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캣대디만 20년... 연희동 길고양이 대부 이연복 셰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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캣대디만 20년... 연희동 길고양이 대부 이연복 셰프

입력
2020.07.25 05:00
수정
2020.07.25 11:29
13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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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네 길고양이 ‘기절이’와 15년째 인연 이어가??올해 유기견 ‘생일이’는 새 가족으로 맞아?
한국고양이수의사회 홍보대사 활동 주력

"우리 사회가 길고양이에 따뜻한 시선 베푸는데 도움 되길"


이연복 셰프가 서울 연희동 자신의 집에서 반려견 '생일이'와 TV를 보고 있다. 올해 초 입양때만 해도 많이 아팠던 생일이는 현재 소파까지 뜯어놓을 정도로 에너지가 넘친다. 이연복 인스타그램

이연복 셰프가 서울 연희동 자신의 집에서 반려견 '생일이'와 TV를 보고 있다. 올해 초 입양때만 해도 많이 아팠던 생일이는 현재 소파까지 뜯어놓을 정도로 에너지가 넘친다. 이연복 인스타그램


‘앞을 못 봐서 그런지 입양문의가 없네요. 태어난 지도 얼마 안 됐는데, 이틀 후면 안락사랍니다.’ 지난 1월 14일, 한 동물단체의 유기견 입양 홍보 소식을 휴대전화로 훑어보던 이연복(60) 셰프. 글 옆 사진에는 진물이 얼굴에 범벅이라 눈도 제대로 못 뜨고 있는 백구 한 마리가 있었다. 이상하게 끌렸단다. 그래서 사연을 본 즉시 아내와 상의해 주저 없이 곧바로 입양했다. 공교롭게 아들 생일에 입양해 ‘생일이’라 부르는 녀석. 천만다행으로 치료도 잘 돼 눈 건강까지 회복한 생일이는 현재 매우 건강하다.

“저는 20대 초반 코 수술을 했는데, 뭐가 잘못됐는지 그 이후로 냄새를 맡지 못해요. 음식하는 사람으로 치명적인 약점일 수 있지만, 많은 분들이 제 요리를 아껴주시잖아요. 유기동물이나 길고양이도 마찬가지입니다. 겉으론 뭔가 문제가 있을 것 같지만 전혀 아니에요. 분명히 여러분 인생 최고의 반려동물이 될 수 있을 거예요.”


낮엔 개아빠, 밤엔 캣대디

이연복 셰프와 함께 지내다 2017년 세상을 떠난 반려견 '초코.' 이연복 셰프는 초코를 10년간 키우다 떠나 보낸 후 다시는 반려생활을 하지 않겠다고 마음먹기도 했다. 이연복 인스타그램

이연복 셰프와 함께 지내다 2017년 세상을 떠난 반려견 '초코.' 이연복 셰프는 초코를 10년간 키우다 떠나 보낸 후 다시는 반려생활을 하지 않겠다고 마음먹기도 했다. 이연복 인스타그램


그는 사실 2017년 ‘초코’를 떠나 보내며 다시는 반려견을 키우지 않겠다고 마음먹었다. 키우는 동안 거의 매주 병원에 가야 할 만큼 건강이 좋지 않아 마음 고생이 심했다. 푸들이던 초코는 지하철역 인근에서 강아지를 팔던 할머니에게 마지막으로 남은 한 마리가 가엽다며 가게 직원이 데려온 친구였다. 그러나 ‘개초보’인 직원이 잘 돌보지 못할까 걱정된 나머지 그가 거두었다. 그런 정성에도 초코는 10년 만에 세상과 작별했다. “다시는 안 키우려고 했는데, 생일이와는 인연이 되려는지 사연을 보고는 바로 데려오자고 아내와 함께 결정했어요.”

초코를 입양하기 2년 전(2005년) 하늘로 간 ‘코코’는 16년을 키웠다. 4번이나 파양 당한 아픔을 보살펴주려고 입양했는데, 잔병치레도 하나 없이 잘 컸단다. 코코는 이 셰프 부부가 일본 오사카 번화가 뒤편에서 1988년부터 10년간 식당을 운영하며 한국과 일본을 왕래할 때 키우다 보니 당시 서울에서 함께 살던 부모님과 아이들이 더 챙겼다. “여동생도 지금 저처럼 동네 길고양이들 챙기는 캣맘이고요, 어머니도 집에서 길고양이 4마리를 거둬 키우고 계십니다. 가족들이 모두 동물을 좋아해요.”

