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재규어 I-페이스와 함께 경기도 고양시에 위치한 '성령대군 사적'을 찾았다.
개인적인 일정이 생겨, 재규어 브랜드의 첫 번째 전기차 ‘I-페이스’와 함께 고양시를 찾았다.
여러 일을 소화하고 난 후 서울로 복귀하기 전까지 약간의 시간이 남게 되어 지도 애플리케이션을 켜고, 주변을 살펴보게 되었다. 그리고 무척 낯설면서도 낯익은 장소 ‘성녕대군사적’을 보게 되었다.
아직 가보지 않은 곳이었고, 조선왕조 최고의 명성을 가진 세종대왕의 형제이자 태종의 일찍 죽은 세 아들 이후, 역사서에 기록되는 네 아들 중 막내라는 특별함에 ‘성녕대군’의 사적지를 향해 재규어 I-페이스와의 주행을 시작하게 되었다.

재규어 I-페이스, 성령대군 사적
매력적인 드라이빙의 I-페이스
흔히 전기차를 떠올리면 ‘주행 가치’ 혹은 ‘주행 감성’에는 다소 소홀하면서도 주행거리에 집중한 경우가 많다. 그러나 I-페이스는 완전히 다른 존재라 할 수 있다. 실제 재규어 I-페이스는 일반적인 전기차와 달리 주행 가치와 품질의 매력을 제시한다.
참고로 재규어 I-페이스 외에도 최근에 프리미엄 브랜드들이 선보이고 있는 전기차 역시 이러한 흐름에 맞춰 ‘시장에서의 가치’를 더욱 높이고 있다. 어쩌면 재규어 I-페이스는 ‘트렌드를 새롭게 이끌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것이다.

재규어 I-페이스, 성령대군 사적
실제 주행 환경에서 재규어 I-페이스의 가치는 더욱 돋보였다.
전륜과 후륜에 듀얼 타입으로 구성된 고성능 모터 시스템을 기반으로 400마력과 71.0kg.m에 이르는 풍부한 토크를 통해 뛰어난 주행 성능을 보장한다. 실제 재규어 I-페이스의 엑셀러레이터 페달을 밟으면 곧바로 풍부한 성능을 바탕으로 민첩한 움직임을 제시한다.
이를 통해 재규어 I-페이스는 평탄한 도로는 물론이고 오르막과 내리막이 이어지는 상황에서도 더욱 만족스러운 드라이빙을 제시한다. 게다가 이러한 매력에 있어서 단순한 성능의 우위는 물론이고 ‘조향과 차체의 움직임’ 등 섬세한 부분까지도 많은 고민이 담긴 것을 확인할 수 있다.

재규어 I-페이스, 성령대군 사적
실제 전기차임에도 불구하고 ‘스포티한 드라이빙’의 가치를 높이는 다이내믹 모드가 마련되어 있어 이러한 ‘가치’ 그리고 ‘방향성’을 더욱 명확히 제시한다.
실제 다이내믹 모드를 선택할 때에는 조향, 엑셀러레이터 페달 반응은 물론 차체의 움직임 등이 더욱 탄탄하게 연출된다. 이와 함께 다이내믹 모드의 개인화를 더할 수 있는 ‘마이 다이믹’을 마련해 더욱 개인의 취향을 강조해 드라이빙의 즐거움을 누리게 한다.

재규어 I-페이스, 성령대군 사적
덕분에 연이은 조향이나 급작스러운 코너, 혹은 대담하게 코너를 파고들 때에도 여느 전기차는 물론이고 수준급의 내연기관 차량과 비교를 하더라도 부족함이 없는 매력적인 모습을 제시했다. 이를 통해 성녕대군 사적지까지 달리는 동안 ‘즐거움’ 가득한 주행을 누릴 수 있었다.
그런데 왜 ‘성녕대군’이 아닌 ‘성령대군’으로 표기했을까?

