편집자주
이용재 음식평론가가 토요일 격주로 식재료에 대한 다채로운 이야기를 풀어 놓습니다. 모두가 알고 있지만 실은 아무도 몰랐던, 식재료를 제대로 대하는 법을 통해 음식의 기본을 이야기합니다.
번역한 요리책이 한 권 또 나왔다. 번역을 워낙 좋아하기도 하지만 요리책에는 각별한 구석이 있다. 일단 다른 책에 비해 시각적 사고에 더 많이 기대야 한다. 눈 혹은 입으로만 읽더라도 과정을 머릿속으로 그릴 수 있어야 하므로 매 레시피를 머릿속으로 요리해가며 옮긴다(물론 몇몇은 손으로도 요리한다). 요리 과정 전체를 명료하게 옮기는 것도 중요하지만 읽기 자체도 걸리는 구석없이 매끄러워야 한다. 따라서 머릿속으로 요리하는 한편 문장의 길이나 구둣점처럼 자질구레할 수 있는 요소까지 여러 번 들었다 놓아가며 작업한다. 요리책 번역에 딸려오는, 자질구레하지만 소중한 즐거움이다.
출간 이후 행보도 다른 책과는 조금 다르다. 존재를 알리는 기본적인 홍보 활동에 물질적인 요소가 좀 더 가세해야 한다. 증거 혹은 성과랄까? 요리책이니 따라서 요리를 만들어 낼 수 있다는 확신을 독자에게 안겨줘야 한다. 레시피 자체의 난이도나 실용성도 중요하지만 어쩌면 그보다 재료가 더 결정적이다. 주재료부터 한 자밤 쓸까말까한 향신료까지 구하기 쉽다는 사실 또한 일정 수준 검증돼야 독자는 기꺼이 요리책에 손을 내민다. 사먹는 서양 요리는 익숙하더라도 똑같은 걸 만들어 먹으려면 낯섦을 느낄 수 있는데, 상당 부분 재료가 영향을 미친다.
맑은 눈 생선 고르고, 배는 완전히 가르고
이런 상황에서 낯섦 혹은 부담을 덜고자 권하는 요리가 바로 오늘 살펴볼 생선 꾸러미찜이다. 일단 쉬워서 내가 번역해온 요리책 여러 권에 실릴 정도로 보편적이다. 생선을 골라 사오는 데 요리 자체보다 더 많은 시간과 노력이 들 정도로 조리가 쉽고 간단하다. 그에 비해 꾸러미 덕분에 결과는 꽤 그럴싸하다.
종이 호일 꾸러미가 찜기 역할을 하면서 생선의 과조리를 막아주니 초보자도 실패의 걱정 없이 도전해 볼 수 있다. 다 익은 뒤에는 꾸러미를 열 때 올라오는 김이며 향이 기대감을 고조시키는 한편 보기도 좋아 공감각적인 차원에서 만족할 수 있다. 조금의 과장도 보태지 않고 초보가 만들어도 레스토랑 요리의 분위기를 풍긴다. 물론 통생선이 아니더라도 전혀 상관 없다.
게다가 이름마저도 왠지 그럴싸하다. 나는 문자 그대로 ‘꾸러미찜’이라 옮겼지만 프랑스어로는 ‘앙 파피요트(En papillote)’, 이탈리아어로는 ‘알 카르토치오’(Al Cartoccio)라 부른다. 좋아하는 생선을 꾸러미에 싸서 익힌 뒤 내키는대로 ‘00(생선 이름) 앙 파피요트 / 알 카르토치오’라 부르면 엄청난 요리라도 한 것 같은 효과를 낼 수 있다. 마지막으로 웬만한 생선에 두루 쓸 수 있는 조리법이다. 유난히 눈이 맑아 볼락(맞다, ‘뽈락’이 아니다. ‘주꾸미’가 표준어인 것처럼)을 골랐지만 우럭부터 대구, 가자미 등의 납작한 종류, 삼치까지 소화할 수 있다.