얼마 전 TV예능프로그램에서 생일이 입양소식을 알린 그도 소문난 동물애호가다. 그는 이미 10년 전 매장에서 샥스핀 요리를 없앴다. 고급 요리로 통해 소위 돈 되는 메뉴였지만, 주재료인 상어 지느러미의 잔인한 취재 과정을 우연히 다큐멘터리를 접한 뒤 내린 결정이었다.

주변 길고양이를 보살피는 ‘캣대디’ 생활도 20년이 넘었다. 일본에서의 영업을 접고 귀국한 1998년부터 지금까지 아내와 함께 서울 연희동 일대 길고양이들 끼니를 챙겨주고 있다. 가장 오래 연을 맺은 길고양이는 ‘기절이.’ 초코를 키우기 시작한 2007년부터 당시 새끼였던 기절이의 끼니를 챙겨줬다. 길고양이 평균 수명이 3년이라는데, 기절이는 무려 15년을 그와 함께 하고 있다. “새끼 때였는데, 어느 날 사료를 먹다가 목에 걸렸는지 갑자기 경련을 일으키며 정신을 잃었어요. 아내가 입 속에 손가락을 넣어 기도를 열고, 인공호흡까지 해서 살렸죠. 그때부터 기절이라 불러요.”


이연복 셰프가 서울 연희동에서 15년째 챙기고 있는 길고양이 '기절이'(왼쪽)와 배트맨. 이연복 셰프는 2년 6개월 전 이사하면서 길고양이들을 위해 고양이를 좋아하는 세입자를 찾았다. 이연복 인스타그램

이연복 셰프가 서울 연희동에서 15년째 챙기고 있는 길고양이 '기절이'(왼쪽)와 배트맨. 이연복 셰프는 2년 6개월 전 이사하면서 길고양이들을 위해 고양이를 좋아하는 세입자를 찾았다. 이연복 인스타그램


2년 6개월 전 이사 당시 고민 중 하나도 기절이였다. 멀지 않은 곳으로 이사한다지만, 매일 끼니를 챙겨줄 수 없을 걱정에 녀석을 챙겨줄 세입자를 찾았다. 같은 동네 살면서 함께 길고양이를 보살피던 한 가족이 마침 이사를 한다기에 안심하고 세를 놓았다. “챙겨주는 애들 중에 기절이 말고 ‘배트맨’도 있어요. 배트맨 가면을 쓴 것 같이 입 주변만 빼고 얼굴이 온통 검은색인 이 녀석은 아예 집에도 들어와 편히 쉬다 가요.”

캣대디 생활이 순탄했던 것만 아니다. 지금도 모든 주민이 길고양이 챙겨주는 모습을 좋아하는 건 아니지만, 그가 처음 ‘캣대디’ 생활을 시작한 1990년대말만 해도 훨씬 더 조심스러웠다. 죄인 아닌 죄인마냥 인적이 드문 장소와 시간대를 골라 길고양이들 사료와 물을 챙겨주면서도 혹시 행인이라도 지나갈까 노심초사해야만 했다. 지난 2015년에는 그가 평소 돌보던 길고양이를 누군가 해코지하고, 그 사체를 보란 듯 그의 차량 주변에 유기한 사건도 있었다. “고양이를 싫어하는 손님들도 있을 수 있어, 가게 주변에선 못 챙겨줘요. 대신 집 마당에 천을 덮은 탁구대를 놓고, 그 안에 사료와 물을 항상 비치해둬요. 때마다 다른데 요즘 매일 찾는 길고양이들은 대여섯 마리 정도 되는 것 같습니다.”


중식 대부의 이유 있는 외출

이연복 셰프가 지난달 14일 경기 양주시 한 사설보호소에서 자원봉사활동 중 입양을 보낼 새끼 리트리버 한 마리를 안고 있다. 이연복 인스타그램

이연복 셰프가 지난달 14일 경기 양주시 한 사설보호소에서 자원봉사활동 중 입양을 보낼 새끼 리트리버 한 마리를 안고 있다. 이연복 인스타그램


유기견과 길고양이를 챙기는 이들에게 입양은 숙명이다. 관심이 없을 땐 아무리 길을 다녀도 유기견과 길고양이가 보이지 않지만, 관심을 갖기 시작하면 주변에 이리 많았나 놀라 챙겨주다 혼자 감당이 안 돼 결국 입양에 힘쓴다. 그도 마찬가지다. 요즘엔 동네 길고양이 챙기는 것만큼이나 입양과 봉사활동도 열심이다.

