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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국공 사태' 그후... "불안한 나날" "억울한 심정" 상처입은 사람들

입력
2020.08.05 20:00
수정
2020.08.06 17:17
12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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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집자주

이왕구 논설위원이 노동ㆍ건강ㆍ복지ㆍ교육 등 주요한 사회 이슈의 이면을 심도깊게 취재해 그 쟁점을 분석하고 해법을 모색하는 코너 입니다. 주요 이슈의 주인공과 관련 인물로부터 취재한 이슈에 얽힌 뒷이야기도 소개합니다.


정규직 전환을 기다리고 있는 인천국제공항의 보안검색요원들. 영종도=배우한기자

정규직 전환을 기다리고 있는 인천국제공항의 보안검색요원들. 영종도=배우한기자


지난 6월 21일 인천국제공항공사가 비정규직인 보안검색 노동자 1,902명을 청원경찰로 전환해 직접고용하겠다는 계획을 발표한 이후 몇주 동안 우리 사회에서는 대(大)논쟁이 벌어졌다. 양극화 해소를 위한 비정규직의 축소와 기회의 공정성 보장이라는 가치가 양립할 수 있는지를 놓고서다. 한달여가 지나면서 논쟁은 다소 잠잠해졌지만 공사 내부의 갈등은 고조되고 있다. 공사는 보안검색 노동자들의 직접 고용 문제를 올해 안에 완료하겠다는 계획을 밝혔지만 노사갈등, 노노갈등으로 이행을 장담할 수 없는 상황이다. 정규직 노조는 보안검색직을 청원경찰로 전환하는 결정이 기존 합의와 어긋난다며 지난달부터 구본환 사장 퇴진운 동을 전개하고 있고, 최근 용역회사에서 자회사로 소속을 임시로 옮긴 보안검색 노동자들은 불안한 기색을 드러내고 있다. 이해당사자 사이의 복잡미묘한 갈등을 해소하지 않은 채 시간이 흘러갈 경우 감정의 골만 깊어질 것은 분명한 사실. 지난주 정규직 전환대상인 보안검색 노동자들과 이들의 공사 직고용에 반대하고 있는 정규직 직원들을 만나 속내를 들어보았다.

소방직 전환 탈락자 나오자 동요하는 비정규직

“정규직 전환이 공식 발표되면서 이제 계약 때마다 가슴 졸이는 파리목숨에서 벗어나게 된다고 해 기뻐하고 있었는데, 공사에서 정규직 전환과 관련된 세부논의를 미뤘다고 합니다. 현장에선 갈팡질팡하고 있어요.” 2009년부터 공항 보안검색직으로 일하고 있는 김진우(가명ㆍ36)씨가 전한 보안검색직들의 요즘 분위기다. 외부에서는 이들의 정규직 전환을 기정사실로 간주하지만 이들보다 먼저 전환 절차를 밟고 있는 소방직 재직자 236명 중 34명이 탈락하면서 공기가 달라졌다. 문재인 대통령이 공사를 방문한 2017년 5월12일을 기점으로 이전 입사자 대부분은 서류전형, 인성검사, 적격심사, 면접을 거쳐 정규직으로 전환된다. 그러나 5월12일 이후의 신규 입사자들과 관리자급은 필기시험(NCSㆍ국가직무능력표준 시험)까지 통과해야 정규직으로 전환된다. 고참 관리자들 중심으로는 시나브로 불안감이 번지고 있는 것. 김씨는 “관리자들은 20년 가까운 경력을 쌓았는데도 아무런 가산점이 없고 혹시라도 탈락하면 자회사에 남는다는 보장도 없다”며 “자발적으로 자회사에 남겠다는 사람들까지 나오고 있는 실정”이라고 귀띔했다.

2018년 1월에 입사해 필기시험 대상자인 박민수(가명ㆍ29)씨도 복잡한 심정을 토로했다. 그는 2터미널 개항에 맞춰 공사가 700명 가까운 보안검색 요원을 대거 채용할 때 입사했다. 입사 뒤 2년 이상 검색과 판독업무를 하며 경력을 쌓았지만 정규직이 되려면 아무런 가산점도 없이 외부 지원자들과 경쟁해야 하니 솔직히 억울하다는 생각이 든다고 한다. 박씨의 관심은 채용절차에 체력검정의 포함 여부다. 소방직의 경우 체력검정에서 탈락자가 여러명 나왔기 때문이다. 그는 “사나흘에 한번씩은 철야근무를 하기 때문에 시험준비만하는 신규 응시자들과 비교하면 체력적으로 문제가 있을 수밖에 없다”며 “시험공부를 할 시간도 부족한데다 체력검정까지 진행한다면 공사가 ‘공정’이라는 잣대로 기존직원을 떨어뜨리려는 마음 먹은 것으로밖에 볼 수 없다”고 한숨을 내쉬었다.

