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침식사 대용식인 시리얼은 보통 초코맛, 딸기맛 등 달콤한 맛 일색이다. 그런데 최근 ‘파맛’ 나는 시리얼로 대박이 난 브랜드가 있다. 농심켈로그에서 출시한 ‘첵스 파맛’이다. 출시 배경에도 나름 스토리가 있다. 16년 전 ‘초코맛 대 파맛’으로 소비자 투표 이벤트를 진행했는데, 당시 다수의 네티즌이 파맛을 선택했음에도 불구하고 시장성 등을 염려한 회사의 전략으로 초코맛이 출시됐다는 것이다. 이후 소비자들의 지속적인 요구로 결국 16년 만에 파맛 제품이 탄생했다. 시장 반응도 폭발적이다. 우유보다는 차라리 설렁탕에 넣어 먹는 편이 더 낫다며 ‘내가 먹어 봤는데’로 시작하는 각종 후기가 SNS에 넘쳐난다.
이처럼 소비자들이 기업 활동을 단순히 응원하는 것을 넘어 ‘이래라, 저래라’하며 적극적으로 간섭하는 팬슈머(fansumer) 트렌드가 부상하고 있다. 팬슈머는 연예인 등 특정 인물에 열광하는 팬덤(fandom)과 소비자란 뜻의 컨슈머(consumer)를 합성한 단어로, 서울대 소비트렌드분석센터에서 발표한 신조어다. 단지 브랜드를 좋아하는 것에 그치지 않고, 해당 브랜드의 기획부터 생산까지 전 과정에 관여하며 비평하는 열성 고객을 의미한다.
과거에도 기업 활동에 참여하는 소비자는 있었다. 기업의 생산과정에 참여하는 소비자라해서 생산자(producer)와 소비자(consumer)를 합성한 프로슈머(prosumer)가 대표적이다. 다만, 당시의 프로슈머는 지금의 팬슈머와 비교해 볼 때 팬덤만큼의 열정은 기대하기 어려웠다. 예컨대 가전회사가 냉장고를 개발할 때 주부 소비자단을 불러 놓고 그들의 의견을 경청하는 정도의 수준에 그쳤다. 소비자의 의견을 듣는 것에 의미를 둘 뿐, 해당 기업이 진심으로 잘 되길 바라는 ‘열정’은 기대하기 어려웠다.
반면, 요즘 팬슈머는 마치 연예인의 광팬처럼 기업 활동에 적극적으로 관여한다. 온라인 강의 플랫폼 ‘클래스101’은 강의 콘텐츠를 기획하기 전에 수요조사를 진행하는데, 소비자라면 누구나 본인이 듣고 싶은 주제에 대해 수요조사를 해 달라고 신청할 수 있다. 이런 강의가 필요한가에 대한 소비자 의견을 묻는 것에 그치지 않고, 소비자가 직접 강의 개설에 관여할 수 있다는 점이 차별화 포인트다. 내가 신청한 강의가 신설되었을 때 느낄 수 있는 성취감은 덤이다.
공유셔틀 모빌리티 기업 ‘모두의셔틀’은 소비자 누구나 출근길 운행경로 개설을 제안할 수 있다. 만약 우리 집 앞을 지나는 신규노선이 꼭 필요하다면 본인이 직접 일정 수의 고객을 모객하면 된다. 소비자가 고객 모집을 완료하면, 기업이 전세버스 기사와 차량을 매칭해 준다. 소비자 스스로 기업의 숨은 수요를 발굴하는 셈이다.
고객 충성도가 점차 낮아지고 있는 시대, 지속가능한 팬덤의 소유 여부는 곧 기업의 경쟁력이 된다. 하지만 팬슈머는 단지 소비자를 우리 기업의 사업영역에 참여시킨다고 해서 육성 가능한 존재는 아니다. 고객을 팬슈머로 육성하기 위해서는 마치 연예인 팬클럽이 ‘내가 이 스타를 키웠다’며 자랑스러워하듯, 고객이 ‘내가 이 브랜드를 키웠다’는 성취감을 느낄 수 있도록 지원해야 한다.
‘고객과 함께’만으로는 부족하다. ‘고객에 의해’ 좌우되는 팬슈머 시장에서 소비자의 열성적인 지지와 참여를 이끄는 팬덤 전략이 그 어느 때보다도 중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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