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한 대학생 된 북한 '촌놈'… "한때 전교 꼴등… 배움 하나하나 소중"

이전기사

기사 URL이 복사되었습니다.

기사가 저장 되었습니다.

기사저장이 취소 되었습니다.

남한 대학생 된 북한 '촌놈'… "한때 전교 꼴등… 배움 하나하나 소중"

입력
2020.08.01 13:00
0 0

2008년 탈북한 '장마당 세대' 20대 A씨 인터뷰

기사 내용과 관련없는 자료 사진. 게티이미지뱅크


"모두가 남한 생활에 어려움을 겪는 건 아닙니다. 어려움을 겪는다고 해도 북한에 다시 돌아가고 싶어 하지도 않고요."

얼마 전 인천 강화도에서 북한 이탈 주민 김모(24)씨가 재입북한 것으로 추정되면서 20대 탈북민들에 대한 주목도가 높아지고 있다. 한창 외부 문화에 관심이 많을 '장마당 세대' 20대. 그러나 일각에서는 "한국 사회에 적응하기 어렵다"는 호소가 나오기도 한다. 물론 모두가 적응에 어려움을 겪는 건 아니다. 대학에 다니고 취업을 준비하는 등 평범한 대한민국 청년의 삶을 사는 20대 탈북민들도 많다.

특목고에 4년제 대학까지… 비보잉에 푹 빠지기도

올해로 '남한 살이' 12년째가 된 A(24)씨는 나이는 김씨와 같지만 조금은 다른 삶을 살고 있다. 남들보다 한 살 늦은 나이에 중학교에 입학했지만 특수목적고(특목고)와 서울시내 4년제 대학이라는 '엘리트 코스'를 밟고 있다. 한국에 가는 것도 모른 채 부모님을 따라 나선 게 12년 전. A씨는 29일 한국일보와 가진 인터뷰에서 그 날을 "막상 한국에 오니 너무 신이 났다"고 떠올렸다.

A씨는 먼저 탈북해 서울서 정착한 아버지의 뒤를 이어 2008년 10월 어머니의 손을 잡고 두만강을 건넜다. 중국에 가는 줄로만 알았지, 남한에 가는 건 꿈에도 생각을 못 했다. 중국에 도착하고 나서야 남한에 간다는 사실을 알았다.

제3국을 거쳐 이듬해인 2009년 초 한국 땅을 밟았다. 3개월 동안 '하나원'에서 기초 정착 교육을 받고, 남들보다 한발 늦은 14살에 초등학교 6학년 생활을 시작했다. 그의 학창시절은 영락없는 대한민국 10대였다. 한때 특유의 당당한 성격 덕에 학급 반장과 전교 부회장까지 했지만, 사춘기 시절엔 갑작스럽게 맞이한 자유에 비보잉에 빠져 사는 등 질풍노도의 시기도 보냈다.

북한과 180도 달라진 생활과 문화였지만, 적응엔 큰 문제가 없었다고 한다. 그는 처음 만난 한국의 초등학생들에게 자신이 탈북민임을 먼저 밝혔다고 한다. 잘못을 한 것도 아닌데 굳이 숨길 필요가 없을 것이라는 생각에서였다. A씨는 "문화가 다르다고 할 수도 있지만 (북한에서는) 없다가 생긴 게 많아서 그걸 하나하나 배워가는 재미가 더 많았다"며 "초등학생 때라 상대적으로 어려서 그랬는지 엄청 힘들거나 그러지는 않았다"고 말했다. 처음 접하는 에스컬레이터는 숫자를 세어가며 점프를 해 탄 적도 있었다. 그는 "모든 것을 소중하게 배우자고 마음 먹었다"고 회상했다.

학교에서 전교 꼴찌를 해도 주눅 들지 않았다. 비록 '꼴통' 소리를 듣던 중학생 시절이었지만, 특목고를 가보라고 권유하는 담임 선생님의 말에 과감히 특목고를 선택했다. 하지만 특목고의 벽은 높았다. 첫 시험은 전교 꼴찌. 그는 "1학년 전체 학생 수와 제 등수가 똑같았다"라며 "엄청 충격을 받아 방과 후에 친구들에게 도움을 받으면서 더 공부했다"고 설명했다. 그 결과 2학년 땐 성적향상상까지 받았다. 비록 탈북민 전형이긴 했지만, 국내 내로라하는 4년제 대학에도 입학할 수 있었다.

