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돈 받고 난치병 환자 안락사시킨 日 의사들 '우생 사상' 충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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돈 받고 난치병 환자 안락사시킨 日 의사들 '우생 사상' 충격

입력
2020.07.24 18: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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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700만원에 안락사 원한 환자에 약물 투여
'적극적 안락사 허용' 둘러싼 사회적 관심도
警, 안락사 허용 조건에 해당 안된다고 판단
"노인은 좀비" 체포 의사들 우생사상 드러나

일본 교토부 경찰은 23일 루게릭병 환자에게 약물을 투여해 숨지게 한 혐의로 현직 의사 2명을 긴급 체포했다. NHK 캡처

일본 교토부 경찰은 23일 루게릭병 환자에게 약물을 투여해 숨지게 한 혐의로 현직 의사 2명을 긴급 체포했다. NHK 캡처


일본에서 난치병인 ‘근위축성측색경화증(ALSㆍ루게릭병)’을 앓는 여성에게 약물을 투여해 사망하게 한 혐의(촉탁살인)로 의사 2명이 체포됐다. 이를 계기로 안락사를 어디까지 허용할지에 대한 논의가 필요하다는 의견이 제기되는 한편, 붙잡힌 의사들이 고령자를 비하하는 ‘우생 사상’을 노골적으로 강조해 온 것으로 알려져 파문이 일 전망이다.

23일 교토부 경찰에 체포된 의사 2명은 지난해 11월말 루게릭병으로 전신마비 상태인 여성 환자(당시 51세)씨의 부탁을 받고 교토시의 한 아파트에서 약물을 투여해 숨지게 했다. 이들은 도우미에게 환자의 지인이라고 소개했으며 도우미가 다른 방에 있는 사이 약물을 투여하고 돌아갔다. 부검 결과 고인의 체내에서 주치의가 처방하지 않은 약물이 다수 검출됐고 경찰은 폐쇄회로(CC)TV 영상 등을 통해 용의자들을 특정했다.

고인은 사망 전 ‘안락사를 원한다’는 취지의 글을 지속적으로 올린 것으로 확인됐다. 그는 지난해 9월 트위터에 “굴욕적이고 비참한 하루가 계속된다. 한시도 못 견디겠다. 안락사를 시켜달라”고 썼다. 또 “왜 안락사는 암 환자만을 대상으로 얘기되는지 항상 불만을 느껴왔다”며 “해외에서 안락사하는 것을 바라고 있다”고도 적었다. 고인은 거동할 수 없지만 눈의 움직임으로 조작할 수 있는 컴퓨터를 이용해 왔다. 체포된 의사들과는 사회관계망서비스(SNS)로 알게 된 사이였다. 사망 전 고인에게서 용의자 중 한 명의 계좌로 약 150만엔(약 1,700만원)이 입금된 사실도 확인됐다.

일본에선 이전부터 안락사 인정 여부가 쟁점이 돼 왔다. 1991년 도카이대 병원 의사가 말기암 환자에게 가족 요청으로 염화칼륨을 투여해 사망에 이르게 한 사건이 대표적이다. 재판부는 1995년 의사에게 유죄 판결을 내리면서도 △견딜 수 없는 육체적 고통이 있을 것 △사망이 임박했을 것 △고통을 없애는 방법을 다 써 다른 수단이 없을 것 △환자 본인의 의사가 명백할 것 등 4가지를 안락사를 예외적으로 인정하는 조건으로 판시했다.

일본에선 죽음을 앞둔 환자에게 약물 투여로 죽음을 맞게 하는 ‘적극적 안락사’를 허용하지 않고 있다. 하지만 무의미한 연명 치료를 중단하는 ‘소극적 안락사’의 경우는 의사에게 책임을 묻지 않는 사례도 있다. 이와 관련, 2012년 초당파 의원들을 중심으로 존엄사 법안이 논의돼 왔지만 본인의 의사에 반해 연명치료가 중단될 수 있다는 우려와 장애인 단체 등의 강한 반대로 현재까지 법률 제정으로 이어지지 않고 있다.

이번 사건이 알려지면서 인터넷에서는 “본인이 죽고 싶다는 강한 의지가 있다면 들어주는 것이 좋다고 생각한다”며 고인의 결정에 공감하는 여론이 적지 않다. 이에 루게릭병 환자인 후나고 야스히코 참의원 의원은 “난치병 환자들이 ‘살고 싶다’고 말하는 것을 더욱 어렵게 만든다”며 반론을 제기하기도 했다. 그는 “나도 한때 ‘죽고 싶다’고 생각한 적이 있었지만 내 경험이 다른 환자에게 도움이 될 수 있다는 것을 깨닫고 생각이 바뀌었다”며 “죽을 권리보다 살아갈 권리를 지키는 사회를 만드는 것이 훨씬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그러나 수사 당국은 이번 사건이 안락사에 해당하지 않는다고 판단하고 있다. 재판부가 안락사를 인정한 조건 중 사망이 임박했거나 고통을 없애는 다른 수단이 존재하지 않는다는 내용을 충족하지 않는다는 까닭에서다. 양측 간 오간 현금도 사실상 ‘살인 의뢰’ 대가로 보고 있다.

더욱이 체포된 의사들은 고령자나 난치병 환자에 왜곡된 인식을 공공연하게 밝혀 온 것으로 알려져 충격을 주고 있다. 용의자 중 한 명은 ‘처리가 곤란한 고령자를 죽이는 기술: 아무도 가르치지 않은 병원에서 죽이는 방법’이란 전자책을 발간했다. 다른 한 명도 트위터에 고령자를 ‘좀비’, 이들에 대한 의료 서비스를 ‘사치’라고 주장하는 글을 올린 것으로 확인됐다. 안락사를 빙자해 고령자와 난치병 환자에 대한 우생사상에 근거한 살인이었다는 지적이 나오는 이유이다.


도쿄= 김회경 특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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