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돼지고기 왕국의 별난 부위들

입력
2020.07.23 22:00
27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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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게티이미지뱅크

ⓒ게티이미지뱅크


한국인의 돼지고기 먹는 관습은 정말 독특하다. 세계에서 가장 복잡하고 독보적인 방식으로 가득 차 있다. 서양의 여러 가지 방식들, 이를 테면 소시지나 햄과 같은 것도 물론 즐긴다. 머리로 탕을 내고(이것은 순댓국이라는 이름으로 팔리지만 실은 머리가 주인공이다), 다리로는 족발을 만든다. 온갖 내장 역시 순대라는 장르에 포함된다. 등뼈로 만드는 감자탕은 또 어떤가. 돼지의 어떤 부위 뼈를 감자뼈라고 부른다는 설이 사실인지 음식비평가와 호사가들이 논쟁을 벌이기도 했다.

구이로 가면 더 촘촘한 디테일이 있다. 삼겹살에다 목살은 전통적인 구이용이고, 갈매기와 가브리살, 모소리살(항정살)도 아는 이들은 다 알고 덜미살과 꼬들살, 설하살과 쫄대기에 이런 부위를 그냥 아우르는 ‘뒷고기’라는 전설도 있다. 껍질도 구워 먹는 것은 당연한 일이고, 계속 진화하여 벌집 껍데기라는 히트작도 만들어냈다.

예전에 베트남의 한 도시 시장에 갔을 때 푸줏간 구경을 갔더랬다. 놀랍게도 돼지고기가 특별히 부위를 나누지 않고 똑같은 가격으로 팔리고 있었다. 삼겹살이나 사태나 같은 취급을 하고 있었다는 뜻이다. 유럽은 돼지고기의 부위를 잘게 나누기는 하지만, 역시 한국 같지는 않다. 예를 들어 가브리살은 등심 위에 덧붙어 있는데, 이 부위를 따로 들어내어 팔지 않는다. 이걸 눈치 챈 한국의 수입업자가 가만히 있을 리 없다. 그쪽에선 그다지 가치 없는 부위를 따로 정육하여 수출할 것을 독려하고 있는 모양이다. 항정살이며 가브리살처럼 그쪽 사람들은 존재도 모르는 부위가 한국에 엄청나게 수입된다.

흥미로운 건, 한국은 돼지고기 구이의 왕국이지만 완전히 웰던만을 고집한다는 점이다. 레스토랑의 소고기 스테이크 표준이 미디엄레어가 된 나라에서! 거의 바삭한 과자처럼 구워 먹는 냉동삼겹살집이 인기를 끄는가 하면, 돼지에서 분홍빛이라고 조금 남아 있을 여지를 만들지 않는다. 한때 오염된 사료를 먹어서 기생충이 있던 시절의 관습이 남아 있는 것이다. 이미 기생충 박사들조차 한국은 사실상 돼지고기에서 기생충이 사라진 나라라고 말한다. 행정당국에서야 찜찜해서인지 대놓고 "돼지고기를 그렇게 완전히 익혀 먹지 않아도 됩니다"라고 말하지는 않지만.

이런 와중에 몇몇 도전적인 요리사들이 보기 좋게 분홍색으로 익은 돼지고기 요리를 내기 시작했다. 망원동쪽에서 젊은이들의 인기가 높은 돈가스집에서는 흔하게 볼 수 있다. 물론 고기 속 온도는 인내심 강한 기생충까지도 전멸할 수준까지 익힌다. 보건당국의 요구 온도까지 익혀낸다는 뜻이다. 돼지고기라도 분홍색이 중심부에 남아 있느냐 하는 건 상당히 의미가 있다. 삼겹살, 목살처럼 지방이 많아서 완전히 익혀 먹어도 부드러운 부위는 상관없지만 기름기 적은 안심이나 등심은 너무 익히면 퍽퍽해서 먹기 힘들다. 이 때문에 외국에서 제일 비싸게 취급받는 두 부위가 한국에서는 제일 싼 편이다. 바싹 익히니 퍽퍽하고, 비선호부위가 되어 제값을 못해서 재고로 남고, 인기 있는 삼겹살을 생산하기 위해 돼지 사육의 균형이 무너진다.

축산의 효율성은 지구의 생존 문제와 연결지어 거론되는 현실에서 한번쯤 생각해볼 문제다. 더 많은 요리사들이 용감하게 분홍색 구이를 만들어내길 바란다. 안심과 등심도 구워 먹을 수 있는 부위라는 걸 소비자들이 호응해줄 날까지.



박찬일 요리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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