영하 88도까지, 아주 잠깐이라면 노출돼도 죽지는 않으리라 추정한다.

원거리 위성관측 자료로는 시베리아 북극권보다 남극 동부 고원지대가 더 춥게 나타났다. 미국 콜로라도 주립대 볼더캠퍼스 국립빙설자료센터 연구팀이 2004년부터 위성 온도센서로 측정한 바, 2010년 8월 10일 남극 동부 분지의 기온이 영하 93.2도를 기록했다. 그 시점 시베리아는 영하 50도, 그린란드는 영하 30도 수준이었다. 그 기록은 2018년 6월 유사한 지점서 영하 98도가 측정되면서 깨졌다. 연구자들은 습도와 바람 등 극저온에 유리한 날씨가 수 주 동안 이례적으로 계속된 결과였다며, 지구온난화 경향까지 감안하면 그 기록은 어쩌면 영영 깨지지 않을 수 있다고 내다봤다.

유토피아를 꿈꾼 인류의 한계, 지구의 한계가 거기까지다. 하지만 우주에서 가장 차갑다는, 5,000광년 바깥 부메랑 성운의 온도도 절대영도보다는 1도 높은 영하 272도이고, 우주배경복사의 온도도 영하 270도다.


최윤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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