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 영창케미칼
편집자주
지난 해 일본 수출규제를 계기로 우리나라 소재ㆍ부품ㆍ장비 분야의 기술 자립 중요성이 주목 받고 있습니다. 이에 한국일보는 중소벤처기업부의 ‘소부장 강소기업 100’에 선정된 기업들의 핵심 기술과 경쟁력을 격주로 소개합니다.
심리학에 '구조화 효과(Framing effect)'란 용어가 있다. 동일한 사건이 개인의 선택이나 판단에 따라 전혀 다르게 해석되는 걸 나타낸 말이다. 병원에서 환자의 수술 생존율이 70%인 경우 의사가 내놓을 수 있는 답변은 두 가지다. 하나는 사망률 30%, 다른 하나는 성공률 70%다. 물이 절반 채워진 컵을 보며 "절반이나 남았다"고 말하는 사람이 있는가 하면 "절반밖에 안 남았다"고 말하는 사람도 있다.
2000년대 초반, 한국 반도체 소재 시장은 '레드오션'으로 여겨졌다. 한국의 반도체 제조 기술은 세계 최고였지만 거기에 들어가는 소재와 장비는 전량 외국에서 수입했다. 높은 기술과 역량을 갖춘 미국, 일본 기업이 있는 반도체 소재 시장에 국내 중소기업이 뛰어드는 건 무모한 일처럼 보였다.
그러나 이성일(77) 영창케미칼 대표는 반대로 생각했다.
그는 "당시 포토레지스트 1갤런 한 병이 1,000만원이 넘는 걸 보고 타 산업에 비해 절대 우위의 고부가가치 산업이라는 확신이 들었다"며 "내게는 반도체 소재 시장이 도전 가치가 충분한 '블루오션'이었다고 했다. 포토레지스트는 반도체나 디스플레이의 원재료인 웨이퍼 위에 바르는 감광액을 말한다. 빛의 노출에 반응해 반도체 회로 패턴을 구성하는 반도체 공정의 필수 소재다.
이 대표의 판단은 틀리지 않았다. 그가 2001년 창업한 영창케미칼은 19년이 지난 지금 국내외에서 기술력을 인정받는 반도체 첨단 소재 생산 기업으로 우뚝 섰다. 현재 영창케미칼은 삼성전자나 SK하이닉스는 물론 미국ㆍ싱가포르·ㆍ중국ㆍ필리핀 등에도 반도체 소재를 공급하고 있다.
영창케미칼은 2009년 'I-line 광원용 네거티브(Negative)형 포토레지스트' 양산에 성공하며 업계를 놀라게 했다.
포토레지스트는 성질에 따라 빛에 노출된 부분이 사라지고 노출되지 않는 부분이 남아 회로 패턴을 형성하는 '포지티브(positve)형'과 반대로 빛에 노출된 부분이 남아 회로 패턴이 새겨지는 '네거티브형'이 있다. 네거티브형이 포지티브형보다 정교한 공정이 가능한데 영창케미칼이 국내 최초로 이를 개발했다. 이어 2014년, 영창케미칼은 'KrF 광원용 포토레지스트'까지 상용화하는 쾌거를 이뤘다. 이 소재는 'I-line 광원용 포트레지스트'보다 세 배 이상의 고해상도를 구현할 수 있어 더 높은 기술력을 필요로 한다.
첨단 소재를 하나 하나 국산화하는 과정은 쉽지 않았다.
특히 포토레지스트 원료 조달이 난제였다. 이 대표는 "경험도 없는 업체가 무슨 포토레지스트 개발이냐는 부정적 시각이 대다수였다. 국내외 원료 업체들 대다수가 우리의 샘플 요청을 외면했다"고 털어놨다. 영창케미칼은 또 한 번 발상의 전환을 통해 위기를 기회로 삼았다. 사내에 중요 원료를 직접 설계, 합성하는 연구소를 신설한 것이다. 지금 영창케미칼은 포스레지스트 뿐 아니라 다양한 반도체 소재 원료를 수입하지 않고 직접 제조할 수 있는 능력을 갖췄다.
지난 해 7월 일본의 수출규제 이후 영창케미칼은 더욱 주목 받고 있다. 일본의 3대 수출 품목 하나였던 극자외선(EUV) 포토레지스트를 영창케미칼이 개발 중이기 때문이다. EUV 포토레지스트는 반도체 회로를 선폭 10나노미터(1나노미터=10억분의 1m) 이하로 미세하게 그려낼 수 있는 소재로 JSR(일본합성고무의 후신)ㆍ신에쓰ㆍ도쿄오카공업(TOK) 등 일본 기업이 세계시장의 90% 이상을 점유하고 있다.
EUV 포토레지스트 개발에 대해 이 대표는 "쉽지 않은 도전인 건 사실"이라고 솔직히 말했다. 하지만 그는 "EUV 포토레지스트를 국산화한다는 건 국내 뿐 아니라 전 세계 반도체 시장을 선도한다는 의미"라며 "3년 내 상용화가 목표"라고 강한 의지를 내비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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