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사 세계 다룬 소설집 ‘내 인생의 사방연속무늬’ 낸 류소영 소설가

소설집 '내 인생의 사방연속무늬' 낸 류소영 작가를 7일 오후 서울 서교동 강출판사에서 만났다. 홍인기 기자
2014년 세월호 침몰 사고는 전국의 교사들에게 특히 깊은 상처를 남겼다. 당시 16년차 교사로 고등학생을 가르치던 류소영 작가도 극도의 무력함에 시달렸다. 법을 지키고 양심을 따르라던, 교사로서 그간 자신이 아이들에게 강조해온 덕목이 무의미하게 느껴졌다.
“저뿐 아니라 모든 교사들이 그랬겠지만, 세월호 이후 한동안은 수업을 하다가도 갑자기 아이들에게 미안하다고 그랬어요. 국가와 제도도 아이들을 보호해주지 못하는 세상에서, 제가 할 수 있는 일이 없는 것처럼 느껴져서요.”
이 미안함은 오히려 그에게 다시 소설을 쓰도록 했다. 1997년 문학동네 하계문예공모로 등단한 후 낸 책은 소설집 ‘피스타치오를 먹는 여자’(2001), ‘개미, 내 가여운 개미’(2013) 단 두 권뿐. 소설가보다 교사로 더 충실히 살아온 삶이었다. 굳이 자신이 아니라도 세상에 필요한 이야기를 쓰는 작가들이 이미 많이 있는 것 같았다. 그러나 세월호를 겪으면서, 젊은 죽음을 무력하게 지켜봐야만 했던 교사로서의 절망과 안타까움을 기록해야겠다는 마음이 들었다.

류소영 '내 인생의 사방연속무늬'
7년 만의 소설집 ‘내 인생의 사방연속무늬’는 이렇게 세상에 나올 수 있었다. 책에 실린 아홉 편의 작품 중 여섯 편의 주인공이 교사다. 가르침에 대한 열의로 달뜬 교사보다는, 회의감, 무기력함, 두려움, 버거움에 갈팡질팡하는 교사들이다. 이런 고민을 바깥에 내보이지도 못하고 속으로만 곱씹다가, 결국 각종 질환에 시달리게 되는 심약한 이들이다.
“저도 그렇지만 제 또래의 많은 교사들이 그래요. 대부분이 여성인데, 그 시절 '여자는 교대 나와 선생 하는 게 제일'이라고 생각했던 부모님 뜻을 거스르지 못하고 교사가 된 경우가 많거든요. 세상은 점점 자기 자신을 거침없이 드러내는 게 중요하다고 하는데, 정작 나는 시대가 요구하는 상과 반대된다고 느끼죠. 나의 늙음, 소심함이 내가 가르치는 아이들에게 안 좋은 영향을 끼칠 것 같은데, 그렇다고 성격을 이제 와서 바꿀 수는 없잖아요. 그런 내적 성향과 외적 상황의 충돌이 마치 질병처럼 느껴졌어요.”
등장인물들이 겪는 혼란과 충돌은 성정에서 비롯하기도 하지만, 경직된 교직사회와 매번 바뀌는 입시정책, 코로나로 인한 갑작스러운 교수법 변화 등 명백한 외부 요인의 작용이 크다. 그 중에서도 류 작가가 가장 크게 혼란을 겪은 일은 지난해부터 이어진, 이른바 ‘조국사태’라고 명명된 진영 다툼이었다.

류 작가는 92학번으로, 민주주의 투쟁의 끄트머리에서 선배들과 함께 했다. 그러나 정작 '정의'를 외치기에는 어딘가 부족하게 경험했다는 열패감이 자신들 세대의 정체성이라고 설명했다. 홍인기 기자
“고등학생들은 이미 사회 현안에 대한 자기만의 생각이 있어요. 이 예민한 청춘들 앞에서 내가 교사로서 어떤 판단을 내리고 발언을 하고 영향을 줄 것인가에 대한 고민이 날로 깊어져요. 조국 전 장관을 둘러싼 여러 이견에 대해 아이들과 얘기를 나누기로 마음 먹고 난 뒤에, 실제 그 이야기를 하기까지 몇 날 며칠을 고민했어요. 과연 어디까지 내 생각을 얘기해도 될지에 대해서요.”
단편 ‘그 무엇도 쉽게 판단할 수 없는 주영씨’의 주인공은 이렇게 말한다. “제가 정부 개편안에 어떤 견해를 갖는지 표명하는 일에 보수적인 인간 혹은 진보적인 인간이라는 색깔이 덧입혀지는 순간이 무척 싫습니다. 그래서 말을 삼키기도 하고, 눈치 보며 절반쯤 뱉었다가 분위기가 우호적이면 논리를 더 이어가 보지요. 사회 선생이라는 자가 그러고 있는 꼴이 참 싫어요.” 류 작가의 고민이 그대로 녹아 든 대목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작가는 책 말미 소회를 밝히며 “독재가, 교실 붕괴가, 바른 교육에의 열정이, 사랑이 다 지나가도 삶은 계속된다”며 희망을 말한다. “교사는 국민이라면 누구나 생에 한번쯤은 거쳐 가는 대상이잖아요. 그러니 욕하기도 가장 쉽고요. 특히 올해 같은 코로나 상황에서 현장의 고군분투와는 달리 오해받아 속상한 순간도 많았죠. 그럼에도 불구하고, 번민하고 괴로워하면서도 아이들을 포기하지 않는 이 내성적인 교사들의 힘으로 세상은 굴러간다고 생각합니다. 그런 동료들에게, 이 작은 책을 바치고 싶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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