길어진 폭우 탓 복구 작업 지연... 돌아갈 기약 없어
농작물 피해 막심하고 예약 취소에 펜션들도 한숨
"8시쯤 아침 식사 준비를 하는데 갑자기 밖에서 '쿵' 소리가 나더니 흙탕물이 무릎까지 차올랐어요."
경기 가평군에서 90대 시어머니를 모시고 사는 최금선(55)씨는 3일 오전 가슴 철렁했던 순간을 생생하게 기억하고 있었다. 전날부터 내린 비가 이날부터 갑자기 폭우로 돌변하면서, 신축 공사 중인 윗집으로부터 쏟아진 토사가 자택을 덮친 것이다. 옥상 물탱크는 바닥으로 떨어져 산산조각 났고, 집안 곳곳에 흙탕물이 들어찼다. 최씨 가족은 마을회관으로 대피해 3일째 그 곳에서 숙식을 해결 중인데, 언제 집으로 돌아갈 기약이 없는 형편이다.
가파른 지형 탓에 복구작업 지연
경기 가평군 일대를 덮친 집중호우에 삶의 터전을 잃은 수재민들의 고통이 이어지고 있다. 긴급 복구 작업으로 고립됐던 마을은 어느 정도 숨통이 트였다지만, 가파른 산세 탓에 중장비가 들어갈 수 없는 좁은 지역이 많아 복구는 쉽지 않다.
가평군 중에서도 특히 수해 피해가 집중된 상면 임초리 주민들은 "평생 살면서 이런 폭우는 처음"이라고 입을 모았다. 최씨 바로 옆집에 사는 구남순(87)씨의 피해는 심각했다. 공사 중인 윗집 축대에서 쏟아진 토사물로 집 한 쪽 벽이 완전히 무너져, 구씨는 딸 남순애(48)씨 집으로 대피했다. 남씨는 "어머니가 정신이 없는 와중에도 한평생 살아온 집이 걱정되는지 '집 마당 구석에서라도 자겠다'며 떼를 쓰신다"며 "전날 군청에서 피해 조사를 하고 갔는데 '복구가 어려울 정도로 심각하다'는 이야기를 들어 망연자실한 상태"라고 상황을 전했다.
마을 진입로 위 15m 높이 축대가 무너져 내리는 산사태로 고립됐던 다른 마을 주민들도 놀란 가슴을 쓸어내리고 있다. 바위와 토사로 막혔던 도로가 정비되고 수도와 전기 공급이 복구됐지만, 집중 호우로 약해진 지반 탓에 추가 피해 위험이 남아있기 때문이다. 축대 위 주택에 거주하는 최모(66)씨는 "오후 8시쯤 갑자기 큰소리가 나 밖에 나가보니 옆집 마당 절반이 무너져 내렸다"며 "3시간 뒤 소방관들의 부축을 받아 인근 펜션으로 가 밤을 지샜다"고 당시 긴박한 상황을 회상했다.
농경지 배수 안 돼 농작물 피해 눈덩이
설상가상으로 기습 폭우에 따른 농작물 피해도 이만저만이 아니다. 이곳 주민들은 가파른 경사 탓에 작은 밭에 참깨나 고추 등을 키우는 경우가 많은데, 단시간의 많은 비가 내린 탓에 배수가 되지 않아 농작물이 썩어 못 쓰게 된 경우가 태반이었다. 김모(61)씨는 "6월에 심은 고추가 바람에 다 쓰러져서 남아 있는 게 하나도 없다"고 한탄했다. 펜션을 운영하는 김영애(54)씨는 "월요일부터 예약 취소가 빗발쳐 이번달 장사는 아예 공치게 됐다"며 울상을 지었다.
현재 복구 작업이 원활히 진행되기 쉽지 않은 상황이라, 주거지와 일터를 잃은 수재민들의 고통은 당분간 계속될 전망이다. 비가 멈추지 않고 있는 데다, 중장비 진입이 어려운 골목 등은 인력으로밖에 작업이 불가능해 빠르면 6일부터나 본격 복구가 가능할 전망이다.
현지 공무원들과 주민들은 일단 추가 피해를 막는 일에 힘을 쏟고 있다. 윤대영 임초2리 이장은 "도로 유실 위험이 있는 곳에 안전 펜스를 치는 등 추가 피해를 막기 위해 군청, 면사무소, 소방 등과 함께 총력을 기울이고 있다"고 말했다. 도로 주변에서 토사를 치우며 복구 작업에 나선 우즈베키스탄 출신 나니(22)씨는 "오전 7시부터 나와 이곳 저곳을 다니며 바위와 흙을 치우고 있다"며 "피해를 입은 한국인들을 돕는 일이 중요하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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