편집자주
클래식 거장 발레리 게르기예프와 정명훈이 선택한 신예 피아니스트 임주희가 격주 월요일자로 '한국일보'에 음악 일기를 게재합니다.
나는 말을 잘 하는 편이 아니다. 말이 느리기도 하다. 그래서 말로 감정을 잘 표현하지 않는다. 상당히 서툴기도 하고, 말로 표현해 내 감정을 남에게 강요하는 듯한 느낌도 싫어한다.
내가 음악을 시작한 건 생후 30개월이었다. 말도 제대로 못할 때였는데 피아노를 친구로 만났다. 그 친구는 말 대신 음악으로 표현하게 해줬다. 부모님은 내가 언제 한글을 깨칠지에 대해 비교적 관대했다. 다만 대화는 많이 했는데, 세살배기 아기와 많은 대화라니. 생각해보면 우습다. 하지만 당시 내 옹알이는 나름 확신에 차있는 것으로 기억한다.
3년 전 서울스프링 실내악 축제에서 만난 사람들이 떠오른다. 세계 최정상급 음악가들과 한 무대에, 그것도 실내악을 접할 수 있다는 게 너무나 좋았다. 그들과 함께 호흡하며 음악을 만들어 나가는 경험 자체가 큰 선물이었다.
왜 그런지는 협주자 이름을 쭉 나열하면 알 것이다. 뉴잉글랜드 콘서바토리 박사과정을 밟고 있던 바이올리니스트 장유진, 줄리어드스쿨 아티스트 디플로마 과정에 있던 김봄소리, 독일 함부르크음대 대학원 오케스트라 지휘 최고연주자 과정의 비올리스트 이승원, 드레스덴국립음대 대학원 첼로 박사과정생으로 '노부스 콰르텟' 활동도 하고 있던 첼리스트 문웅휘였다. 당시 홈스쿨링하는 고등학생이었던 나는, 그들과 만나는 순간 마치 마블코믹스의 '어벤져스' 주인공을 보는 것 같은 설레임을 느꼈다.
어려서부터 익히 들어오던 천재들과 같이 연주하게 됐지만, 기쁨은 잠시였다. 곧바로 '혹시 나 때문에 공연을 망치면 어쩌나'하는 걱정이 밀려왔다. 그도 그럴 것이 연주곡이 난해하기로 유명한 에리히 코른골트(1897~1957)의 '피아노 퀸텟 op.15'이였다. 프랑스 안시페스티벌에서 생전 처음 접한 카롤 베파의 '피아노를 위한 토카타'를 연주할 때 같은 막막함까지 밀려왔다. 들리는 소문으론, 다른 피아니스트들이 손사래를 쳤고 그 덕에 내가 연주자로 선택됐다고 했다.
걱정을 뒤로 하고 악보 분석에 들어갔다. 처음 연주하는 실내악이니 더 열심히 준비했다. 내 연주 파트를 금세 외우고, 다른 악기들 파트를 외우기 시작했다. 한 번도 실내악을 경험해 보지 않았으니, 그게 당연하다 생각했다. 그렇게 첫 리허설을 하던 날 협주자 언니 오빠들이 놀라며 "대단하다"고 칭찬을 아끼지 않았던 기억이 난다.
다행히 연주는 성공적이었다. 다섯 명의 연주자, 다섯 개의 악기가 무대에서 하나되는 경험을 처음 해본 것이다. 지금도 그 순간을 떠올리면 벅차다. 음악을 하는 친구들이 내게 자신도 같은 경험을 하고 싶다며 스프링실내악 담당자의 번호를 물어 오곤 한다. 하지만 나는 아직도 그들의 번호를 모른다.
내 연주의 원동력은 이런 경험들이다. 지금은 이 글을 읽는 독자들이 내 원동력의 일환이다. '임주희의 건반노트'가 누구나 들춰 볼 수 있는 우리들의 노트가 되기를 바란다. 내가 겪었던 일들이 전부하거나 정답이라는 얘기는 아니다. 수많은 길 중에 이런 길을 가고 있는 친구가 있음을 말하고 싶을 뿐이다. 음악은 함께 만드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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