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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형서점과 출판사의 기묘한 파트너십

입력
2020.07.31 22:00
23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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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 교보문고 광화점의 대형 독서 테이블. 서재훈 기자

서울 교보문고 광화점의 대형 독서 테이블. 서재훈 기자



요즘은 사람 만날 일이 생기면 카페를 찾는다. 어릴 때는 주로 서점에서 만났다. 새 책 특유의 향기가 좋았고, 아낀 용돈으로 책 한 권을 고르는 게 행복했다.

책에 대한 로망은, 그저 독자에 머물지 않고 저자와 역자가 되는 경험으로 이뤄졌다. 여기서 멈췄으면 좋으련만(!), 7년 전엔 출판사를 내고 마침내 발행인이 되기에 이르렀다. 하지만 출판사 사장의 눈으로 본 서점은 더 이상 낭만적인 공간도, 책을 위한 공간도 아니었다. 책을 낸다는 보람은 늦어지는 수금과 다음 책에 들어갈 제작비 지급일 사이에서 어느새 증발해 버렸다. 다들 왜 출판사 차리는 걸 만류했는지, 너무 금세 깨닫게 되었다.

21세기의 서점들은 책만 팔지 않는다. 책방이란 말은 요즘 서점과는 어울리지 않는다. 특히 대형서점에서의 책은, 조금 과장하자면 미끼이자 인테리어가 되었다. 이제 서점은 책을 매개로 다양한 사업을 펼치는 공간이 되었다.

출판사들은 이러한 변화에서 소외되어 있다. 출판사를 운영하지 않았다면, 아마 평생 ‘어음을 끊어’ 볼 일이 없었을 것이다. 서점에 책을 넘기면 매출이 발생하는 게 아니란 걸 몰랐을 것이다. 망가진 책을 아무 보상없이 반품받아야 하는 출판사의 고충도 상상 못했을 것이다. 이러한 불합리의 중심에 대형 서점이 있다.

대형 서점들에 출판사는 또 하나의 고객이기도 하다. 요즘 온ㆍ오프라인 서점들은 출판사들을 상대로 노출 권리를 판매해 짭짤한 수익을 올린다. 좋은 위치에 책을 진열하려면, 출판사들은 각 서점들이 매긴 값을 지불해야 한다. 서점에서 쉽게 눈에 띄는 책들과, 온라인 서점 추천 섹션에 이름이 노출되는 책들도 거의 대부분 이런 방식으로 권리를 ‘구매’한 경우다.

둘의 관계는 미묘하다. 출판사가 서점이 주문한 책을 보내는걸 ‘위탁’이라고 한다. 반품 불가 조건으로 값싸게 책을 구입하는 ‘매절’과 달리, ‘위탁’은 반품 부담이 크다. 그리고 ‘위탁’된 책의 판매 대금은 출판사로 입금되기까지 긴 시간이 걸린다. 책 도매업체라도 끼어 있다면 그 시간은 더욱 길어진다.

‘위탁’은 서점이 책을 대하는 이중적 태도를 보여 준다. 서점은 팔리지 않는 책에 대해 아무런 비용도 지급하지 않지만, 책은 서점에 머무는 동안 인테리어로, 또 미리 읽기용으로 쓸모를 다한다. 하지만 서점은 판매되지 않은 책들에 대해 아무런 비용도 지불하지 않는다. 이 책들은 나중에 출판사로 반품되는데, 하자없이 돌아오는 책은 많지 않다.

고객 변심으로 환불 처리된 책이 서점 도장이 찍힌 채로 출판사로 돌아오면, 서점이 베푼 환불의 선의는 고스란히 출판사의 손실로 남는다. 반품되어 돌아온 책들은, 유료 ‘재생’ 작업을 거쳐 되팔리는 경우를 제외하면 대개는 폐기된다.

서점이 마련한 넓은 책상에 앉아 구매하지 않은 책을 읽는 사람들은 서점의 고객이지 출판사의 고객은 아니다. 공짜로 책을 읽은 뒤 서점에 입점된 카페나 식당, 편의점 같은 곳에서 돈을 쓰며 서점의 고객이 된다. 하지만 이들이 읽었던 책의 대가는 출판사로 지불되지 않는다.

서점이 종합 상업공간으로 탈바꿈하며 도약을 꿈꾸는 동안, 출판사는 일방적 관계의 그늘에서 속앓이를 하고 있다. 서점들이 다시 책을 아끼는 공간으로, 출판사와 상생할 수 있는 동반자로 변신할 수 있다면, 독자들은 더 좋은 책들을 많이 만나게 될 수 있을 것이다.



서형욱 풋볼리스트 대표ㆍ축구해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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