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벽과 천장 허문 볼트…집 안팎의 경계를 허물다

입력
2020.08.05 04:30
수정
2020.08.05 14:40
18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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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집자주

집은 ‘사고 파는 것’이기 전에 ‘삶을 사는 곳’입니다. 집에 맞춘 삶을 살고 있지는 않나요? 삶에, 또한 사람에 맞춰 지은 전국의 집을 찾아 소개하는 기획을 수요일 격주로 <한국일보> 에 연재합니다.

지난 2월 완공된 경기 양평의 '볼트하우스'. 주택이라면 떠올리는 네모 반듯한 모습과 달리 지붕, 천장, 벽, 창문 등이 모두 둥글둥글하다. 김용관 건축사진작가

지난 2월 완공된 경기 양평의 '볼트하우스'. 주택이라면 떠올리는 네모 반듯한 모습과 달리 지붕, 천장, 벽, 창문 등이 모두 둥글둥글하다. 김용관 건축사진작가


지붕과 천장에다 벽과 창문마저 둥글다. 방과 방 사이를 잇는 통로도 둥글고, 층과 층을 오르는 계단도 둥글게 말려 올라간다. 대지 706㎡(약 213평), 연면적 133㎡(약 40평) 규모의 2층집은 위에서 보면 세 개의 하얀 롤케이크가 살짝 포개진 모양이다. 올해 2월 경기 양평의 산속에 지어진 ‘볼트하우스(Vault House)’다. 인구 절반 이상이 네모 반듯한 성냥갑을 차곡차곡 쌓은 듯한 아파트에 사는 한국에서는 보기 드문 형태의 집이다.


'볼트하우스'는 위에서 내려다보면 반원통형인 볼트가 크게 세 개 포개진 모양이다. 김용관 건축사진작가

'볼트하우스'는 위에서 내려다보면 반원통형인 볼트가 크게 세 개 포개진 모양이다. 김용관 건축사진작가


빛으로 가득한 볼트의 곡면

확연하게 구분되는 외관이지만 출발은 내부에서 시작했다. 집을 설계한 장수현(아뜰리에 장) 건축가는 “전원주택은 밖에서 보이는 장면에 집중해 설계하지만 볼트하우스는 이용자가 어떤 공간을 경험할 것인지에 대한 고민이 출발점이었다”며 “벽면으로 갇힌 개별적인 공간보다 빛과 구조의 완결성을 갖춘 공간으로 만들고 싶었다”고 설명했다.

‘빛의 건축가’라 불리는 미국 건축 거장 루이스 칸(1901~1974)의 “건축은 하나의 룸(room)을 만드는 과정에서 생산된다"고 말한 바 있다. 칸이 설파한 ‘룸’은 물리적으로 구획되면서도 외부와 연결되는 공간으로, 한국 전통건축에서 정자(亭子)와 개념이 비슷하다.

집의 핵심 구조인 볼트(반원통형의 천장)도 여기에서 비롯됐다. 볼트 구조로 천장은 높아지고 벽과 천장 사이의 경계가 사라진다. 장 건축가는 “볼트는 로마시대 성전이나 교회에 많이 썼던 건축 양식으로 내부에서 보면 열려 있는 하늘과 같은 느낌이 든다”며 “박스 안에 갇혀 있는 게 아니라 위로 개방되어 독립적이고 자유로운 공간을 즐길 수 있다”고 설명했다. 어지러울 것이라는 우려를 깨고 볼트의 곡면은 시선의 부드러운 자유를 선사한다.

벽과 천장이 허물어진 볼트의 곡면을 따라 남북으로 배치된 커다란 전면 창에서 들어온 빛이 공간 가득 퍼진다. 시시각각 실내의 밝기가 달라지고, 그림자가 너울거린다. 높이 6m가 넘는 창을 통해 바깥 경관이 안으로 쏟아져 들어오면서 내ㆍ외부의 경계도 자연스럽게 허물어진다.


남향을 향해 있는 '볼트하우스'의 아치형 창문으로 시시각각 자연광이 쏟아져 들어온다. 김용관 건축사진작가

남향을 향해 있는 '볼트하우스'의 아치형 창문으로 시시각각 자연광이 쏟아져 들어온다. 김용관 건축사진작가


2층집인 '볼트하우스'는 나선형 계단이 둥글게 말려 올라간다. 김용관 건축사진작가

2층집인 '볼트하우스'는 나선형 계단이 둥글게 말려 올라간다. 김용관 건축사진작가


내부 구조도 개방적이다. 거주자 간 소통을 위해 기둥과 벽을 최소화했다. 중앙 볼트에는 메자닌(중층 구조)이 있고, 그 아래에는 거실과 주방이 놓여 있다. 집의 일부에 지나지 않았던 주방은 전망이 탁 트인 중심에 배치됐다. 공용공간인 거실, 주방, 메자닌은 벽 없이 유연하게 연결된다.

층을 연결하는 계단도 둥글게 돌아가도록 해 시야를 거스르지 않도록 했다. 중앙 볼트를 기준으로 양옆 볼트 부분에는 마주 보도록 실을 배치했다. 각 실의 벽면도 둥글게 감고 돌아간다. 2층 서편에는 테라스를 뒀다. 넓지 않은 마당을 대신한다. 장 건축가는 “벽이나 기둥으로 공간을 구획하고, 테라스 대신 방을 내 공간을 확장할 수도 있지만 외부와 연결하게 해 오히려 공간감이 더 확장될 수 있다”고 설명했다.


