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거 생활 안정 위한 법 취지가 우선"
아무리 계약서에 명시돼 있는 내용이라 하더라도 금융기관이 전세 대출금 회수를 위해 채무자 대신 전세 계약을 해지하려 해선 안 된다는 대법원 판단이 나왔다. 대출금을 제때 못 갚는 상황이라 해도, 전세 계약은 그와 무관하게 유지할 수 있다는 취지다.
대법원 3부(주심 이동원 대법관)는 롯데카드가 A씨를 상대로 낸 대출금 청구 소송의 상고심에서 원고 승소 판결한 원심을 깨고 사건을 서울중앙지법으로 돌려보냈다고 24일 밝혔다.
A씨는 2015년 롯데카드로부터 2년간 전세자금 7,100여만원을 대출받았다. A씨는 당시 전세 계약을 맺고 한국토지주택공사(LH) 아파트에 살고 있었다. 대출 계약서에는 '대출 기간 종료로 즉시 갚아야 할 때 롯데카드의 요구가 있는 경우 아파트를 LH에 즉시 넘긴다', 'A씨는 롯데카드의 사전 동의를 얻어야 전세 계약을 연장하거나 갱신할 수 있다'는 조향이 명시됐다.
A씨는 2017년 만기일이 됐지만 대출금을 갚지 못했고 롯데카드는 이듬해 A씨에게 대출금을 갚으라고 독촉했다. 그러면서 "계약서에 따라 아파트를 LH에 반환하고 돌려받은 보증금으로 대출금을 갚으라"는 취지로 소송을 제기했다.
1심과 2심은 모두 롯데카드의 손을 들어주었다. 1심 재판부는 "2018년 1월 전세계약이 종료됐다"며 "A씨는 아파트를 반환하라"고 판결했다. A씨가 보증금을 올려달라는 LH의 요구에 아무 반응을 보이지 않았기 때문에 계약이 종료됐다고 본 것이다. 재판부는 "전세 계약이 갱신됐다고 가정하더라도, 롯데카드와 A씨가 맺은 대출계약이 우선"이라고 덧붙였다. 항소심도 1심 결론을 유지했다.
그러나 대법원 판단은 달랐다. 대법원은 "대출금은 갚아야 하지만, 롯데카드가 아파트 반환을 요구할 수는 없다"고 밝히면서, 특히 2018년 1월 전세계약이 종료됐다고 본 원심 판단에 대해 "법리를 오해한 잘못이 있다"고 지적했다. 재판부는 "A씨가 즉각 응하지는 않았지만 2019년부터 추가 보증금을 내기 시작해 완납하는 등 전세 계약을 갱신할 의사가 있었다"며 "이럴 경우엔 주택임대차보호법에 따라 전세 계약이 자동으로 2년 연장된다"고 설명했다. 아울러 대법원은 '주거 생활 안정'이라는 법 취지에 비춰 "전세 계약 유지가 롯데카드와 A씨 사이의 대출 계약보다 우선한다"고 강조하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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