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알고 보니 외래종? 매미나방ㆍ대벌레 ‘대발생’ 수수께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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알고 보니 외래종? 매미나방ㆍ대벌레 ‘대발생’ 수수께끼

입력
2020.07.26 16:30
수정
2020.07.26 20:33
12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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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생종 천적 영향으로 대발생 일반적이지 않아"
외래종과 혼합돼... 유전적으로 강해졌을 가능성 커
지난 겨울 평균 3.1도... 따뜻한 겨울도 영향 미쳐

“나무를 빗자루로 털었더니 벌레가 우수수 쏟아지더라고요. 초반에는 등산로 양 옆 나무만 수거했는데도 50ℓ 쓰레기봉투 10개가 꽉 들어찼어요.” (서울 은평구 관계자)

지난달 23일 촬영된 충북 제천의 한 공원 기둥에 달라 붙은 매미나방과 매미나방이 낳은 알집. 제천=연합뉴스

지난달 23일 촬영된 충북 제천의 한 공원 기둥에 달라 붙은 매미나방과 매미나방이 낳은 알집. 제천=연합뉴스

전국이 벌레로 몸살을 앓고 있다. 이달 초, 서울시 은평구 봉산을 오른 등산객으로부터 나뭇가지에 벌레가 빽빽하다는 민원이 접수됐다. 확인해 보니 관내에서 처음 목격되는 '대벌레'였다. 강원 원주, 충북 단양 등지에서는 ‘매미나방’ 유충이 나뭇잎을 모두 갉아 먹는다는 민원이 쏟아졌다. 산림청의 조사 결과, 여의도 면적의 21배인 61.83㎢를 뒤덮는 규모의 매미나방이 전국에서 번식한 상태였다.

전문가들은 최근 이러한 '돌발 해충'이 빈번하게 나타나는 이유로 가장 먼저 기후 변화를 꼽는다. 겨울철 이상 고온으로 곤충에게 좋은 서식 환경이 갖춰졌다는 것이다. 하지만 단순히 기후 변화만으로 갑작스럽게 대대적인 곤충 번식이 이뤄졌다고 볼 수 없다는 의견이 제기되고 있다. 자생종으로 알려진 이들 곤충이 알고 보면 외래종과 유전적으로 혼합된 종이기 때문에 과거 볼 수 없었던 번식력을 과시하고 있다는 주장이다.

역사상 가장 따뜻한 겨울이 보낸 경고

서울 은평구 봉산에서 출몰한 '대벌레'의 모습. 은평인터넷방송 캡처

서울 은평구 봉산에서 출몰한 '대벌레'의 모습. 은평인터넷방송 캡처

대벌레와 매미나방은 모두 ‘알’로 겨울을 지낸다는 공통점을 가진다. 대벌레는 한 마리당 600~700개 정도의 알을 낳고, 이 알은 3월 하순과 4월에 부화한다. 매미나방도 한 번에 300개 정도의 알을 낳고 이듬해 4월에 유충으로 부화한다.

수 백개씩 알을 낳아도 대부분은 한반도의 추운 겨울을 이기지 못하고 죽는다. 그러나 사상 가장 따뜻했던 지난 겨울이 이 알들의 생존력을 높였고, 폭발적인 개체 수 증가로 이어졌다고 전문가들은 추정한다. 26일 김태우 국립생물자원관 동물자원과 환경연구사는 “온도가 올라갈수록 알이 빨리 부화하고, 유충의 성장 기간이 단축되고, 성충의 수명이 길어지는 등 곤충이 살기에 적합한 환경이 된다”고 설명했다. 지난 겨울의 전국 평균 기온은 3.1도로 1973년 이후 가장 높았다. 최저 기온도 영하 1.4도에 그쳤다.

기후 변화로 인해 이런 돌발 해충은 점차 많아질 것이라는 전망이다. 은평구는 최근 대벌레 사태를 계기로 기후 재난에 대비가 필요하다며 "정부가 걷는 환경개선 부담금의 지방자치단체 배분 비율을 현행 10%에서 30%로 올려달라"고 환경부에 건의한 상태다.

매미나방, 선박 유입 외래 곤충 '1순위'... 실은 외래종?

박종호 산림청장이 지난 17일 강원 원주 지역의 매미나방 방제 현장을 방문해 포충기로 잡은 매미나방을 살펴보고 있다. 원주=뉴시스

박종호 산림청장이 지난 17일 강원 원주 지역의 매미나방 방제 현장을 방문해 포충기로 잡은 매미나방을 살펴보고 있다. 원주=뉴시스

대벌레, 매미나방의 대발생을 기후적인 요인으로만 꼽기에는 의문점이 남는다. 대벌레, 매미나방은 '꽃매미' '미국 선녀벌레'처럼 외래종이 아닌 자생종이기 때문이다. 외래종은 국내 생태계에 천적이 없어 급격히 번식이 가능하지만, 자생종의 경우에는 이런 대발생 자체가 드문 일이다. 전문가들이 유전자 분석을 해 보면 대벌레와 매미나방이 실은 자생종과 다른, 국내 개체군이 아닐 수 있다고 추정하는 이유다.

김효중 군산대 생물학과 교수는 "곤충이 원래 산지에서 자라고 번식해왔다면 그들하고 엮여 있는 천적, 미생물, 곰팡이의 영향으로 대발생을 하지 않는 게 일반적"이라며 "보통 곤충이 미지의 곳에 떨어졌을 때, 제어할 수 있는 생물학적 요인이 배제됐을 때, 폭발적으로 번식이 가능하다"고 말했다. 김 교수는 그러면서 "선박으로 유입되는 가장 흔한 외래 곤충이 매미나방"이라며 "대벌레도 매미나방도 확인해 봐야겠지만 유전적으로 다른 집단이 국내에 상륙, 국내 개체군과 만나 폭발적인 반응을 일으켰을 가능성이 있다"고 덧붙였다.

보통 근친 교배를 할수록 유전적으로 약화되고, 반대의 경우 유전적으로 강화된다. 앞서 미국에서도 아시아 쪽 매미나방과 유럽에서 건너 온 매미나방이 혼합되면서 유전적으로 강해져, 대발생이 나타난 사례가 보고된 바 있다. 최근 '곤충의 습격'은 기후변화와 외래종을 통한 혼종의 확산이 함께 빚어낸 자연현상일 가능성이 크다.

송옥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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