“작년 요맘때 동네에 쓰레기통을 뒤지며 돌아다니는 덩치 큰 백구 유기견 한 마리가 나타났어요. 이웃 한 분이 입양하고 싶다는데, 잡혀야 말이지. 그래서 고기 좀 삶아 녀석이 있던 곳부터 그 이웃집 마당까지 고기를 쭉 뿌려 유인했죠. 그런데 이틀이나 고기를 먹으며 길을 따라 집 앞까지는 오는데, 안 들어오는 거야. 그래서 사흘째는 그 집 마당에 고기를 부어버렸더니 들어오더라고요. 그때 대문을 닫아버렸지. 지금은 ‘이쁜이’란 이름 얻고 이웃분과 잘 살고 있어요. 하하…”

이연복 셰프가 지난 13일 자신의 가게인 서울 연희동 '목란'에서 인터뷰를 하고 있다. 그는 연희동에서만 20년 넘게 캣대디 생활을 하고 있다. 동그람이 최필선

이연복 셰프가 지난 13일 자신의 가게인 서울 연희동 '목란'에서 인터뷰를 하고 있다. 그는 연희동에서만 20년 넘게 캣대디 생활을 하고 있다. 동그람이 최필선


입양활동은 자신의 인스타그램 등 사회관계망서비스(SNS)를 이용해 수시로 하고 있다. 마음 맞는 몇몇이 입양을 보낼 개나 고양이를 택하고, 집중 홍보한다. 입양 보낼 친구들은 안락사를 앞둔 급한 상황이거나, 새끼들이 대상이다. 새끼들은 귀여워 입양이 상대적으로 훨씬 수월하다. “하루에도 몇 번씩 동물단체에서 유기견 입양을 홍보하는 소식을 휴대폰으로 보는 게 습관이에요. 안락사 직전과 같이 안타까운 소식들이 올라오는데, 그나마 제 팔로워 수가 많으니까 ‘좋아요’를 눌러 많은 분들이 봤으면 해서죠.”

봉사활동도 방송으로 얻은 유명세를 십분 활용한다. 사료업체와 협력해 정부 지원이 없어 사료 한 포대가 아쉬운 사설보호소에 사료를 지원해주고, 본인을 포함한 방송인들이 해당 보호소에서 봉사활동을 하는 식이다. 지난달 경기 양주시의 한 보호소의 자원봉사활동에는 그의 뜻에 공감하는 방송인 20여명이 참석했다.

코로나19때문에 모임활동이 부담되는 상황이지만, 봉사활동 모임도 정기적으로 해볼 계획이다. “아직 단체 이름도 못 만들었어요. 제가 최고 연장자라 밥 한 번 사기로 했는데, 그때 많은 얘기 좀 나눠야죠.”

지난달부터는 한국고양이수의사회 홍보대사도 맡았다. 분명 예전보다 길고양이에 관대한 사회가 됐지만, 학대범죄가 여전한 것만 봐도 아직은 길고양이에 대한 우리 사회의 인식개선이 부족하다고 느껴서다. 한국고양이수의사회가 대한 수의사회 산하 단체로 국내 고양이들의 복지 개선을 위해 노력하는 수의사들 모임이라는 점에 그가 거는 기대도 크다. “제가 포함된 봉사활동 모임에 수의사 분들이 없어 아쉬웠었거든요. 게다가 길고양이 사료도 넉넉하게 지원해주신다니, 동네 캣맘분들도 도울 수 있으니 좋죠. 한국고양이수의사회와 함께 하면 우리 사회가 길고양이들에게 좀 더 따뜻한 시선을 주는데 도움이 되지 않을까 합니다. ”

이연복(왼쪽) 셰프가 지난달 19일 서울 연희동 '목란'에서 열린 한국고양이수의사회 홍보대사 위촉식에서 김지헌 한국고양이수의사회 회장과 기념촬영을 하고 있다.

이연복(왼쪽) 셰프가 지난달 19일 서울 연희동 '목란'에서 열린 한국고양이수의사회 홍보대사 위촉식에서 김지헌 한국고양이수의사회 회장과 기념촬영을 하고 있다.


이태무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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