탈북자 중 2030이 가장 많아…경쟁 문화 적응에 어려워 하기도

월북한 것으로 추정되는 김모씨의 가방이 발견된 인천 강화군 강화읍 월곳리의 한 배수로 모습. 강화도=연합뉴스

통일부가 발표한 북한이탈주민 통계(2020년 3월 기준)에 따르면 2030세대에서 가장 탈북을 많이 한다. 한국 입국 당시 연령으로 따져보면 전체 탈북민 3만3,000명 중 20대와 30대가 각각 9,000여명으로 전체 연령대의 절반 이상을 차지한다.

2030은 북한의 '장마당 세대'다. 장마당 세대는 1990년 이후 출생한 세대로 북한의 주류를 이루고 있다. 이들은 1990년대 중반 '고난의 행군' 당시 어린 시절을 보내 국가의 배급보다 시장(장마당)을 통해 생계를 유지하는 것에 익숙해있다. 기존의 북한 체제와 달리 자유시장에 대해 생각이 열려 있고 바깥 세계에도 관심이 많다.

물론 아무리 외부 환경에 친숙한 장마당 세대여도 모두가 A씨처럼 어려움 없이 대한민국 사회에 적응하는 건 아니다. A씨 주변에도 적응에 어려움을 호소하는 사람들이 있었다. 주변 탈북민들은 학교에서 '빨갱이'라는 소리를 듣는 등 차별, 공격을 당하기도 했다. 또 친구들이나 사람 관계에서 소외감을 느낀 경우도 있었다.

A씨는 "저도 그렇지만, 경쟁 문화에 어려움 느끼는 분들이 꽤 있는 것 같다며 "시험 기간만 되면 학생들이 서로 견제하고 예민해지는 걸 보면 이해가 잘 안되더라"고 했다. 어렸을 때부터 치열한 경쟁 속에서 자라온 한국 친구들과 경쟁에 뛰어들어야 한다는 사실 자체가 쉽지 않다고 한다.

다만 한국 생활이 녹록지 않아도 김씨처럼 월북을 하는 건 이해하기 어렵다고 한다. 설사 성폭행 혐의로 감옥에 가게 되더라도 북한에서의 삶보다 나을 것이라는 게 자신을 포함한 주변 탈북민들의 생각이라고도 했다. A씨는 "차라리 외국에서 숨어 지내는 게 낫지, 성범죄 수사를 피해 북한으로 도망가는 건 제 경험으로는 이해하기 힘든 행동"이라고 강조했다.

친구들 영향으로 자연스레 공부에 빠지게 돼

같은 과정을 거쳐 대한민국 사회에 발을 내딛더라도 A씨처럼 큰 어려움 없이 한국에 적응하는 탈북민이 있는가하면, 그렇지 않은 경우도 많다. 개인 성향의 차이, 나이의 차이 등 다양한 요인이 있겠지만 A씨는 환경의 중요성도 강조한다. A씨도 북한에선 제대로 된 교육조차 받지 못했다. 집안 어른들의 농사일을 거들며 할아버지로부터 집에서 교육을 받은 게 전부다. 한국에 와서도 차상위계층으로 분류됐을 정도로 가정 형편이 넉넉하지 않았다.

지금의 A씨를 만든 건 뜻밖에도 '공부 밖에 할 게 없었던' 환경이었다. 처음엔 성적이 잘 나오지 않았지만 우연치 않게 공부할 수밖에 없는 상황에 놓였다. 주변에 온통 공부하는 친구들뿐이어서 A씨도 별수 없이 공부를 하게 됐고, 자연스레 공부하는 방법을 배웠다. 그렇게 하다 특목고 진학을 택했는데 이것이 '신의 한 수'라고 했다. 다른 선택을 했다면 지금쯤 한국 생활에 적응에 애를 먹거나 덜 중요한 일을 하고 있지 않겠냐고 상상할 정도다.

그렇기 때문에 주변 탈북민들에게도 어떤 환경에서 한국 생활을 하느냐가 매우 중요하다고 목소리를 내왔다. A씨는 "전교 꼴등을 해도 괜찮으니 무엇인가 열심히 할 수 있는 여건이 마련되는 것이 중요하다"며 "다른 탈북민들에게도 적응에 쉽지 않더라도 일반 학교에 가라고 추천하고 있다"고 말했다.


윤한슬 기자

기사 URL이 복사되었습니다.

기사가 저장 되었습니다.

기사저장이 취소 되었습니다.

한국일보가 직접 편집한 뉴스 네이버엣도 보실 수 있습니다. 뉴스스탠드에서 구독하기
세상을 보는 균형, 한국일보Copyright ⓒ Hankookilbo 신문 구독신청

댓글0

0 / 250

중복 선택 불가 안내

이미 공감 표현을 선택하신
기사입니다. 변경을 원하시면 취소
후 다시 선택해주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