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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일보> 논설위원들이 쓰는 칼럼 '지평선'은 미처 생각지 못했던 문제의식을 던지며 뉴스의 의미를 새롭게 해석하는 코너입니다. 한국일보>
지난달 23일 밤 10시18분, 쏟아지는 폭우에 부산 초량지하차도를 지나려던 차 7대가 순식간에 물에 잠겨 3명이 숨졌다. 이날은 올 장마 첫 인명 피해가 발생한 날로 기록됐다. 당시 부산에는 밤 8시부터 호우주의보가 발령됐는데, 행정안전부의 지침과 달리 지하차도 차량 통제는 이뤄지지 않았다. 뒤늦게 경찰 검찰 행안부 등이 책임자 찾기에 나섰으나, 경찰이 사고 현장에서 목숨을 걸고 6명을 구한 소방관들부터 압수수색에 나서자 비난이 쏟아졌다. 첫 단추가 이렇게 잘못 끼워진 이후 16일 동안 수해로 41명의 목숨이 희생됐다.
□ 기상청은 올해 장마가 이달 14일까지 52일간 이어질 것이라 예상한다. 이는 49일이었던 2013년 종전 최장 기록을 경신한 것이다. 장마는 6월 말에 시작해 7월 중순 이전에 끝난다는 상식이 깨어진 지 오래고, 수년 전부터 마른장마가 이어지거나 집중호우가 쏟아지는 이상 현상이 자주 나타난다. 올해처럼 태풍도 없이 장마로 이렇게 많은 인명 피해가 난 것은 유례를 찾기 힘들다. 기상 이변은 이제 더 이상 이변이 아닌 세상이 됐고, 그 대비 역시 상상 이상의 조치가 요구된다.
□ 재해 예방 담당자들의 대처는 과거의 관행에서 좀처럼 변하지 않는다. 첫 사망 사고가 발생하기 하루 전인 7월 22일 행안부 중앙재난안전대책본부의 ‘호우 대처상황 보고’를 보면, 사고에 대비하기 위해 비상 근무에 나선 공무원이 4,910명이고 이중 부산이 346명이었다. 또 이날 기상 특보 발효에 대비해 각 지자체는 ‘상황 관리 및 예찰 활동을 철저히 하라’고 통보가 내려졌다. 하지만 그날 밤 부산 재해 예방 최고 책임자인 부산시장 대행은 기상 특보를 무시하고 퇴근해 예정된 저녁 약속을 끝낸 후 관사로 돌아갔다.
□ 6명이 희생된 6일 ‘의암댐 참사’도 당시 현장의 물살을 직접 확인했다면 도저히 내릴 수 없는 작업 지시가 발단이었을 것이다. 전화선 너머에서 무책임하게 내려오는 지시의 피해와 책임은 늘 그 지시 계통의 가장 말단에 있는 사람의 몫이다. 지하차도 침수 사망의 책임을 당시 구조에 나섰던 소방관에게서 찾으려던 ‘면피 행정’이 의암댐 사고에서도 반복될지 두 눈을 부릅뜨고 지켜볼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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