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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일보> 논설위원들이 쓰는 칼럼 '지평선'은 미처 생각지 못했던 문제의식을 던지며 뉴스의 의미를 새롭게 해석하는 코너입니다. 한국일보>
영화 팬들에게 2003년 4월 1일은 쉬 잊을 수 없는 날이다. 1980~90년대 홍콩 영화 황금기를 장식했던 배우 장궈룽(장국영)이 극단적인 선택을 한 날이어서다. 거짓말처럼 사라진 스타를 매년 만우절마다 애도하는 영화 팬들이 적지 않다. 영국 여행을 하는 한국인들 중엔 장궈롱을 추모하기 위해 그가 1년가량 다녔던 리즈대를 애써 찾는 이들도 있다. 영국 중부 도시 리즈는 장궈룽을 매개로 국내에 첫 소개됐다 해도 과언이 아니다.
□장궈룽은 리즈대에서 섬유관리를 전공했다. 홍콩 유명 재단사로 할리우드 스타 윌리엄 홀든과 말런 브랜도까지 고객으로 모셨던 아버지의 영향이 컸다. 리즈는 산업혁명 이후 모직물 산업이 융성했던 공업 도시다. 장궈룽이 수많은 영국 도시 중 유학지로 리즈를 택한 이유일 것이다. 맨체스터와 리버풀, 뉴캐슬처럼 한때 공업이 왕성했던 영국 도시의 공통점이 있다. 열성적인 팬덤을 바탕으로 한 세계적인 명문 축구단이 있다는 점이다. 리즈도 예외는 아니다.
□리즈 유나이티드는 맨체스터 유나이티드와 리버풀 FC, 뉴캐슬 유나이티드 등과 2000년대 초반까지 잉글랜드 프로축구 프리미어 리그(1부리그)에서 강자로 군림했다. 하지만 재정 파탄을 겪으면서 우수 선수를 내다 팔아야 했고, 2005년 챔피언십(2부리그)으로 떨어졌다가 급기야 2007년엔 리그 원(3부리그)으로 추락했다. 맨유에서 박지성과 잠시 발을 맞췄던 영국 유명 축구 선수 앨런 스미스가 전성기 시절 리즈 유나이티드에서 뛰었다.
□조락한 리즈 유나이티드의 처량한 신세는 한국에서 지나간 전성기를 의미하는 ‘리즈 시절’이라는 유행어까지 만들었다. 한국 선수 한 명 뛴 적 없는 해외 하위 리그 팀이 국내에서도 유난히 이름 높은 이유다. 리즈 유나이티드가 최근 챔피언스리그에서 우승해 16년 만의 프리미어 리그 승격을 확정 지었다. 구단 직원 580명이 승격 보너스 1,900만파운드(약 293억원)를 받을 예정이라고 한다. 3부리그까지 떨어졌던 팀의 규모가 새삼 놀랍다. 적어도 구단 직원들은 돌아온 리즈 시절을 벌써 실감하고 있을 듯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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