생선 잘 고르는 요령을 늘어 놓자면 한도 끝도 없겠지만 일단 눈을 마주쳐야 한다. 맑고 투명한 눈이 물 좋은 생선의 기본 자격이기 때문이다. 진열된 두 마리 가운데 눈의 상태가 좀 더 좋은 녀석을 마음 속을 점찍어 놓고 직원에게 요청한다. 볼락 주세요. 손질은 복잡할 게 없어 그저 통으로 쪄먹을 거라고만 말하면 되는데, 다음의 몇 사항을 염두에 둔다.
첫째, 배를 완전히 갈라달라고 말한다. 배에 레몬, 양파 등을 채우는 게 꾸러미찜의 핵심이다 보니 배가 완전히 열려 있는 게 중요하다. 다들 손질 기술이 좋아 아가미를 통해 내장만 고스란히 들어내는 경우가 많은데, 그럼 집에 와서 배를 일부러 갈라야만 한다. 딱히 수고스럽지도 어렵지도 않은 일이지만 이왕 손질을 맡긴다면 집에서 아예 아무 일도 하지 않도록 철저히 챙겨 오는 게 좋다. 지느러미는 안 잘라와도 그만이지만 직업 정신이 투철한 이가 생선을 맡았다면 알아서 처리해줄 것이다.
둘째, 껍질에 칼집을 넣지 않는다. 통으로 먹을 거라면 물어보는데 껍질이 온전해야 다 익은 생선살을 발라내기 편하므로 굳이 칼집을 넣을 필요가 없다. 생선과 채소에서 수분이 충분히 나와 생선이 절반쯤 잠긴 상태에서 익을 것이므로 간이 배지 않을까 걱정할 이유가 없다. 셋째, 같은 맥락에서 소금 또한 쳐올 필요가 없다. 미리 절일 필요가 없을뿐더러 우리가 많은 요리에 쓰는 바닷소금은 입자가 너무 굵어 생선처럼 섬세한 식재료에 잘 배어들지도 않는다.
마지막으로 손질해 온 생선은 포장을 뜯어 키친 타월로 물기를 말끔히 닦아내 냉장 보관한다. 생선 손질에 물을 많이 쓰다 보니 포장에도 딸려 오는 양이 많은데, 생선의 신선도 유지에 도움이 안 되므로 귀찮더라도 집에 오자마자 처리한다. 이때 내장이 말끔히 발라졌는지 뱃속을 한 번 확인한다.
눈을 마주쳐가며 싱싱한 생선을 골랐다면 장보기는 끝난 것이나 다름 없다. 나머지 재료라고 해 봐야 기본으로 마늘, 양파와 레몬, 그리고 ‘옵션’으로 입맛에 따라 생강과 고수 정도가 전부이다. 분량은 20~25㎝ 안팎의 생선 한 마리가 최대 2인분이다. 혼자라면 한 마리를 다 먹어도 상관 없지만 여러 명이 먹는 상황이라면 한 마리의 몸통 한 쪽씩이 한 사람에게 돌아간다고 계산하면 된다. 마늘과 양파는 제한이 없고 레몬은 생선 한 마리에 한 개쯤 쓴다.
채소 넣고 호일로 감싸 25분간 쪄
‘재료를 준비했으면 이제 본격적으로 조리를 해보자’라고 쓰고 싶지만 사실 이 생선 꾸러미 찜에는 본격적인 조리 과정이랄 게 없다. 시작했다 싶을 때 끝나버린달까. 일단 오븐을 200℃로 예열하고 은박지와 종이 호일을 생선을 덮고도 남을 만큼 여유 있게 잘라낸다.
마늘과 양파, 레몬은 내키는 대로 썰어 준비한 뒤 은박지 위에 종이 호일을 올린다. 원래 종이 호일만 한 겹 감싸 익히는 조리법이지만 모양이 잘 잡히는 은박지를 밖에 덧대면 꾸러미를 여미고 열기가 쉬우며 배어나온 수분으로 종이 호일이 찢어지더라도 국물을 잃거나 요리를 망치는 걸 막아준다.
종이 호일에 올리브기름을 끼얹고 소금을 한 자밤쯤 솔솔 뿌린다. 그 위에 생선을 올리고 뱃속과 표면에 소금간을 넉넉히 한다. 마늘과 양파, 레몬(쓴다면 고수와 생강도)을 뱃속에 채우고 표면에도 올린 뒤 올리브기름 약간을 생선 전체에 골고루 끼얹어 마무리한다.