입사 5년차 소방직 최성우(가명)씨는 실제로 지난달 진행된 정규직 전환과정 체력검정과정에서 탈락해 재시험을 요청했다. 최씨는 “매일 계속되는 훈련 중 허리를 다쳤는데 정규직 전환과정을 앞두고 있어 회사 눈밖에 날까 산재 신청도 하지 않았다”며 “훈련 중 부상이라는 이유로 예외적으로 재시험을 치를 수 있게 됐지만 지금 몸 상태로는 통과할 수 있을지 모르겠다”고 걱정했다. 공사 측은 소방직 전환과정 탈락자에게 특별한 구제책은 없다는 입장. 공사 측은 “취업정보를 제공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좋은 일자리에 ‘무임승차’하려고 한다는 오해를 받으면서 보안검색 요원 등 전환대상 비정규직들은 가슴앓이를 하고 있지만 외부의 곱지않은 시선에 하소연도 제대로 못하고 있다. 김대희 인천공항 보안검색노조(1노조) 공동위원장은 “일하다가 마주치는 공사직원들이 ‘로또 맞은 사람들, ‘알바몬 출신’이라며 수근거리기도 한다”며 “(신분을 감추려) 유니폼 위에 겉옷을 입고 출퇴근 하는 조합원도 있고 식당에 가는 걸 꺼리는 이들도 있다”고 말했다. 박민수씨는 ‘보안검색을 할 때 면도날 하나, 칼 하나 나올까봐 온신경을 곤두세우는데 이른바 인국공 사태 후 인터넷 댓글을 읽어보며 자괴감을 느꼈다. 요즘엔 뉴스도 안 본다”고 씁쓸해했다. 노조는 부정확한 정보로 불필요한 공정성 논란을 폭발시킨 ‘연봉 5,000만원 소리질러’ 카톡 메시지 이용자를 추적해 명예훼손 소송까지 검토하는 등 흔들리는 조합원들을 다독이기 위해 진력하고 있다.


반발하는 정규직 "공사는 너희들 의견 필요없다 식"

지난 1일 오후 서울 청계천 광통교 일대에서 열린 공항공사노조(정규직) 집회. 노조가 ‘공정문화제’라 명명한 이 집회에는 비가 오락가락하는데도 주최 측 추산 2,000명 가까운 조합원과 시민들이 모였다. 정규직 직원들은 ‘기회는 평등하게 과정은 공정하게’ ‘원칙 없는 정규직화 중단하라’같은 피켓을 들고 선전전을 벌였다.

이들은 ‘보안검색 분야 전원을 공사 정규직으로 고용’한다는 내용의 1차 노사전 합의(2017년 12월)가 졸속으로 처리(당시 정규직 노조는 옵저버로 합의에 불참)됐으며 지난 2월의 3차 노사전 합의도 공사가 보안검색직의 청원경찰이라는 선택지를 배제했기 때문에 정규직 노조가 합의를 한 것이라고 주장했다. 허인무 노조 사무국장은 “보안검색직을 청원경찰로 바꾸는 방식은 공사의 고려대상이 아니었고, 그런 결정을 내린 과정을 우리에게 설명하지도 않았다”면서 “이런 식으로 일방적 정규직화가 진행될 경우 갈등이 너무 커져 결국은 회사가 쪼개질 수밖에 없는 상황”이라고 말했다. 실제로 3기 노사전 합의에 참여했던 한 전문가는 “당시 청원경찰 전환도 검토되기는 했지만 우선순위가 아니었다”면서 “경비업법 개정을 통해 보안검색직을 직고용할 것인지, 청원경찰로 전환할 것인지 후속논의가 필요한 상황”이라고 전했다.

