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선의 놀이터, 괴산의 4색 구곡
충북 괴산은 어디를 봐도 산이다. 1,000m 안팎의 고봉으로 둘러싸였으니 골짜기도 깊다. 깊기만 한 게 아니라 경치도 빼어나다. 송나라 유학자 주자가 무이구곡(武夷九曲)을 경영한 이래, 조선의 선비들도 수려한 계곡마다 ‘○○구곡’이라 이름 붙이고 자연을 벗 삼아 자신들만의 이상향을 꿈꿨다. 괴산은 국내에서 구곡이 가장 많은 지역이다. 한여름 무더위를 식히기 좋은 괴산의 4개 구곡을 소개한다.

괴산의 대표 피서지인 화양구곡의 제9곡 파천. 암반을 미끄러지는 물결이 한폭의 산수화 같다.
화양구곡, 바위에 미끄러지는 물비늘
화양구곡은 괴산의 대표 피서지다. 조선시대 노론의 영수 송시열이 머물렀던 곳으로 1곡에서 9곡까지 물줄기가 넓고 시원하다. 잠시만 발을 담그고 있어도 무위자연으로 빠져든다. ‘돌돌돌’ ‘짜르르’, 물 흐르는 소리가 예술이다.

한 여행객이 물비늘이 부서지는 화양구곡에 발을 담그며 더위를 식히고 있다.

한 여행객이 화양구곡의 자연 바위 그늘에서 휴식하고 있다.
물굽이마다 붙인 이름이 이를 증명한다. 1곡 경천벽은 바위 절벽이 하늘을 떠받치고 있다는 뜻이다. 계곡을 거슬러 오르며 구름이 맑게 비친다는 운영담(雲影潭), 눈물자리처럼 깊고 부드럽게 물웅덩이가 파진 읍궁암(泣弓巖), 금모래처럼 눈부신 금사담(金沙潭)으로 이어진다. 그다음은 별을 우러러보듯 바위덩어리가 첩첩이 쌓인 첨성대(瞻星臺), 구름 모양으로 겹겹이 얹혀진 능운대(凌雲臺), 용이 꿈틀거리는 모양의 와룡암(臥龍巖), 낙락장송에 학이 둥지를 틀었다는 학소대(鶴巢臺)다. 마지막 9곡 파천(巴串)은 매끄러운 바위가 용 비늘을 꿰어 놓은 듯하다는 비유다. 아무리 점잖은 사람이라도 이곳은 그냥 지나치기 어렵다. 매끄러운 바위에 군데군데 크고 작은 물웅덩이가 파여 있고, 옥구슬 구르듯 계곡물이 하얗게 미끄러진다. 주변 바위에는 관찰사, 순찰사 등 이곳을 거쳐간 이들이 다투어 이름을 새겼다. 예부터 자리싸움이 치열한 곳이었다는 뜻이다.
화양구곡은 경치로만 보면 깊은 산중이지만 접근은 쉬운 편이다. 주차장에서9곡까지 약 3.1km다. 7곡까지는 평지나 다름없다. 이후부터 계곡을 따라가는 완만한 산길이지만 찻길처럼 넓고 일부 구간에는 보도블록까지 깔려 있어 걷기도 편하다. 울창한 산림에 그늘까지 드리워져 물소리를 벗 삼아 산책하기에 전혀 지루하지 않다.
선유구곡, 신선들의 놀이터

여행객이 선유구곡 초입 '선유동문' 아래 계곡에서 물놀이를 즐기고 있다.
선유구곡은 물길로 치면 화양구곡의 상류다. 1곡 시작점은 화양구곡이 끝나는 충북자연학습원에서 약 3km 떨어져 있다. 계곡 길이와 폭은 화양구곡의 절반 정도지만 그만큼 아기자기하다. 선유구곡은 퇴계 이황이 계곡의 바위와 노송 등이 절묘하게 어우러진 경치에 반해 구곡의 이름을 붙였다고 전해진다. 제1곡 선유동문을 시작으로 경천벽, 학소암, 연단로, 와룡폭, 난가대, 기국암, 구암, 은선암으로 이어진다. 세월이 흘러 일부 글자는 사라졌지만 구곡의 절경만은 그대로 남았다.
쌍곡구곡, 물 좋기는 으뜸이지만

제2곡 소금강은 쌍곡구곡에서 경치가 가장 빼어난 곳이다. 바로 앞에 휴게소가 있어 차를 대기 좋다.

쌍곡구곡 소금강 아래 계곡에서 한 어린이가 물놀이를 즐기고 있다.
쌍곡구곡은 괴산 칠성면 쌍곡마을에서 청천면과의 경계인 제수리재까지 이어지는 약 10km의 길고 가파른 계곡이다. 자연을 벗 삼아 유유자적하며 걸을 수 있는 수준을 벗어난다. 구곡의 명칭도 호롱소, 소금강, 병암(떡바위), 문수암, 쌍벽, 용소, 쌍곡폭포, 선녀탕, 장암(마당바위) 등으로 멋스러운 은유와는 거리가 있다.
그럼에도 보배산 칠보산 군자산 비학산 등 험준한 산등성이에서 흘러드는 계곡물은 어느 곳보다 맑고 시원하다. 기암괴석과 노송이 어우러진 소금강휴게소 주변 풍광은 특히 빼어나다. 그러나 평소 뜸한 이 길도 여름 휴가철에는 밀려드는 차량으로 몸살을 앓는다. 도로는 좁고 차 댈 곳은 마땅치 않다. 계곡 주변 식당이나 숙박업소를 예약한 게 아니면 고생길이 될 수도 있다. 성수기를 피해 휴가를 잡은 이들에게 추천한다.
갈은구곡, 아직은 한적한 잠재 관광지

갈은구곡 초입에서 여행객이 계곡물에 발을 담그고 더위를 식히고 있다. 괴산의 피서지 중에서 아직까지 덜 알려진 계곡이다.

갈은구곡은 상대적으로 덜 알려져 괴산의 피서지 중에서는 비교적 한적하다.
갈은구곡은 위의 세 곳에 비해 한적한 편이다. 한국관광공사 세종충북지사에서 ‘강소형 잠재관광지’로 선정해 더 알리려 애쓰는 곳이다. 갈은구곡은 갈론계곡으로도 불린다. ‘갈론’은 자연부락 명칭이고, ‘갈은’은 옛날 갈씨 성을 가진 이가 숨어 살았던 곳이라는 데서 유래한 이름이다. 갈론마을은 ‘산막이옛길’이 시작되는 괴산소수력발전소에서도 4km 넘게 들어가야 하는 산골이다. 1980년대까지 자전거도 다닐 수 없는 곳이었다고 한다. 지금은 마을까지 도로가 나 있고, 마을을 벗어나면 곧장 호젓하고 맑은 계곡이 이어진다.

갈은구곡 초입의 갈론마을. 우람한 군자산 자락에 체험관으로 바뀐 폐교가 남아 있다.
신선이 내려왔다는 강선대를 시작으로 장암석실, 갈천정, 옥류벽, 금병, 구암, 고송유수재, 칠학동천, 선국암까지 약 3km에 걸쳐 9곡이 이어진다. 신선이 바둑을 두던 자리라는 선국암 바위에는 바둑판과 함께 네 귀퉁이에 ‘사노동경(四老同庚)’이라는 글자가 음각돼 있다. 동갑내기 네 노인이 바둑을 즐겼다는 뜻이다. 계곡으로 가는 산비탈의 묵밭에는 개망초꽃이 하얗게 덮여 산골의 정취를 더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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