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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애는 불쌍하다' 가르치는 교육, 장애교사들이 바꿀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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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애는 불쌍하다' 가르치는 교육, 장애교사들이 바꿀게요"

입력
2020.08.04 01:00
수정
2020.08.04 13:26
21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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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체 교원 중 1% 수준이지만?
세계 유일 장애 가진 교원들을 위한 노조
장애인이란 이유로 주요 업무서 배제하기보다
책임지고 일할 수 있는 환경 조성 필요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유행 이후엔 회의 참석도 부담스러웠어요. 입 모양을 보고 말을 이해해야 하는데, 모든 선생님이 마스크를 써야 했으니까요”

청각장애가 있는 최별(29) 인천 청인학교 교사에게 지난 1학기는 고난의 연속이었다. 온라인 수업을 촬영했지만 학생들이 자신의 발음을 알아들었는지 실시간으로 확인할 수 없었다. 동료 교사와 대화도 마스크라는 벽에 가로막혔다. 그럼에도 무사히 학기를 마칠 수 있었던 건 지난 5월부터 그를 도운 속기 지원인력 덕분이다. 최 교사는 “몇 년 전부터 교육당국에 속기지원을 요구했지만 받아들여지지 않았는데 노조에 가입해 함께 활동하며 일이 쉽게 풀렸다”며 “속기 덕에 중요 회의에도 불편없이 참여할 수 있었다”고 말했다.

지난달 6일 출범 1주년을 맞이한 함께하는장애인교원노동조합(장교조)은 고용노동부에 설립신고를 마친 정식 노동조합이다. 2016년 뜻이 맞는 몇몇 교사들의 작은 모임이었지만, 지난해 정식 출범 이후 조합원 100여명에 달하는 노조로 성장했다. 오는 5일 교육부와의 첫 단체교섭을 앞두고 있는 장교조 소속 교사들을 지난달 29일 서울 영등포구 한 카페에서 만났다.

장애를 가진 교원만을 위한 노조는 전세계적으로 장교조가 유일하다. 기존 교원노조에 가입하는 대신 별도 노조를 만든 이유는 극소수 장애교사를 위한 조합이 필요했기 때문이다. 교육부에 따르면 2018년 기준 전체 공립학교 교원 중 장애인은 1.36%(1만2,211명)에 불과하다. 2007년부터 교원임용시험에 장애인을 구분해 모집했지만, 교육부의 장애인 근로자 고용률은 의무고용률인 3.4%의 절반에도 못 미친다.


지난달 29일 함께하는장애인교원노조(장교조)의 교사들이 대화를 나누고 있다. 왼쪽부터 백승진 인천 미추홀학교 교사, 최별 인천 청인학교 교사, 홍상희 서울 등명중 국어교사, 김헌용 장교조 사무총장(서울 구룡중 영어교사). 신혜정 기자

지난달 29일 함께하는장애인교원노조(장교조)의 교사들이 대화를 나누고 있다. 왼쪽부터 백승진 인천 미추홀학교 교사, 최별 인천 청인학교 교사, 홍상희 서울 등명중 국어교사, 김헌용 장교조 사무총장(서울 구룡중 영어교사). 신혜정 기자


김헌용(34) 장교조 사무총장(서울 구룡중 영어교사)은 “구분모집이 시작되고도 5년이 지나서야 충분한 시험시간, 컴퓨터 시험 등 편의가 제공됐다"고 설명했다. 교육당국이 장애교원 채용 의지를 보이지 않았던 셈이다.

더 큰 벽은 임용 뒤 겪는 차별이다. 김 사무총장은 “많은 장애교사들이 담임 업무에서 배제되거나 중요하지 않은 과목만 배정받는 등 강사인지 교사인지 모르게 일하고 있다”며 “이로 인해 승진에서도 밀리고, 교육청에서 전문직 공무원으로 일하며 장애학생과 교사를 위한 제도를 만들 기회도 사라진다”고 토로했다.

장교조는 작은 변화만으로도 장애교원들이 평등하게 교육할 환경이 만들어질 수 있다고 말한다. 이번에 실시된 원격수업은 작은 단초다. 지체장애가 있는 백승진(41) 인천 미추홀학교 교사는 평소 수업에서 부담감이 컸다. 특수학교의 특성상 지적장애 학생을 신체적으로 제어하거나 율동이 포함되는 수업이 많은데, 백 교사에게 이 부분은 비장애인 동료 교사에 비해 취약할 수밖에 없는 부분이다. 그러나 원격수업에서는 이런 제약 없이 자신의 섬세함을 살려 수업할 수 있었고, 동료들 앞에서 그 비법을 전수하기도 했다. 백 교사는 "교사 생활 중 다른 선생님이 나에게 뭔가를 물어본게 처음"이라며 "환경변화로 자존감이 회복됐다"고 말했다.


지난해 7월 6일 열린 장교조의 창립총회에서 김헌용 사무총장이 발언하고 있다. 장교조에는 시각ㆍ청각ㆍ지체장애 등 다양한 장애교사가 소속된 만큼 회의를 할때도 큰 스크린에 자막을 띄우고 노트북 대신 점자정보단말기(한소네)를 사용한다. 장교조 제공

지난해 7월 6일 열린 장교조의 창립총회에서 김헌용 사무총장이 발언하고 있다. 장교조에는 시각ㆍ청각ㆍ지체장애 등 다양한 장애교사가 소속된 만큼 회의를 할때도 큰 스크린에 자막을 띄우고 노트북 대신 점자정보단말기(한소네)를 사용한다. 장교조 제공

김 사무총장은 “원격수업으로 저 같은 시각장애인 교사는 강의제작에 어려움을 겪은 반면, 백 선생님처럼 자신의 능력을 펼친 경우도 있다”며 “장애유형 각각에 맞는 지원이 필요한 이유”라고 말했다. 이는 장교조가 교육부와의 단체교섭에서 논의하려는 안건이기도 하다. 김 사무총장은 “원격수업은 물론 교사 연수 사이트 상당수가 장애교사의 접근성을 고려하지 않는다”며 “이런 사이트에 자막을 제공하거나 컴퓨터 보조인력을 지원해 책임지고 일할 수 있는 환경을 만들어달라는 것”이라고 말했다.

장교조는 장애교사로서 동등하게 일할 권리를 찾고, 학교 내 다양성 교육에 앞장 서겠다는 포부도 밝혔다. 홍상희(41) 서울 등명중 국어교사(뇌병변장애)는 “선생님들 중에서도 여전히 장애인의 반대말을 정상인으로, ‘장애가 있는 것’에 대해 ‘불쌍하다’로 표현하는 분들이 많다”며 “앞으로 우리가 직접 동료 교사들에게 장애인식교육을 하는 등 교육현장의 숨은 편견을 개선해 나갈 계획”이라고 말했다.


신혜정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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