헬로키티 밴드(8.6)
태국 경찰 당국이 2007년 8월 6일 이례적인 조치를 단행했다. 경찰관이 길에 담배꽁초를 버리거나 불법 주정차를 하거나 지각을 하는 등 법규 위반을 하면 일본 팬시용품 캐릭터인 '헬로키티(Hello Kitty)'를 새긴 완장을 차게 한다는 거였다. 사소한 비행과 나태부터 원천 차단함으로써 부패나 반사법적 살인 같은 권력형 범죄를 방지하겠다는 취지였다. 당시 치안 책임자는 미국과 캐나다에서 교육받은, '깨진 창 이론(Broken Window Theory)', 즉 사소한 무질서가 큰 혼란으로 이어진다는 가설의 신봉자였다고 한다.
헬로키티 완장은 일종의 수치형(刑)이었다. 경찰은 힘 없는 약자를 지켜주고 범죄자를 진압하는 '남성적인' 직종인 반면, 헬로키티는 소녀적 이미지의 '유약함'의 상징이었다. 근육질 이두박근의 회색 제복 위에 핑크빗 헬로키티 완장을 채움으로써 '사내답지 못한 당사자'의 비행을 드러내 시민들의 조롱과 비판을 받게 한다는 그 조치가 지금도 유지되고 있는 걸 보면 완장이 상당한 심리적 압박감을 주긴 하는 모양이다. 그 조치가 경찰 반부패 민주화에 얼마나 기여했는지는 알려진 바 없다.
선한 취지에도 불구하고 그 발상에는 노골적인 여성 혐오와 차별 인식이 스며 있다. 호모포비아(헤테로섹슈얼리즘)의 혐의도 짙다. 흔히 동성애 혐오ㆍ공포증으로 번역되는 호모포비아는 용어의 발생학적 기원에 '내가 동성애자로 오인될지 모른다'는 공포도 있다. 그래서 젠더 차별 연구자들은 남성들 가운데 여성적인 옷차림이나 장신구를 과도하게 기피하거나 놀리는 성향을 광의의 호모포비아에 포함시킨다. 즉 태국 경찰 당국은 정책적으로 호모포비아를 조장하는 셈이다.
만일 시민에게 이례적 친절을 베푼 경찰에게 일종의 포상으로 그 완장을 부여했다면 어땠을까. 그랬어도 그리 이상하지 않고 부적절하다는 비판을 받았을 것 같지 않다. 헬로키티 완장은 한 비행 경찰관의 수치가 아니라 태국 경찰의 수치의 상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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