美 "WTO 심리 대상 안 돼"…? WTO 분쟁 변수
정부 "美 관행적 주장일 뿐 日 편들기 아냐"
과거 사례선 美 주장에도 WTO 심리 진행
우리 정부가 일본의 수출규제 조치에 대해 세계무역기구(WTO)에 제소한 데 대해 미국이 '일본 수출규제는 안보 조치로 WTO 심리 대상이 될 수 없다'는 취지로 발언한 것으로 확인됐다. 미국이 사실상 일본 입장을 두둔한 것으로, 미국의 개입성 발언이 일본 정부를 압박하려는 우리 정부의 계획에 중대한 변수로 작용할 수 있다는 지적이 나온다.
3일 WTO 분쟁해결기구(DSB) 회의록 요약본에 따르면 미국은 지난달 29일 스위스 제네바에서 열린 DSB 정례회의에서 우리 정부의 제소를 언급하며 "오직 일본만이 자국의 본질적 안보에 필요한 조치를 판단할 수 있다"고 주장했다. 이어 "(이번 제소가)70년간 피해온 안보 관련 불개입(입장)을 곤란에 빠뜨리고 WTO에 심각한 위험을 초래한다"고 비판했다.
미국의 이번 발언은 일본 수출규제가 국가안보 조치에 해당하기 때문에 WTO 패널 심리 대상이 될 수 없다는 판단에 기반한 것으로 해석된다. 앞서 일본이 지난해 7월 한국에 대해 반도체·디스플레이 핵심소재 3종(고순도 불화수소, 포토 레지스트, 플루오린 폴리이미드)의 수출 규제를 강행하면서 내세운 안보 논리에 동의를 표한 셈이다.
정부는 미국의 이번 발언이 GATT(관세 및 무역에 관한 일반협정·WTO의 전신) 체제 이후 70여년간 미국이 줄곧 취해온 입장과 크게 다르지 않아 WTO 패널 심리에 큰 영향을 끼치지 않을 거라며 진화에 나섰다. 산업부는 이날 설명자료를 통해 "미국은 한일 수출규제 분쟁과 상관없이 과거 러시아-우크라이나 통과운항 분쟁, 사우디아라비아-카타르 지식재산권 분쟁 등에서 'WTO가 '안보 예외'를 심리할 수 없다'는 입장을 견지해 왔다"며 "하지만 WTO 판례는 미국 측 입장과 달리 패널이 안보 예외를 심리할 수 있다는 입장이다"고 밝혔다. 미국의 주장은 관례일 뿐 일본 편을 든 것이 아니며, WTO의 판단에 결정적 변수로 작용하지도 않을 것이란 얘기다.
하지만 전문가들은 그렇게 가볍게 볼 문제가 아니라는 견해를 밝히고 있다. 국제통상 전문가인 송기호 법무법인 수륜아시아 변호사는 미국의 발언 시점에 주목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송 변호사는 "미국은 한국이 일본 수출규제에 대한 중재판정부(패널) 설치를 요구한 회의에서 이 발언을 했다"며 "일반 이사회 때는 아무 반응도 내놓지 않다가, 한국이 패널 설치를 요구하는 시점에서 이런 발언을 했다는 건 관행적이라기보다는 준비된 발언이라고 보는 게 합당하다"고 해석했다.
더욱이 미국 또한 피소국 지위에 있는 철강 분쟁이나 중국 화웨이 축출 등의 현안에서 안보 문제라는 논리로 자국 입장을 관철하려 하고 있다. 송 변호사는 "미국은 자국의 이익을 위해서라도 이번 발언에 그치지 않고 패널 변론 과정에 직접 참여해 안보 예외 문제를 지속적으로 제기할 것"이라며 "우리 정부는 미국과 일본이 주장하는 안보 논리에 대해 보다 적극적이고 공세적으로 대응해야 한다"고 주문했다. 회의 요약본에 따르면, 한일 분쟁 패널에는 미국, 중국, 영국, 러시아, EU 등 13개국이 제3자국으로 절차에 참여할 수 있다.
한일 무역분쟁을 바라보는 미국 입장을 감안해야 한다는 지적도 있다. 송 변호사는 "미국은 한일 무역분쟁을 지소미아(GSOMIA·군사정보보호협정) 연장을 비롯한 한일 관계의 큰 틀과 연결돼 있다고 보고 있다"며 "한국에 WTO 제소 대신 정책 대화로 갈등을 해결하라고 압박한 것으로 해석할 수 있다"고 주장했다. 그는 "우리 정부는 WTO에서 미국과 일본의 주장에 맞서 공세적으로 심리를 주도하되, 일본과의 정책 대화를 통한 해결을 배제해서는 안 된다"고 조언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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