재규어 I-페이스, 성령대군 사적
세종의 동생, 성녕대군
조선왕조 중 성군의 으뜸으로 평가받고, 전세계적으로도 ‘위대한 왕’이라는 표현을 손쉽게 볼 수 있는 세종대왕은 수많은 이야기와 성과, 그리고 지금까지도 우리가 ‘과학적이라는 문자’로 손꼽히는 훈민정음은 물론이고 현재보다도 더욱 노동 친화적이고 배려가 담긴 사회 정책을 제시했다.

재규어 I-페이스, 성령대군 사적
과거의 수많은 사극, 혹은 영화와 같은 문화 콘텐츠를 통해 ‘세종대왕’의 의미와 그에 대한 이야기는 널리 알려졌으나, 형제에 대한 이야기는 ‘동생에게 세자 자리를 넘기려 했다는’ 혹은 ‘인륜을 저버린 폐세자’ 등으로 그려지는 양녕대군의 이야기 외에는 딱히 알려진 것이 없는 것도 사실이다.
성녕대군은 태종의 늦둥이 아들이며 세종, 즉 충녕대군의 동생이다. 그 정도에 대해서는 따로 알려지진 않았으나 워낙 똑똑하고 또 총명해 태종과 왕가의 귀여움 속에서 자랐다고 알려져 있다. 여기에 충녕대군의 영향을 받았는지 ‘쇠고기’ 애호가로 알려졌다.
다만 이러한 재능에도 불구하고 행이 있었지만 14세의 나이로 요절하며 비운의 왕자가 되었다.

재규어 I-페이스, 성령대군 사적
고즈넉한 공간, 성녕대군사적
일반적인 조선 왕가의 무덤은 자연스럽게 묘소 외에도 사당과 신도비 등이 자리한다.
하지만 아쉽게도 성녕대군사적에는 사당 건물이 따로 공개되어 있지 않은 모습이었다. 다행이라고 한다면 ‘관리’가 상당히 잘되어 있는 모습이다. 그리고 대중에게도 널리 알려져 있지 않은 만큼 사적지로 가는 길과 그 앞쪽의 공간도 그리 넉넉하지 않다.
하지만 그래서 더 고즈넉하고 또 다른 느낌을 제시한다. 참고로 신도비각에 자리한 세 개의 신도비는 정면이 아닌, 측면으로 돌아 서 있는 모습을 하고 있어 여느 신도비와의 또 다른 느낌을 제시한다. 신도비의 형태나 구성은 조선 초기의 왕가에서 사용한 여느 신도비와 유사한 모습이다.

재규어 I-페이스, 성령대군 사적
사당 왼쪽으로 자리한 돌계단을 걸어 올라가야 묘소를 마주할 수 있다.
묘소는 두 단으로 구성되어 있는데 아래쪽에 두 개의 공분은 원천군과 부인묘가 자리하고 있으며 ‘규모 있는 묘소’에 흔히 볼 수 있는 문인석 등이 함께 마련되어 있다. 덕분에 처음 이곳을 방문하거나 주변 정보가 없는 이들은 이 무덤이 ‘성녕대군’의 묘라 생각하게 된다.

재규어 I-페이스, 성령대군 사적
하지만 실제 성녕대군의 묘는 그 위쪽에 자리한다. 홀로, 그러나 조금 더 거대한 크기를 갖고 있는 묘다. 묘역의 새로운 단장을 통해 새롭게 제작한 구조물과 이전부터 자리하고 있던 문인석 및 구조물들이 함께 어우러져 ‘대군’의 묘라는 것을 더욱 명확히 제시한다.

재규어 I-페이스, 성령대군 사적
멀지 않은 곳, 성녕대군사적
고양시 인근에 자리한 성녕대군사적은 사실 서울에서 그리 멀지 않은 곳에 위치했다. 서삼릉 등 경기도 동북부에 자리한 조선 왕가의 묘소를 둘러보는 ‘역사 탐방’을 생각하는 이들이라면 꼭 들려볼 가치가 있는 장소가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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