'볼트하우스' 외부에는 집처럼 둥근 형태의 풀장이 있다. 30톤에 달하는 물이 들어가는 풀장에는 정화시설이 별도로 설치됐다. 김용관 건축사진작가

'볼트하우스' 외부에는 집처럼 둥근 형태의 풀장이 있다. 30톤에 달하는 물이 들어가는 풀장에는 정화시설이 별도로 설치됐다. 김용관 건축사진작가


기성복과 맞춤복 사이의 집

볼트하우스는 특정 건축주가 의뢰해 그에 맞춤 설계된 집이 아니다. 시공사가 전문 건축가를 섭외해 설계를 요청한 뒤 지어 이를 원하는 사람들에게 분양하는 방식이다. 정해진 양식에 맞춰 같은 평면을 무한 반복하는 아파트가 기성복이고, 특정 건축주에 맞춰 설계된 주택이 맞춤복이라면 볼트하우스는 그 중간 지점인 셈이다. 시공을 맡은 김영관 ‘생각 속의 집’ 대표는 “나만의 집을 지으려는 수요가 많지만 정작 건축가에게 설계를 의뢰하지 않고 헐값에 시공업체가 지어 실패하는 경우가 수두룩하다”며 “볼트하우스는 건축가가 설계한 대중적인 집의 좋은 표본이 될 수 있다”고 설명했다.

전문 건축가가 설계한 만큼 시공도 깐깐하게 이뤄졌다. 예컨대 집을 올릴 때 지켜야 할 동결심도(땅이 얼어 들어가는 정도, 중부 기준 약 120㎝)가 기준보다 더 깊다. 집의 전면과 후면에 삼중창을 사용해 단열을 강화했다. 우레탄을 사용해 벽 두께도 30㎝로 일반 주택(18㎝)보다 훨씬 두껍다.

볼트를 잘 구현하기 위해 특수한 기포 콘크리트 벽돌도 사용됐다. 김 대표는 “시공업체들이 저렴한 자재를 사용하거나 부실하게 시공해도 외관상으로는 큰 차이를 느낄 수 없다”며 “살다 보면 춥거나, 바람이 잘 안 통하거나 하자가 많지만, 건축가가 설계하면 디자인뿐 아니라 기본에 충실한 집을 지을 수 있다”고 강조했다.


'볼트하우스'의 2층 메자닌에서 다양한 자연 풍경을 감상할 수 있다. 김용관 건축사진작가

'볼트하우스'의 2층 메자닌에서 다양한 자연 풍경을 감상할 수 있다. 김용관 건축사진작가


'볼트하우스' 1층에 자리한 주방은 탁 트인 전망과 마주한다. 김용관 건축사진작가

'볼트하우스' 1층에 자리한 주방은 탁 트인 전망과 마주한다. 김용관 건축사진작가


볼트하우스를 구매해 서울에서 양평으로 주거를 옮긴 김동후(54)ㆍ이경희(50) 부부는 “예전에 집을 한번 지어 봤는데 물 새고, 금 가고, 보통 손이 많이 간 게 아니었다”며 “건축가가 설계해 신뢰가 갔고, 막연하게 집을 짓는 것보다 현실적으로 실패할 확률을 줄일 수 있다”고 말했다.

그렇다고 아파트처럼 볼트하우스가 같은 형태로 줄줄이 지어지는 건 아니다. 건축주 요구에 따라 형태에 변화를 줄 수 있다는 게 아파트와 또 다른 차이점이다. 가령 수영장이 필요 없다고 하면 수영장을 제외한 집을, 2층 테라스 대신 방을 하나 더 넣은 집을 선택할 수도 있다. 현관이나 창문 구성도 달라질 수 있다. 벽지, 수납공간, 계단 위치와 크기, 내부 구조도 자유자재로 변형 가능하다. 장 건축가는 “단절되거나 갇혀 있는 공간이 아니라 융화되고, 공존하는 주거 문화를 찾는 사람들에게 적합한 집”이라며 “이 같은 개념은 공유하지만 삶의 방식에 따라 공간구성은 다양해질 수 있다”고 말했다. 일정 면적만 갖춘다면 도심, 바닷가 등 대지조건도 크게 구애 받지 않는다.


산속에 위치한 볼트하우스는 자연광과 풍경을 집 안으로 끌어들이며 안팎의 경계를 허문다. 김용관 건축사진작가

산속에 위치한 볼트하우스는 자연광과 풍경을 집 안으로 끌어들이며 안팎의 경계를 허문다. 김용관 건축사진작가


겨울과 봄에 이어 여름을 나고 있는 김씨 부부는 가장 큰 장점으로 “생활에 큰 불편함 없이 자연을 즐길 수 있다”는 점을 꼽았다. 단점으로는 “수납공간이 부족하고, 풀장 관리가 까다롭다”고 하면서도 “짐은 줄이면 되고, 다시 선택해도 풀장을 선택할 것”이라고 했다. 성인이 된 자녀 둘을 포함해 고등학생 자녀가 있는 이들 부부는 “코로나19로 사람들이 ‘집콕’하면서 갈등이 많다고 하지만, 저희 식구들은 오히려 ‘집콕’하면서 집에 대한 만족감이 더 커졌고, 다양한 대화를 하면서 함께 있는 시간이 즐거워졌다”고 말했다.


강지원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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