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법무·검찰 싸움에 쪽박 깨질라

입력
2020.07.29 18:00
수정
2020.07.29 20:49
26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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취재기자의 오버에서 시작된 ‘황당 사건’ ?
공모관계 희미한데 해법 없는 사생결단
추미애·윤석열 명운 건 싸움에 검찰 질식

편집자주

매주 수요일과 금요일 선보이는 칼럼 '메아리'는 <한국일보> 논설위원과 편집국 데스크들의 울림 큰 생각을 담았습니다.

추미애 법무부 장관이 29일 국회 법제사법위원회 전체회의에 참석하고 있다. 연합뉴스

추미애 법무부 장관이 29일 국회 법제사법위원회 전체회의에 참석하고 있다. 연합뉴스


올해 초 공영방송을 주장하는 공중파에서 이른바 ‘검언유착’이라는 단어가 등장할 때만해도 설마했다. 형사사건 공개 금지 원칙이 발효된 뒤로 검찰이 바짝 몸을 사리면서 취재원 접촉을 일절 금하는 마당에, 유착은 언감생심이기 때문이다. 4월 총선을 앞둔 시점이라 총선용 공세 정도로 치부하고 말았다. 친분 있는 검사(한동훈)의 힘을 빌려 유력 정치인(유시민 등)의 비리를 캐려 했다는 황당한 구조에서는 ‘오버하는 방송기자’의 일탈이 떠올랐다. 과거 법조를 함께 출입했던 후배 기자가 검찰청사에 무단 침입해 검사의 개인 PC를 몰래 보다가 처벌받았던 아픈 기억까지 오버랩됐다.

이번 사건을 구성하는 뼈대는 편지와 대화 녹취록이다. 첫째는 채널A 이동재 기자가 옥중의 이철씨에게 보냈다는 편지. ‘유시민 등 유력 정치인의 비리를 사실대로 밝히라’라는 게 편지의 골자다. 제보자X를 만나서 ‘협조하지 않으면 향후 재판은 물론이고 가족들도 처벌받을 것’이라고 압박했다는 대목은 가히 상상 이상이다. 검찰총장 최측근까지 거론하면서 진술이나 제보를 강요했다면 이철씨 입장에서는 충분히 협박으로 느꼈을 법하다. 문제의 기자는 결국 강요 미수 혐의로 구속되고 말았지만, 언론 윤리 위반으로 처벌해도 충분하지 않았을까 하는 아쉬움이 남는다.

두 번째는 채널A 기자들과 한동훈 검사장이 나눈 대화록. 수사팀에서는 한 검사장이 ‘이철씨 측을 압박해 유시민의 범죄 정보를 얻으려 한다’는 기자에게 “그런 것은 해 볼 만하다”고 말한 대목을 문제 삼지만, 앞뒤 맥락을 아무리 살펴도 공모 관계가 보이지 않는다. 수사팀의 집요한 설득에도 대검 수사심의위마저 공모를 부인하면서 이번 사건은 이동재 기자의 단독 범행으로 흘러가는 분위기가 뚜렷하다. “기자가 검찰 고위직과 연결해 피해자를 협박했다고 의심할 만한 상당한 자료가 있다”면서 영장을 내준 김동현 판사의 판단이 궁금할 따름이다.

다소 황당한 사건은 법무부와 검찰의 집안싸움으로 번지면서 심각해졌다. 윤석열 검찰총장이 검사장 회의를 소집하고 추미애 법무부 장관이 산사에서 결의를 다지는 등 사태가 악화하는 동안 검찰은 사실상 두 쪽이 나고 말았다.

애초 윤 총장이 전문수사자문단 심의에 붙인 게 잘못이다. 측근 검사장이 연루된 사건을 대검에서 통제할 수 있는 자문단에 맡긴 결정을 이해하기 어렵다. 추 장관의 수사지휘권 발동으로 사태는 더욱 악화됐다. 추 장관의 ‘거침없는 하이킥’에 여권 고위관계자가 “장관님, 앞으로는 사고 치기 전에 힌트라도 주세요”라며 농담까지 건넸다는 후문이다.

장관과 총장이 사생결단을 벌이는 동안 서초동 주변에서는 과거사에 기댄 몇 가지 해법이 거론됐다. 우선 최초의 수사지휘권 파동이 벌어졌던 2005년. 천정배 당시 장관이 강정구 교수의 국가보안법 위반 사건을 불구속 수사하라며 지휘권을 행사하자 김종빈 총장은 지휘를 수용한 뒤 이틀 만에 물러났다. 하지만 윤 총장은 지휘는 수용하면서 물러나지 않았다. 참여정부 초기 검찰개혁을 두고 갈등했던 장면도 소환됐다. 당시 강금실 장관은 송광수 총장의 팔짱을 끼는 모습을 공개하면서 충돌을 슬기롭게 피해 갔다. 하지만 추 장관에게 슬기와 지혜는 처음부터 없는 선택지였다.

급기야 추 장관은 검찰총장의 수사권마저 박탈하겠다는 태세다. 검찰개혁의 명분을 내세우고 있지만 도리어 검찰의 정치적 중립성을 훼손하는 시도가 아닐 수 없다. 위법 논란은 차치하고라도 ‘갈 데까지 가보겠다’는 무법 심리가 위태롭기 그지 없다. 추 장관과 윤 총장은 ‘집안싸움에 쪽박 깨진다더니, 이러다 초가삼간 다 태우겠다’는 우려의 목소리가 들리지 않는가.



김정곤 뉴스룸2부문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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