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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떤 나라를 만들려 하는가

입력
2020.08.06 18:00
수정
2020.08.06 18:12
22면
0 0
이준희
이준희한국일보 고문


소수 존중 없는 다수 만능이 독재론 근원
문제는 매 정권 무한 반복되는 정치 폐습
독재 비판 발끈하기보다 성찰 계기 삼길

김도읍 미래통합당 법사위 간사와 의원들이 27일 국회에서 열린 법제사법위원회 전체회의에서 윤호중 법제사법위원회 위원장에게 주택 임대차 보호법 등이 의안정보시스템에 이미 처리된 것으로 나온다며 항의를 하고 있다. 오대근기자

김도읍 미래통합당 법사위 간사와 의원들이 27일 국회에서 열린 법제사법위원회 전체회의에서 윤호중 법제사법위원회 위원장에게 주택 임대차 보호법 등이 의안정보시스템에 이미 처리된 것으로 나온다며 항의를 하고 있다. 오대근기자


독재의 의미는 간단하다. 압도적 권력을 쥔 집단이 장기간 독단적으로 일을 처리하면 그게 독재다. 의미를 확장하면 극심한 배타 정치의 다른 표현이다.

무엇보다 우리 정치사에서 독재는 흔한 수사(修辭)적 관용어다. 이전이야 제쳐 두고 YS 이후로도 독재 소리 안 들어본 정권은 하나도 없다. 심지어 노무현 정권도 한미FTA 등 주요 정책 결정 때마다 들었다. 같은 진영에서까지. 이명박·박근혜 정권 때 야당의원들은 입에 달고 살았다. 하도 상투적으로 쓰는 바람에 독재가 협치의 상대어쯤으로 가벼워졌다.

비교수준이 아님을 전제하자면, 현대 독재의 전형인 소비에트의 프롤레타리아독재나 중국의 인민독재 등이 계급적 배타성에 바탕 한데 비해 우리 역대 정권의 독선적 정치행태는 정파적 배타성을 지녔다. 정상 선거를 통해 권력을 획득했고, 기본적인 민주적 정당성을 확보하고 있다는 점에서 다를 뿐이다. 그래서 민주독재는 늙은 강아지나 둥근 사각형 따위의 말장난 같은 형용모순이 아니다. 충분히 가능한 현실태(態)다.

그런데도 현 집권진영은 유독 예민하다. 특히 당권주자인 김부겸 전 의원이 거칠게 반발했다. 독재와 싸워 봐 잘 안다면서 “누가 누구더러 독재라는가”라고 일갈했다. 대의제민주주의 원칙대로 하는 것뿐이라는 취지다. 데자뷔가 느껴지지 않는지.

MB정권의 예산안 강행 처리 당시 여당이 딱 이 논리로 방어벽을 쳤고, 야당은 “독재자 이명박”으로 규정하고는 김 전 의원이 “지겹지도 않냐”는 장외투쟁에 나섰다. 공교롭게 지난 연말 예산안 역시 유사한 논리로 제1야당 없이 변칙 통과됐다. ‘코드인사는 국정철학 공유자, 입법 밀어붙이기는 국민적 요구와 민생의 시급성, 청문회 부적격자 임명은 대통령 인사권 존중…’ 사안, 방식, 용어 선택마저 다르지 않은 이런 입장 전도 사례는 양 진영 공히 하도 많아 따지는 일도 의미 없다. 저들은 독재였으나 우리는 아니라는 인식도 그래서 내로남불식 기망이다.

김 전 의원이 “민주주의 작동원리부터 다시 생각”해 보라 했으니 이것도 짚자면, ‘민주적으로 선출된 권력이라도 그 자체로 정당성을 부여받는 게 아니라 실천 과정이 민주적이지 않으면 언제나 책임이 추궁돼야 하는(최장집 교수)’ 체제라는 것이 현대 민주주의 일반론이다. 민주주의의 요체는 절차와 작동 방식이라는 뜻이다. 소수에 대한 존중 없는 다수 만능주의, 그게 민주독재다. 이조차 그들이 야당 시절 수없이 비판했던 내용이다.

독재 공방은 부질없다. 정작 암담한 것은 우리 정치가 아무리 정권이 바뀐들 이전 사고와 폐습을 답습하는 무한반복 구조에 빠진 상황이다. 더 나빠졌다는 반대자들의 주장에 동의할 순 없어도 나아졌다고도 말하기 어렵다. 오래도록 민주주의 인권 정의를 외치고, 공존 정의의 국정철학으로 남다른 기대감을 키운 정권이어서 오히려 낙담은 더 크다.

사실 현 정권의 정체성을 구성하는 86세대 중심인물들이 더 민주적일 것이라는 건 어쩌면 착시다. 과거 이들이 학습한 것은 민주주의론보다는 혁명론에 가까웠다. 목표 달성을 위해 일사분란하게 단결하고 효율성을 최우선하는 혁명 방식은 전체주의적 문화와 가깝다. 의외로 민주주의 방식에 서툰 것도 이 때문일 것이다.

여권은 독재 비판에 새삼스레 발끈하기보다는 차라리 근본적인 성찰의 계기로 삼길 바란다. 평등 정의 공정의 철학은 접어두고 절차적 민주주의마저 가볍게 여기며 만들고자 하는 것이 어떤 나라인지를. 나아가 민주화운동 경력을 훈장처럼 누려온 자신들로 인해 도리어 민주주의가 훼손된다고 비판받는 이 아이러니를 어떻게 설명해야 하는지를.

이준희 고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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