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43>여행의 시작과 끝, 기억에 남는 국제공항
소설가 알랭 드 보통은 런던 히드로 공항에 상주해 이면을 지켜보며 ‘공항에서 일주일을’을 썼다. 책에서 그는 “비행기를 타는 것은 우리 자신의 해체를 앞둔 마지막 순간을 어떻게 가장 잘 보내느냐 하는 문제를 제기하곤 한다”라고 썼다.
1년 넘는 장기간 여행을 계획했고 코로나19로 인해 퇴진, 귀국했다. 소화하지 못한 비행편은 모두 휴지 조각이 되었으나 출발지인 인천공항과의 대면은 안심이자 희망이었다. 공항은 나라의 첫인상이자 끝 인상이다. 이 나라에서 저 나라로 승객을 나르는 물리적 기능에만 머물지 않는다. 때론 여행자의 기대와 흥분, 아쉬움과 후회 등 '감정의 파고'가 요동치는 곳이다. 절대 접합할 수 없는 양극단을 동시에 품고 있기에, 공항은 만남과 이별처럼 늘 양날의 검이 된다.
‘언젠가, 다시’란 기약은 코로나19로 인해 무기한 연장되었다. ‘그럼에도 언젠가는’ 떠날 그날, 경유지가 아니라 목적지로 둘러볼 가치가 있는 공항을 소개한다. 물론 공신력 있는 기관에서 선정한 세계의 공항 순위와는 무관한, 개인적 여행 경험을 바탕으로 정한 목록이다.
작품이길 원한다, 오만 무스카트 국제공항
오만의 거의 모든 박물관은 그 자체가 명품이다. 오지 속 오지의 박물관에도 자기 나라의 자산을 보호하고 발굴하려는 노력이 절박하게 묻어 있다. 그러기에 박물관 앞에서 입장료 때문에 주저한 바 없고, 돌아나올 때는 입장료를 더 냈어야 한다는 자발적 기부의 감정마저 꿈틀거린다. 오만의 공항도 그렇다. 돈을 내고 들어서야 할 듯한 황송함이 밀려온다. 차세대 공항의 선두주자가 되고자 하는 의지는 상점 진열장에도, 바닥에 비춰지는 천장 조명에도 드러난다. 세계 공항 서비스 평가에서 12년 연속 1위를 한 인천공항으로부터 운영 노하우를 전수받은 제자이기도 하다. 올해까지 세계 톱 20에 들고자 하는 그들의 소망은 이루어질까. 코로나19가 그 단단한 의지를 흐트러뜨린 건 아닐까.
거인 나라의 진수를 보다, 네덜란드 스키폴 국제공항
공항에 도착하자마자 동공이 커진다. 이곳의 서체는 무엇이든 큼직하고 시원시원하다. 호탕한 거인국에 안착한 듯한 인상이랄까. 노랑, 파랑, 검은색의 삼단 컬러가 중심을 잡고, 노안이라도 돋보기가 필요 없는 선명한 픽토그램이 길을 헤맬 기회조차 허락하지 않는다. 스키폴 국제공항은 네덜란드 디자인의 자부심이자 자신을 명확히 아는 사람 같다. 디자이너에겐 설레는 흥분감을 안기고, 여행자에겐 ‘승객 우선’을 목표로 비행기를 타거나 편의시설을 이용할 위치를 적확하게 알린다. 알랭 드 보통이 ‘여행의 기술’에서 밝힌 것처럼 이곳에서 이국적인 즐거움을 누린 바 있다.
인도 그 자체, 인디라 간디 국제공항
인도를 그리워하며 속앓이할 무렵, 돌고 돌아 인디라 간디 국제공항을 경유지로 택한 바 있다. 이 공항은 거의 절규 수준이다. ‘여기가 인도다’라는 분명한 사실을 못을 박듯 거듭 강조한다. 인도를 잊지 말라는 미련을 남기게 한다. 위용을 갖춘 힌두교 신이 조각물로 전시되고, 바닥에 깔린 구김살 없는 패턴 카펫이 인도 방문을 환영한다. 많은 이들에게 인도 여행은 카오스 자체로 인식된다. 막가파식 교통 체증과 갈피를 잡을 수 없는 걸인의 구걸, 유쾌할 리 없는 유행성 도둑, 갠지스강에 떠도는 죽음 등 인도에 지레 겁먹는 여행자가 많다. 인도를 그리워하게 되는 가장 큰 이유가 이 공항이 될 줄은 정말 몰랐다.
누구나 어디든 갈 수 있다, 독일 프랑크푸르트 국제공항
유럽의 허브로서 전 세계를 끌어안는 무(無)맛의 공항이다. 겉은 차가워 쿨한 척하는 엄마 같다. 독일의 공항이라기보다 어디로든 떠날 자격을 주는 국경 없는 공항으로 다가온다. 늘 멀게만 느껴지는 중남미 직항편이 흔한, 세계 여행의 거점이다. 공항을 산책하는 맛도 좋다. 23㎢에 달하는 공항은 2019년 7,000만에 달하는 방랑자를 수용했다. 공항은 전 세계의 도시를 가지런히 모아놓고 중립을 지킨다. 그럼에도 카페는 맛으로, 상점은 진열 상품으로 다양성을 수용한다. 당신이 가고 싶어 하는 곳이 어디든 데려다준다고 큰 소리치는 공항이니 이보다 로맨틱할 수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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