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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벨상이요? 박정희식 국가주의 넘어 과학을 즐겨야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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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벨상이요? 박정희식 국가주의 넘어 과학을 즐겨야죠"

입력
2020.07.30 04:30
수정
2020.08.03 11:22
21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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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F '빛의 전쟁' 펴낸 '글쓰는 물리학자' 이종필

이른 아침 광화문 네거리. 드론 다섯 대가 복부에 타카핀이 수없이 꽂힌, 목 없는 시신을 배달하는 엽기적 사건이 발생한다. 이 사건 해결사로 나선 이는 경찰도 탐정도 기자도 아닌 물리학자다. 물리학자는 양자역학과 인공지능, 드론과 자동기계학습시스템 등 최신 과학지식을 바탕으로 사건의 출발점인 1895년 을미사변에서부터 근미래까지 종횡무진하며 진실 추적에 앞장선다. SF '빛의 전쟁' 얘기다.


소설 '빛의 전쟁'을 펴낸 물리학자 이종필 교수를 지난 16일 건국대에서 만났다. 고영권 기자

소설 '빛의 전쟁'을 펴낸 물리학자 이종필 교수를 지난 16일 건국대에서 만났다. 고영권 기자


물리학과 물리학자를 전면에 내세운 이 소설의 작가 역시 물리학자다. 서울대 물리학과를 졸업하고 입자물리학으로 박사학위를 받은 정통 과학자이지만, 이제 소설가가 된 물리학자 이종필을 그가 재직 중인 건국대에서 만났다.

그는 원래 '글쓰는 물리학자'로 널리 알려졌다. ‘물리학 클래식’ ‘신의 입자를 찾아서’ 같은 다양한 과학 교양 서적을 냈을 뿐 아니라, 신문 등 각종 지면에 이런저런 시론이나 평론을 기고하면서 시사적 발언도 꺼리지 않는다. 그런 면에서 보자면 소설 쓰기는, 비록 처음이라 해도 자연스러운 도전 수순 같기도 하다.

하지만 의외로 까다로웠다 했다. 그는 "문학을 오랫동안 동경해와서 편집자가 한번 써보라 제안했을 때 덜컥 수락하긴 했는데..."라며 애매하고 웃었다. “교양서를 쓸 때 가장 중요한 건 정확성이거든요. 과학 쪽은 하루가 다르게 새 논문과 새 이론이 나오니까 그런 것들을 매번 살펴봐가며 써야죠. 소설은 맘껏 상상할 수 있으니 이런 원칙에서 자유로울 줄 알았는데, 오히려 허구를 적당히 섞는 게 더 어렵더라고요.”

물리학자가 물리학을 토대로 쓴 소설이니 작품의 무게 중심엔 양자 슈퍼 컴퓨터가 있다. 초고를 쓰던 2017년만 해도 허구에 가까웠으나 2019년 구글은 양자 슈퍼 컴퓨터 개발에 성공했노라 선언했다. 양자 슈퍼 컴퓨터는 이제껏 최고의 슈퍼 컴퓨터로 1만년 정도 걸릴 연산작업을 불과 200초만에 해낼 수 있다. 이 양자 슈퍼 컴퓨터는 양자얽힘 현상을 이용해 우리 주변에 떠도는 빛을 분석, 그 빛 속에 있는 수십, 수백년 전 정보를 추출해낸다.

“양자얽힘 자체는 가장 중요한 양자역학 개념 중 하나에요. 최근 실제 기술과 접목하는 실험들이 계속되고 있죠. 물론 소설에서처럼 이를 이용해 과거까지 본다는 건, 글쎄요 이론적으로는 가능할지 모르지만 현실적으로는 어렵겠죠. 다만 제가 궁금했던 건, 만일 세상을 바꿀 수 있는 과학적 기술이 우리 손안에 들어온다면 이걸 과연 어떻게 사용할까였어요.”

비체에서 출간된 이종필 '빛의 전쟁'.

비체에서 출간된 이종필 '빛의 전쟁'.


소설 속 한국 과학자들은 양자 슈퍼 컴퓨터를 이용해 명성황후 시해에 가담한 친일파들을 처단한다. 최첨단 기술을 민족주의적 열망을 해소하는데 쓰는 셈. 어떤 이는 민족적 통쾌함이나 카타르시스를 느낄 수도 있겠지만, 이 설정 자체는 과학을 바라보는 한국사회를 비꼬기 위함이다. 이 교수는 한국을 두고 "과학과 사회간 관계형성이 제대로 되지 않은 나라"라고 꼬집었다.

“단선적이고, 국가주의적이죠. 기본적으로 후발주자라 열등감이 있어서예요. 이게 극단적으로 발현된 게 '황우석 사태'예요. 그 때 ‘미국의 심장에 태극기를 꽂고 왔다’ 같은 말들이 나돌았죠. 과학이라는 도깨비 방망이와 국가주의가 잘 맞아떨어진 거죠. 최근 4차산업혁명 얘기에서도 여전히 우리는 박정희식 개발주의에서 벗어나지 못했어요.”

이 교수를 '글쓰는 물리학자'로 만든 건 바로 이 부분, 과학과 사회의 관계다. 물리학을 전공으로 택한 것도 “삼라만상에 개입하는” 물리학에 매력을 느껴서다.

“1991년, 제가 대학교 2학년 때 ‘한국원 사건’이 있었어요. 서울대 화학과 대학원생이었던 한국원씨가 시위가 한창이던 파출소 앞을 지나다 경찰이 쓴 권총탄알에 맞아 숨졌는데, 조준사격인지 튀긴 총알을 맞은 건지를 의견이 분분했죠. 그때 물리학과 교수님이 총탄이 가슴에 박힌 각도로 봤을 때 조준사격에 가깝다는 의견을 일간지에 쓴 걸 보고, 과학자가 어떻게 사회적 목소리를 내는지에 대해 배웠죠." 지금까지도 이런저런 시론을 일간지 등에 쓰는 이유다. 유족들 요청을 받아 세월호 자료를 분석, 검토한 것도 그 일환이다.

이 교수가 생각하는 과학과 사회의 가장 이상적인 만남은 '문화적 향유'다. 소설은 그 방편이다. 해외에서는 이미 낯설지 않다. 로봇3원칙으로 유명한 SF대가 아이작 아시모프는 생화학 교수였고, 로봇3원칙에 필적하는 과학3법칙을 널리 알린 아서 C 클라크도 정지궤도 관련 논문을 쓴 발명가였다. 한국에서도 SF 인기가 높아지면서 카이스트 양자공학과를 졸업한 곽재식 작가, 생화학 석사인 김초엽 작가 등이 등장하기도 했다.

“과학 문해력을 높이기 위해서는 교과서를 벗어나 생활의 일부가 되어야 해요. 그런 의미에서 SF는 과학 문해력을 높이는 초기 돌파구가 될 수 있죠. 일단 과학에 친숙해지면 주체적이고 자생적인 과학적 토양이 마련될 거고, 그러다 보면 노벨상 수상자가 자연스레 나오지 않을까요.”

한소범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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