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은 어디로 갈까, 델포이에 물어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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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은 어디로 갈까, 델포이에 물어보다

입력
2020.07.30 22: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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델포이 성역의 윗부분에 있는 극장에서 내려다본 아폴론 신전. ©게티이미지뱅크



여름이면 종종 울리던 전화가 뚝 끊겼다. 통 소식이 없던 친구가 갑작스러운 남미여행을 알려 오기도 하고, SNS로 ‘좋아요’나 주고받던 선배가 이탈리아로 떠나는 여행상담을 청하기도 했다. 오랜만에 나서는 누군가의 휴가 길에서 갑자기 떠오를 만한 직업인지라, 휴가철이 다가오면 이런 반가운 안부전화가 몰려 오곤 했다. 싫지 않은 일이었다. 몇 년은 벼르고 별렀을 그의 가족여행이 조금이라도 더 즐겁길 바랐고, 혼자 가는 첫 여행이라는 그녀의 숙소가 충분히 안락한지 내내 궁금했다. 일 년 동안 아끼고 모은 휴가를 탈탈 털어서 회사에서 저 멀리 떨어진 나라로 떠나려는 그들과 작당모의라도 하듯 함께 여행하던 7월이었다.

하늘을 날아 훌훌 떠날 수 있는 자유가 사라진 올해 7월은, 모든 것이 흐릿하고 불투명한 여름이다. 언제 다시 국경이 열릴지 언제쯤에나 백신이 나올지, 뉴스 하나에 기대했다가 실망했다가 그렇게 몇 개월 신경을 곤두세우다 보니 이 세상이 대체 어디로 갈까 마냥 궁금해졌다. 누구도 속 시원한 대답을 줄 수 없는 요즈음이 되고 보니, 새삼 아폴론의 신탁을 받기 위해 줄줄이 델포이 성역으로 몰려들던 그리스 시대의 사람들이 이해되기 시작했다.


아폴론 신전. ©게티이미지뱅크



예언의 적중률이 높기로 유명한 신탁이 내려지던 고대의 신전이니 예사로운 장소에 있을 리 없다. 높고 외진 파르나소스산의 남쪽 자락, 제우스가 독수리 두 마리를 서로 동서 방향으로 날렸더니 세상을 돌아 다시 만났다는 바로 그 자리. 그리스 인들은 이곳을 전 세계의 중심으로 생각했고 세상의 배꼽이라 표시하는 ‘옴파로스(Omphalos)’ 돌을 놓았다. 가파른 암벽을 무대 배경처럼 지고 선 아폴론 신전이 장엄한 협곡을 바라보고 있는데, 그 신전까지 올라가는 길에는 먼 길을 찾아 온 사절단들이 신탁의 대가로 바친 보물 창고가 즐비했다.

결코 거스를 수 없는 운명처럼 받아들였던 막강한 권위의 신탁이었지만, 앞으로 세상이 어찌 될지 하늘의 뜻을 전해주는 건 그때도 결국 사람이었다. 대대로 신탁을 전하는 무녀 피티아가 신전의 바닥 틈에서 나오는 증기를 마시고 신들린 상태로 모호한 시어들을 쏟아내면 신관이 그 뜻을 해석해 줬다는데, 아폴론이 스며들었다는 그 ‘신성한 증기’는 사실 신전 밑의 지형에서 배출되어 환각 상태를 만드는 가스였다. 온 세계 사람들이 다 모이는 델포이의 특성을 이용해 이리저리 정보를 수집한 신관들이 그때그때 상황에 맞도록 해석을 했다는 설이 2500년이 지난 지금에는 더 유력하다.

절대적인 믿음이 사라진 시대, 마음이 불안하고 조급해진 사람들은 갖가지 검색어를 입력해 가며 현대의 신탁소가 된 인터넷에 미래를 묻고 또 묻는다. 백신의 개발 성공을 예견하는 보도자료, 관련 기업의 주식시세를 점치는 분석가, 새로운 여행 트렌드를 말하는 관광업계 등 자칭 전문가들의 전망이 쏟아진다. 하나 “그대가 강을 건너면 위대한 제국이 멸망할 것이다”라는 신탁을 자기 좋을 대로 해석해 전쟁을 일으켰다가 자신의 제국만 멸망시킨 리디아 최후의 왕 크로이소스처럼, 미래가 그려지는 방향은 언제나 오늘을 사는 사람이 결정하고 책임질 몫이다. 올해는 무수한 외부의 신탁에서 자유로워지라는 내 마음속의 신탁을 따르기로 했다. ‘여행이 없는 당신의 여름’은 안녕한지 안부를 물으며 내가 먼저 친구들에게 전화를 걸어 보려 한다.



전혜진 여행작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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