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번 북미평화회담에도 초대는 받았지만 우리가 사인할 곳은 없어요.”
1953년 체결된 한국전쟁 정전협정 서명란에 남한이 빠져 있다는 사실을 뒤늦게 알게 된 아내(염정아)에게 대통령 한경재(정우성)는 이렇게 말한다. 67년 전이나 지금이나 남북 문제에서 우리가 할 수 있는 게 많지 않다는 걸 강조하는 대사다.
29일 개봉하는 영화 ‘강철비2: 정상회담’은 이 같은 국제정치 인식에서 출발한다. 자국 내 정치적 이득을 위해 한반도의 갈등을 이용하려는 미국과 중국, 화해의 손을 내밀다가도 갑자기 돌변해 군사적 위협을 가하는 북한 그리고 일본을 전쟁 가능 국가로 만들려 하는 일본 우익 정권까지. 미국과 중국 간에 심화하는 갈등과 우리가 처한 딜레마는 그 중에서도 핵심이다.
영화는 이러한 상황을 가상의 세계에서 극단으로 밀어붙인 뒤 주인공 한경재를 곤경에 빠뜨린다. 북한과 미국, 중국, 일본의 정치적 욕망이 집결하는 한반도에서 충돌을 막고 평화를 중재하는 것이 그의 임무다.
북한 쿠데타로 부상을 입은 ‘1호’를 싣고 남한으로 내려온 정예요원(정우성)과 청와대 외교안보수석(곽도원)이 손을 잡고 전쟁 위기를 막는다는 내용의 ‘강철비’의 속편이지만 이야기도 인물도 직접적으로 연결되지 않는다. 심지어 정우성과 곽도원은 이번 영화에서 위치를 바꿔 각각 남한 대통령 한경재와 북한 호위총국장 박진우를 연기한다. 남북이 서로 입장을 바꾼다 해도 대외적 요소가 바뀌지 않는 한 한반도 문제가 크게 달라지지 않을 것이라는 인식을 강조한 설정이다.
24일 서울 삼청동 카페에서 만난 양우석 감독은 “한반도가 갈 수 있는 길을 전쟁, 북의 내부 붕괴, 평화적인 비핵화, 남한의 핵무장 등 크게 4가지로 본 해외 정치외교 전문가들의 견해를 토대로 두 영화를 만들었다”고 말했다. 전쟁과 한국의 핵무장에 대한 이슈를 다룬 1편과 달리 속편은 북의 내부 붕괴와 평화적인 비핵화를 언급한다. 그래서 속편이되 “상호보완적 속편”이라고 양 감독은 규정했다.
영화는 극 초반 북미 평화협정 체결을 앞두고 남북과 미국, 중국, 일본 간의 얽히고설킨 갈등을 설명하며 시작한다. 미국은 일본과 손잡고 중국을 견제하려 하고, 중국은 이를 피하려 한일 간의 갈등을 키우려 한다. 일본 우익 단체는 북한군을 매수해 남한을 공격하려 하지만, 북한군은 다른 생각을 품고 있다. 폭풍전야 상황에서 평화협정 체결을 위해 북한 원산에서 모인 한국과 북한, 미국 정상은 쿠데타를 일으킨 북 호위총국장에게 납치돼 핵잠수함 함장실에 갇힌다.
국제 정치를 다룬 스릴러로 출발한 영화는 좁디 좁은 선실에 갇힌 세 정상의 블랙코미디를 거쳐 미사일이 오가는 잠수함 액션으로 끝을 맺는다. 국제 정세를 설명하기 위한 정보량이 많아 극 초반엔 다소 지루하게 느껴질 수 있다. 양우석 감독은 “관객의 신뢰를 얻기 위해 넣어야 할 정보량이 많아서 최대한 재미를 느낄 수 있게끔 유머를 넣거나 다양한 비유를 쓰려 했다”고 말했다.
영화는 남한과 북한, 미국 세 정상이 주고받는 대화를 통해 한반도 문제를 복기하며 중재자로서 답답한 상황에 처한 우리 입장을 되새긴다. 좁은 선실에서 티격태격 다투는 북한과 미국, 이들을 어르고 달래는 한국의 모습은 웃음을 자아내면서도 씁쓸한 뒷맛을 남긴다.
영화의 하이라이트는 일촉즉발의 위기 속에서 펼쳐지는 잠수함 액션 시퀀스다. 잠수함과 잠수함, 전투기와 잠수함 간의 전투 장면은 긴장과 몰입을 끌어올리며 초반의 지루함을 상쇄한다. 침착하고 유연한 남한 대통령, 북한의 양면적인 모습을 나눠 보여주는 최고지도자 조선사(유연석)와 호위총국장, 도널드 트럼프를 연상시키는 미국 대통령 스무트(앵거스 맥페이든) 등 다채로운 캐릭터들의 대비도 극에 활력을 불어 넣는다.
'강철비2: 정상회담'은 차가우면서도 온기를 잃지 않는 영화다. 액션 블록버스터를 지향하면서도 진지한 질문을 잊지 않는다. 양 감독은 “두 편의 '강철비'를 통해 북한에 대해 평소 생각을 하고 있는지, 북한 정권 붕괴 가능성에 대해선 어떻게 생각하는지, 앞으로 가야 할 길로는 어느 쪽을 선호하는지, 통일이냐 아니냐가 중요하기보다 평화체제 구축으로 나아가야 하는 게 아닐까 묻고 싶었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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