익은 생선 국물, 즉 소스가 좀 더 풍성하기를 원한다면 손톱만하게 깍둑 썬 버터 몇 점을 올려도 좋다. 마치 사탕을 포장하는 것처럼 은박지와 종이호일을 한꺼번에 집어 꾸러미를 여미고 쟁반 등에 얹어 오븐에 넣는다. 20~25분 가량 구운 뒤 꺼내 5분쯤 두었다가 꾸러미를 연다.
쪄진 생선은 약간의 수고를 들여 살을 통째로 발라낼 수 있다. 젓가락보다 자잘하게 쪼개지는 생선살을 한꺼번에 들어올리기 좋은 포크와 숟가락을 쓴다. 숟가락을 뒤집어 생선의 몸통을 가볍게 누르고, 포크로 옷의 시접을 터 실밥을 뜯어내는 것처럼 가장자리를 누른다.
등쪽과 배쪽 모두 이 과정을 거친 뒤 포크를 배쪽부터 살 밑으로 넣어 훑으면 생선의 윗쪽 몸통 전체를 통째로 들어낼 수 있다. 대가리와 등뼈, 꼬리 지느러미를 한꺼번에 들어내고 역시 몸통 가장자리의 가시를 포크와 숟가락으로 걷어내면 아랫쪽 몸통 또한 전체를 들어낼 수 있다. 이렇게 요리가 끝났다.
살도 다 발라냈겠다, 어떻게 먹어도 상관 없지만 오랜 세월 꾸러미찜을 해온 경험을 바탕 삼아 좀 더 잘 먹는 요령을 소개해보자. 일단 접시가 따뜻해야 생선의 맛을 좀 더 오래, 찬찬히 즐길 수 있다. 섬세한 편인 흰살 생선을 간접 조리인 찜으로 익혔다면 살을 발라 상온의 접시에 올리면 생선의 온도가 빨리, 많이 내려가 맛이 없어진다.
따라서 접시도 따뜻하게 데우는 게 좋은데 습관이 안 돼 있다면 번거롭다 생각이 들 수 있다. 다행스럽게도 생선 꾸러미찜은 오븐 조리이므로 남은 열을 활용할 수 있다. 오븐을 끄고 생선을 꺼낼 때 담아 먹을 접시를 준비해 살을 바르는 동안 넣어둔다. 데워진 접시는 뜨거우므로 반드시 행주 등을 써 꺼낸다.
가는 파스타 면 위에 올리면 완성
한편 단백질에는 아무래도 탄수화물을 곁들여야 맛있는데, 꾸러미찜에는 파스타 가운데서도 가장 가는 앤젤 헤어가 여러 모로 잘 어울린다. 끓는 물에 넣고 단 2분이면 다 익으므로 생선살을 발라내는 짧은 시간 동안 익힐 수 있는데다가, 최대한 간단하게 조리하자는 꾸러미찜의 정신과 아주 잘 맞는다. 또한 파스타치고도 가늘어서 생선의 기를 죽이지 않는데다가 부들부들해 살에 착착 감긴다.
말하자면 육쌈 냉면의 해물 파스타 버전이랄까. 삶은 파스타를 달군 접시에 담고 종이 호일 바닥에 고인 국물, 즉 소스를 넉넉하게 끼얹고 들어낸 생선살을 얹는다. 맛을 보고 레몬즙을 좀 더 끼얹어도 좋다. 마지막으로 고수부터 이탈리안 파슬리, 쪽파까지 좋아해서 사왔거나 그저 집에 있는 향신채를 다지듯 썰어 솔솔 뿌리면 꽤 그럴 듯한 한 끼가 30~45분만에 완성된다.
많은 사람들의 주장과는 달리 모든 요리가 쉽지 않지만 이 생선찜은 진짜 쉽고 간편하다. ‘아니 우리 집에는 오븐이 없는데’라며 아쉬워할 이들을 위해 첨언하자면 꾸러미째 그대로 찜기에 얹어 쪄도 된다. 만약 찜기도 없다면 역시 꾸러미째 전자레인지에 넣어 20분 가량 돌린다. 물론 이 경우 화재를 막기 위해 은박지는 쓰지 않는다.
음식평론가
기사 URL이 복사되었습니다.
댓글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