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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9년 우리나라의 합계출산율은 0.92명이다. 이는 통계 작성 이후 사상 최저치일 뿐 아니라 전 세계 국가 가운데 꼴찌 수준이다. 더 심각한 문제는 출산율 추락에 백약이 무효인 것 같다는 점이다. 지난 십수 년간―어디까지를 저출산 사업으로 보느냐에 따라―적게는 수십조 원에서 많게는 200조원 가까이 예산을 투입했으나, 출산율이 호전되기는커녕 정체 또는 하락했기 때문이다.
이쯤 되면 다음과 같은 의문이 생긴다. ‘못 낳는 건가? 안 낳는 건가?’ 우리는 으레 청년들이 결혼과 출산을 원하지만, 여러 경제ㆍ사회적 제약 탓에 이를 못 한다고 개탄하곤 한다. 과연 그럴까? 사람들은 진짜 아기를 원할까? 이런 의구심을 뒷받침하는 증거도 있다. 통계청에 따르면, 2018년 30세 미만 인구의 절반 정도가 결혼해도 자녀를 가지지 않을 수 있다고 응답했던 것이다.
관련하여 요즘 주목받는 것이 반출생주의이다. 반출생주의란 말 그대로 출생을 반대하고 부정하는 철학이다. 즉, 아기를 낳는 것이 윤리적으로 나쁘거나 해로운 행위이므로 이를 자제해야 한다는 것이다. 언뜻 말도 안 되는 소리로 들리지만, 이는 쇼펜하우어 같은 유명한 철학자들도 진지하게 고찰했던, 나름의 엄연한 철학사상이다. 반출생주의가 출생을 반대하는 논리는 다음과 같다.
삶은 고통스러울 수도 즐거울 수도 있는데, 먼저 고통스러운 것이라면 아기를 낳아 고통을 겪게 하기보다 차라리 낳지 않아 고통을 없애는 것이 명백히 나은 선택이다. 반면 삶이 즐거운 것이라면 아기를 낳아 행복한 삶을 살도록 하는 것은 물론 좋은 것이나, 그렇다고 아기를 낳지 않는 것이 해로운 선택이라고 할 수는 없다. 아기를 낳지 않으면 행복을 느낄 주체가 없어지는 것이므로 특별히 해로울 것도 없기 때문이다. 이처럼 삶이 고통스러울 경우 아기를 낳지 않는 것이 낳는 것보다 월등히 유리한 반면, 삶이 즐거울 경우에도 전자는 ‘행복의 부재(不在)’라는, 적어도 해롭지 않은 선택이라는 점에서 전자가 후자보다 낫다는 것이다. 게다가 아기를 낳지 않는 것은 윤리적으로도 올바른 선택이다. 삶이 즐겁다 해도 아기를 낳아 행복한 사람을 생산할 도덕적 의무가 존재하는 것은 아니지만, 삶이 고통스러운데도 아기를 낳아 불행한 삶을 살게 하는 것은 도덕적 의무를 저버리는 것이기 때문이다. 뭔가 보편적 정서에는 어긋나지만, 선뜻 반박하기도 어려운 논리이다.
그러나 반출생주의에 대한 관심이 높아진 것과 별개로―천만다행히―아직 많은 사람에게 출산은 안 하기보다는, 원하지만 못 하는 대상인 듯하다. 사실 반출생주의라는 말이 아직 많은 이에게 생소하고 기이하게 들린다는 것 자체가 여전히 출산이 축복이자 당연한 통과의례로 인식되고 있음을 반증한다. 안 낳기보다 못 낳는 것임을 시사하는 증거도 있다. 출산율 변화 요인을 살펴본 한 연구에 따르면, 2000년대 이후 출산율의 정체 또는 하락은 주로 혼인율 하락에 기인했으며 이 시기 기혼자의 출산율은 오히려 추세적으로 증가했다고 한다. 결혼을 못 해서 못 낳은 것이지, 결혼한 커플들은 더 많은 아기를 원하고 낳았다는 것이다.
이를 보면―반출생주의자들은 펄쩍 뛰겠지만―저출산 문제에 아직 실낱같은 희망이 남아 있다고 할 수 있다. 관건은 이른바 N포세대의 N을 우리 사회가 얼마나 줄여주는가에 달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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