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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와대의 민심 오독

입력
2020.08.03 18:00
수정
2020.08.03 18:02
26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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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충재
이충재주필


김상조ㆍ홍남기 정책라인 상황 못 읽어
그린벨트 주식과세 문 대통령이 뒷수습
정국 주도권 민주당으로 이전 불가피



홍남기(오른쪽) 경제부총리와 김상조 정책실장이 지난 4월 청와대 여민관에서 '경제·금융 상황 특별 점검회의' 에 앞서 대화를 나누고 있다. 연합뉴스

홍남기(오른쪽) 경제부총리와 김상조 정책실장이 지난 4월 청와대 여민관에서 '경제·금융 상황 특별 점검회의' 에 앞서 대화를 나누고 있다. 연합뉴스


최근 들어 문재인 대통령이 정부 핵심 정책을 직접 뒤집는 일이 자주 일어나고 있다. 대통령이 몰랐으리라 보기 어려운 정책이 며칠 만에 백지화되는 것은 정상적 상황이 아니다. 국정 운영 시스템에 중대한 하자가 있다는 신호다. 임기 후반기면 나타나는 현상이라고 보기에는 민생에 미치는 영향이 크다는 게 문제다.

정책 추진의 난맥상이 드러난 대표적 예는 그린벨트 해제 문제다. 그린벨트 논란이 가열되자 김상조 청와대 정책실장은 “이미 당정청 간 의견이 정리했다”고 말했다. 대통령을 뒷배로 논란에 쐐기를 박으려는 의도였을 것이다. 하지만 직후 발표된 여론조사에서 국민 대다수가 그린벨트 해제에 반대한다는 응답이 나오고 정치권에서 반대 목소리가 커지자 대통령이 나서서 카드를 접어야 했다. 정부 정책 추진의 컨트롤타워인 청와대가 민심을 읽지 못한 것이다.

주식 양도세 전면 과세도 같은 전철을 밟았다. 김 실장과 홍남기 경제부총리가 협의해 정책 방향을 밝힌 지 불과 20여일 만에 제동이 걸렸다. 코로나 사태 이후 증시에 몰린 개인투자자의 반발이 커지자 이번에도 문 대통령이 전면에 나서야 했다. 국정 지지도가 급락한 상황에서 또 다른 민심 이반의 악재를 우려해서였겠지만 정책의 신뢰도는 크게 실추됐다.

청와대 안팎에선 김 실장의 존재감과 역할에 의문을 제기하는 시각이 많다. 경제부처의 논리에 포획돼 창의적인 해법 도출을 바라는 대통령의 의중을 제대로 헤아리지 못하고 있다는 것이다. 당초 그린 뉴딜을 한국판 뉴딜에 포함시키는 것에 반대한 것도 김 실장과 홍 부총리였다. 긴급재난지원금 지급 대상을 둘러싼 논란과 대학 등록금 반환에 따른 정부 지원 문제에도 그들이 관여돼 있다.

청와대 내에서 정책라인과 정무라인의 갈등설은 새롭지도 않다. 김 실장이 경제학자로서의 정체성을 강하게 내세우다 보니 여론과 민심을 우선하는 정무라인과 자주 부딪친다고 한다. 비상한 경제 시국 속에 전례 없는 대책을 요구하는 상황과 달리 관료적 시각에서 접근하는 바람에 민심과 동떨어진 정책을 양산하고 있다는 것이다.

대통령 지지도 폭락의 가장 큰 요인인 부동산 정책 실패만해도 그렇다. 코로나 사태로 인한 과잉 유동성 상황에서 딱히 갈 곳 없는 엄청난 돈이 부동산시장으로 몰릴 것이라는 건 예견된 바다. 그런데도 아파트 가격 폭등이 우려되는 시점에 오히려 부동산 경기 침체를 걱정해 정책을 느슨하게 시행한 게 정책라인이다. 임대사업자에게 과도한 혜택을 줘 다주택 투자를 권장한 것은 누군가.

경제 정책 책임자들에게 실패를 물을 타이밍도 이미 지났다. 문 대통령은 얼마 전 난처한 상황에 처한 홍 부총리에게 “힘 있게 추진하라”고 격려했고, 청와대 정책팀과 김현미 국토교통부 장관 교체 여론에도 아랑곳하지 않고 있다. 결국 모든 부담은 대통령에게 고스란히 돌아오는 형국이다. 총선 압승을 임기 후반기 동력으로 삼으려 했던 기대도 점차 흩어지고 있다.

속전속결식 더불어민주당의 부동산법과 공수처법 일방 처리는 향후 정국의 주도권 변화에 중대한 시사점을 던진다. 야당은 “청와대의 하청”이라고 주장하나 꼭 그렇지만은 않다. 민주당 원내대표가 던진 행정수도 이전 문제도 사전에 청와대와 충분히 논의하지 않은 것으로 알려졌다.

임기 말이 다가올수록 대통령의 국정 장악력이 떨어지는 건 필연적이다. 문 대통령은 취임 전부터 문재인 정부가 아닌 민주당 정부를 공언했다. “당이 청와대의 뜻을 입법화하는 ‘통법부’의 기능이 아니라, 실제로 대정부 관계에서 정책을 주도하고 정부를 끌고 가는 역할을 맡기겠다”고 했다. 그 말을 현실화할 때가 됐다.

이충재 주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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