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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사형수의 얄궂은 운명

입력
2020.07.29 04:30
26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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트로이 레온 그레그(7.29)

미국 사형제 역사상 가장 유명한 사형수인 그레그는, 처형이 아니라 탈옥 후 범죄에 희생돼 숨졌다. murderpedia.org

미국 사형제 역사상 가장 유명한 사형수인 그레그는, 처형이 아니라 탈옥 후 범죄에 희생돼 숨졌다. murderpedia.org


트로이 레온 그레그(Troy Leon Gregg, 1948~1980)는 미국 사형제도의 역사에 기록될 만한, 기이한 운명의 사형수였다. 그는 미국 연방대법원이 ‘잔인하고 관행에 벗어난 형벌(cruel and unusual punishments) 금지’를 규정한 수정헌법 8조를 근거로 사형 판결 남발에 제동을 건 1972년 6월의 ‘퍼먼 v. 조지아주(Furman v. Gerogia)’ 판결 직후인 1973년 11월, 조지아주에서 강도 살인을 저질렀다. 조지아주는 인근 텍사스, 플로리다주와 함께 1976년 2월 ‘잔인하고 관행에서 벗어난' 사형 판결이 없도록 형법을 개정했고, 1972년 판결 이후 미국 첫 사례로 그레그에게 사형을 선고했다. 주춤하던 사형 판결은 그렇게 부활했고, 그의 사례는 다시 연방대법원에 회부됐다.

1972년 5대 4로 위헌을 선고한 대법원의 취지는 사형제 자체가 아니라 차별적이고 임의적인 사형을 위헌 판결한 거였고, 다수 의견 재판관 5명 가운데 사형제 자체를 수정헌법 위반이라고 판단한 건 윌리엄 브레넌과 서굿 마셜 단 2명이었다. 남부 각 주는 형법 개정 작업에 착수했다. 첫 ‘결실’이 조지아주 등의 형법이었고, 첫 제물이 그레그였다. 연방대법원은 1976년 7월, 7대 2로 조지아주의 그레그 사형을 합헌으로 판결했다.

사형수 그레그는 1980년 7월 28일, 살인범 죄수 세 명과 함께 레드스빌(Reidsville) 주립교도소 철조망을 소방사다리로 넘어 미리 준비한 차량으로 탈옥했다. 그는 조지아주 최초로 탈옥에 성공한 사형수였다. 교정 당국은 그레그가 의기양양 지역 신문에 전화를 걸어 탈옥 이유를 밝힐 때까지 그가 사라진 것조차 알지 못했다.

탈옥 당일 노스캐롤라이나까지 도주에 성공한 그레그는 만 하루도 지나지 않은 다음 날 새벽 한 술집에서 만취 상태로 여자 종업원을 희롱하다 바이크족(bikers)에게 폭행 당해 숨졌다. 나머지 탈옥범 셋도 사흘 뒤 체포됐다.

최윤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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