입사 5년차라는 공사 직원 민소원(가명)씨는 “정부 비정규직 정책의 기본방향은 동의하지만 합의 내용을 바꾸어 (청원경찰화) 결정을 한 건 문제”라며 “이해당사자들이 다시 논의를 해 이런 결정을 내려진다면 우리도 따르겠다”며 새로운 협상의 필요성을 강조했다. 입사 8년차인 김정수(가명ㆍ35)씨도 공사 측의 일방적 태도가 문제라고 목소리를 높였다. 그는 “회사의 대화방식이라는게 ‘나라에서 하는 일이니 너희들 의견을 들을 필요는 없다’는 식이었다”며 “꼭 보안검색직의 공사 직고용만 고집할 것이 아니라 항공보안 전문공기업 설립 등 비정규직들을 흡수할 대안을 고민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정규직 조합원들은 특히 자신들의 행동이 비정규직의 정규직화를 반대하는 ‘특권계급 청년들의 이기주의’로 비춰지는 점에 대해 강하게 반발했다. 자신을 서울 소재 대학의 지방캠퍼스를 졸업하고 공사에 합격했다고 밝힌 김씨는 “아버지가 명예퇴직 당한 뒤 작은 트럭을 끌고 전국에 장사를 하러 다니셨던 집안 출신”이라며 “어렵게 공부해 다섯번이나 시험을 친 끝에 합격했는데 ‘금수저’취급을 받으니 억울하다”고 말했다.

정규직 노조의 ‘공정성’ 문제 제기에 호응하는 시민도 많았지만 연대를 추구해야할 노동운동 조직이 사실상 비정규직의 정규직화를 반대하는 대규모 거리선전전을 펼친 점에 대한 비판적 시각도 공존했다. 이날 행사를 지켜본 한 시민(56)은 “채용 과정의 불공정에 문제 제기하는 점은 공감하지만 (이런 행동이) 정규직의 이기주의로 보이는 점도 분명하다”고 말했다.

인천공항공사 직원들이 1일 서울 중구 예금보험공사 앞에서 열린 ‘투명하고 공정한 정규직 전환 촉구 문화제’에서 정규직 전환 과정의 문제를 제기하는 구호를 외치고 있다. 뉴스1

인천공항공사 직원들이 1일 서울 중구 예금보험공사 앞에서 열린 ‘투명하고 공정한 정규직 전환 촉구 문화제’에서 정규직 전환 과정의 문제를 제기하는 구호를 외치고 있다. 뉴스1



공공부문 정규직화 정책… 화룡점정일까 용두사미일까

인천공항 정규직화 문제는 단순한 일개 공기업의 노사문제가 아니라 문재인 정부가 추진해 온 공공부문 비정규직의 정규직화 정책의 정당성을 상징한다는 점에서 정부와 정치권, 시민사회 모두 주목하고 있는 사안이다. 2017년 7월 정부가 공공부문 정규직 전환 가이드라인을 발표한 이래 전환 목표인원(20만5,000명)의 90%인 17만4,000명이 정규직화(2019년 12월 기준)됐다는 점에서 인천공항 문제 해결 여부가 문재인 정부의 공공부문 비정규직 정책이 화룡점정이 될지, 아니면 용두사미가 될지를 가를 것이라는게 노동계의 시각이다. 공사는 일단 갈등 관리를 최우선으로 삼아 무리하게 직고용 계획을 밀어붙이지 않고 각 이해당사자가 동의한 전문가 그룹과 함께 해법을 찾겠다는 입장이다.

3기 노사전에 전문가로 참여했던 박현국 노무사(노무법인 유엔)는 “관건은 너무 많은 인원이 직고용 대상이 돼 불안감을 느낄 정규직 노조를 공사가 어떻게 설득할지 여부”라며 “비정규직 노조들도 아무런 평가없이 정규직 전환을 요구하는 태도를 취해서는 곤란하다”고 말했다. 이장원 한국노동연구원 선임연구위원은 “공사가 지난 3년간 임기응변식으로 타협하다 보니 조직 구성원들에게 기대감과 피해 의식을 불필요하게 키워준 부분이 있다”면서 “청원경찰을 추진하고 싶으면 끝까지 정규직 노조와 타협을 모색해야 하고, 합의가 되든 안되든 공사가 모든 결과를 책임지겠다는 태도를 보여줘야 한다”고 말했다. 양성필 고용노동부 공공노사정책관은 “갈등의 조기 해소라는 대원칙 아래 노사가 차분히 협의해 풀어나가야 한다”며 “전환 과정의 탈락자들에게도 고용 안정을 주겠다는 메시지를 줄 필요가 있다”고 제언했다.


인천국제공항의 보안검색요원들. 영종도=배우한 기자

인천국제공항의 보안검색요원들. 영종도=배우한 기자


이왕구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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