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폭탄 테러? 사고?... 베이루트 참사 원인 혼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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폭탄 테러? 사고?... 베이루트 참사 원인 혼선

입력
2020.08.05 11:29
수정
2020.08.05 21:55
2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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트럼프 "끔찍한 공격... 군 당국, 폭탄 판단"
美 국방부 관계자 "공격으로 볼 징후 없어"
레바논 총리 "질산암모늄 6년간 보관된 곳"
이스라엘 개입ㆍ美의 헤즈볼라 응징설도


4일 레바논 수도 베이루트에서 발생한 대규모 폭발 참사의 피해자가 인근 병원 밖에서 치료를 기다리며 응급처치를 받고 있다. 베이루트=AFP 연합뉴스

4일 레바논 수도 베이루트에서 발생한 대규모 폭발 참사의 피해자가 인근 병원 밖에서 치료를 기다리며 응급처치를 받고 있다. 베이루트=AFP 연합뉴스


4일(현지시간) 레바논 수도 베이루트에서 발생한 대규모 폭발의 원인을 두고 혼선이 일고 있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은 곧장 테러 가능성을 내비쳤다. 하지만 미 군당국 내부에서 공격 징후가 없다는 전언이 나오는데다, 레바논 정부도 참사 장소가 인화성 물질 보관 창고라고 밝혀 사고 가능성에 무게를 뒀다. 검증되지 않은 트럼프 대통령의 성급한 판단이 혼란을 가중시키고 있다는 지적이 나온다.

트럼프 대통령은 이날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태스크포스(TF) 브리핑에서 “미국은 레바논을 지원할 준비가 돼 있다”면서 이번 폭발을 “끔찍한 공격”으로 규정했다. 그는 공격 근거를 묻는 질문에 “그것은 공장 폭발과 같은 형태의 사고가 아니었다”며 “장성들을 만났는데 나보다 더 잘 알고 있을 그들은 공격이었다고 생각하는 것처럼 보인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그것은 일종의 폭탄이었다”고 덧붙였다. 사실상 폭탄 테러에 가깝다는 견해를 내비친 것이다. 앞서 케일리 매커내니 백악관 대변인은 “베이루트 폭발 건을 면밀히 추적하고 있다”고만 밝히면서 판단을 유보했다.

종합하면 미상의 폭발을 테러로 결론 내린 미 당국자는 트럼프가 유일하다. 그러자 행정부 안에서부터 대통령 발언에 반박하는 목소리가 터져 나왔다. CNN방송은 “국방부 관계자 3명은 ‘이번 폭발이 공격에 의한 것임을 보여주는 징후가 없다’고 말했다”고 보도했다. 이들은 대통령이 무엇에 대해 말하는지 모르겠다는 반응을 보였다고 한다. 한 관계자는 “이 정도 규모의 공격 징후가 있으면 자동적으로 미군이나 지역 자산을 보호하기 위한 병력 증강이 이뤄져야 하는데 그런 움직임이 아직 없다”고 말했다. 미 정부 고위 관계자도 일간 뉴욕타임스에 “지금까지 내가 본 모든 것은 비극적 사고를 가리킨다”고 단언했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4일 백악관에서 열린 코로나19 브리핑 도중 레바논 베이루트 폭발 참사에 관해 말하고 있다. 워싱턴=로이터 연합뉴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4일 백악관에서 열린 코로나19 브리핑 도중 레바논 베이루트 폭발 참사에 관해 말하고 있다. 워싱턴=로이터 연합뉴스


레바논 측 반응도 크게 다르지 않다. 현지 매체들은 이번 참사가 폭발성 물질에서 비롯됐다고 전했다. 하산 디아브 레바논 총리는 기자회견에서 “폭발이 발생한 베이루트 항구 창고에 약 2,750톤의 질산암모늄이 6년간 보관돼 있었다”면서 “어떤 예방조치도 없이 보관된 사실을 받아들일 수 없다”고 말했다. 이어 “이번 재앙에 책임 있는 사람들은 대가를 치를 것”이라고 강조했다. 관리 부실에 따른 사고 가능성이 크다는 얘기다.

하지만 참사 원인이 무엇인지를 떠나 진상 규명이 늦어질 경우 중동정세에 악영향을 미칠 가능성이 농후하다. 벌써부터 현지 무장단체와의 연결고리를 찾으려는 정치적 움직임이 나타나고 있다. 미 폭스뉴스는 이날 소식통을 인용, “창고 안에 질산암모늄 외 폭죽과 휘발유, 무기 등이 함께 보관돼 있었을 가능성이 있다”고 보도했다. 미국과 사우디아라비아 정부는 그간 레바논의 친(親)이란 시아파 민병대 헤즈볼라가 사고 발생 항구를 통해 이란산 무기를 밀반입하고 있다고 비난해왔다. 사실상 이란과 헤즈볼라에 사고 책임이 있다는 지적이다.

레바논에서 수년간 활동했다는 로버트 베어 전 미 중앙정보국(CIA) 요원도 폭발 영상의 오렌지색 화염구를 근거로 들며 "질산암모늄이 아닌 군사용 폭발물이 참사의 직접 원인"이라고 CNN에 밝혔다. 다만 베어 전 요원은 참사가 "누군가의 공격이 아닌 사고처럼 보인다"고 덧붙였다.

거꾸로 미국이 헤즈볼라를 응징하기 위해 고의로 사고를 일으켰다는 주장도 나온다. 일각에서는 7일 2005년 암살된 라피크 하리리 전 레바논 총리 사건에 대한 유엔 특별재판소 판결이 예정된 만큼, 배후로 지목된 헤즈볼라가 내부 혼란을 조성해 여론의 관심을 돌리려 했다는 '음모론'을 제기하고 있다.

이스라엘 개입 가능성도 거론되고 있다. 이번 폭발이 앙숙 관계인 이스라엘과 헤즈볼라 간 긴장이 고조되는 가운데 발생한 탓이다. 실제 레바논 군 고위관계자는 미 일간 워싱턴포스트에 “이스라엘 개입 의혹이 있어 조사가 완전히 마무리되기 전까지는 결론을 내릴 수 없다”고 말했다. 폭발 시점에 전투기 소리를 들었다는 증언이 있고, 최근 몇 주 동안 이스라엘 정찰기와 드론 비행이 증가했다는 게 근거로 제시됐다.

이스라엘 측은 즉각 부인했다. 이스라엘 국방 당국자는 자국 매체 예루살렘포스트에 “보안군은 헤즈볼라의 공격에 맞서기 위해 북부 국경지대에서 높은 경계 태세를 유지하고 있지만 이번 폭발과는 관련이 없다”고 선을 그었다. 레바논이 수용할 가능성은 작지만 오히려 피해 지원에 적극 나서겠다는 의지를 보이기도 했다. 베냐민 네타냐후 이스라엘 총리는 이날 유엔과 지원 방안을 협의할 것을 지시했고, 차기 총리로 내정된 베니 간츠 국방장관 역시 외교 채널을 통해 레바논을 돕겠다는 의사를 전달했다.

워싱턴= 송용창 특파원
강유빈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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