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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뭉학’의 시대

입력
2020.07.31 17:17
수정
2020.07.31 18:23
22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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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 라스트 오브 어스 2. ⓒNaughty Dog

더 라스트 오브 어스 2. ⓒNaughty Dog


‘더 라스트 오브 어스 2’는, 정체불명의 곰팡이가 퍼져 인류가 좀비처럼 변해 가는 세계를 배경으로 하는 액션 어드벤처 게임이다. 게임이라고 얕잡아보지 마시라. 이 이야기는 생존의 의미, 증오와 복수의 연쇄, 트라우마와 그 극복에 대한 결코 쉽지 않은 이야기를 다루고 있으니.

이 게임은 올 상반기, 아니 어쩌면 게임 역사상 가장 거대한 논쟁을 불러일으켰다. 명작이라 상찬하는 이들이 있는 반면 최악의 게임이라며 비난하는 이들도 있었다. 복수와 증오를 다루는 게임의 진행 방향이 노골적으로 플레이어를 불편하게 만들었기 때문인데, 제작자는 비판적인 반응에 대고 “우린 팬들을 존경하고 사랑하지만, 존경과 사랑은 영합과 동의어가 아니”라며 팬들을 조롱했다. 심지어, 게임 주인공이 머리를 툭툭 치며 상대를 비웃는 영상까지 첨부해서.

여기에서 게임 얘기를 길게 하는 건 의미가 없을 테고, 사실 진짜 여기서 하고 싶은 얘기는 바로 그 논쟁에 대한 것이다. 팬들은 게임에 등장하는 성소수자 묘사, 무지개 상징, 육체적으로 강인한 여성 캐릭터 등을 보며 "정치적 올바름이 게임을 망쳤다"고 비난했다. 이런 묘사가 극의 흐름을 방해하거나 뒤틀거나 한 부분이 딱히 보이지 않음에도 말이다. 게임성에 대한 비판보다 소수자에 대한 비난이 오히려 더 두드러졌다. 사실, 그건 반대쪽도 마찬가지였다. 제작자부터가 비판 여론을 마치 지능의 문제인 것처럼 몰아갔고, 칼럼니스트들은 게임에 대한 불만을 전부 혐오에 물든 사회 부적응자들의 준동으로 여기며 설교했다.

‘더 라스트 오브 어스 2’를 둘러싼 논쟁의 흐름은, 사실 오늘날 이뤄지는 수많은 ‘인문학적’ 논쟁의 축약판이나 다름없다. 여기에서 특히 두드러지는 키워드는 ‘정치적 올바름’이다. 어떤 이들은 이를 전가의 보도처럼 활용한다. 자신의 올바름에 심취한 나머지 디테일을 뭉개고, 혹여 비판이 나오면 올바르지 못한 이들의 공격으로 싸잡아 공격하며 무시한다. 반대로 소수자, 다양성에 대한 묘사가 조금만 나와도 학을 떼며 ‘과도한 정치적 올바름’에 경도되었다 비난하는 이들도 있다.

정치적 올바름은 한 예일 뿐이다. 젠더는 최근 우리 사회의 가장 중요한 화두 중 하나이지만, 논의가 제대로 이뤄지는 것 같지는 않다. 젠더 다양성은 물론 혐오, 폭력의 양태 등을 묘사함에 있어 인문학적 개념어가 난립하지만, 때로 그건 현실을 설명하기 위한 도구가 아니라 그저 자신의 지식과 올바름을 전시하고 상대를 깎아내리기 위해 전용되곤 한다. 다양성에 대한 존중을 죄다 정치적 올바름이네 한국식 페미니즘이네 하며 후려치고, 자신의 의견에 토를 달면 죄다 맨스플레인이네 가스라이팅이네 하며 후려친다.

이건 인문학이 아니라 ‘인뭉학’이라는 말이 더 어울릴 것이다. 의미와 해석을 전용하며 디테일은 대강 뭉뚱그리고, 엉터리 개념, 엉터리 논거에 엉터리 주장을 의뭉스레 쌓아올리면서 지적 허영을 전시한다. 팩트라는 말이 이렇게 많이 사용된 시대가 있었나 싶을 정도지만, 사실 팩트와는 가장 거리가 먼 시대이기도 하다. 다들 자기 구미에 맞춰 가공된 논거를 팩트랍시고 들이민다. 논의는커녕 대화조차 불가능해진, 다들 자신만의 ‘인뭉학적’ 세계관에 갇힌, 그야말로 ‘인뭉학의 시대’라 말하지 아니할 수가 없다.




임예인 슬로우뉴스, ㅍㅍㅅㅅ 편집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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