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엄마가 준 빨간 하이힐 신은, '깜찍 발랄' 열일곱 드래그퀸을 보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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엄마가 준 빨간 하이힐 신은, '깜찍 발랄' 열일곱 드래그퀸을 보라

입력
2020.07.24 04:30
17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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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소수자 실화 다룬 뮤지컬? '제이미'

뮤지컬 '제이미'에서 드래그퀸 소년으로 변신한 가수 조권. 눈빛, 몸짓, 표정까지, 조권이 아닌 제이미를 상상하기 힘들 정도로 찰떡 같은 캐스팅이다. 쇼노트 제공

뮤지컬 '제이미'에서 드래그퀸 소년으로 변신한 가수 조권. 눈빛, 몸짓, 표정까지, 조권이 아닌 제이미를 상상하기 힘들 정도로 찰떡 같은 캐스팅이다. 쇼노트 제공


“너희들 커서 뭐가 될래?” 연예인, 가수, 축구선수, 먹방 유튜버… 저마다 장래희망을 늘어놓으며 야단법석인 아이들 틈에서 교실 맨 뒷자리 제이미는 홀로 공상에 빠져 있다. “너희는 몰라. 내 진짜 꿈은 드래그퀸. 내가 누군지 제대로 보여줄게.”

화려하게 여장한 남자, 드래그퀸이라니. 말 못할 제이미의 고민을 알았을까. 엄마 마가렛은 고등학교 졸업파티를 앞둔 제이미에게 섹시한 빨간 하이힐을 선물한다. 단짝 친구인 무슬림 소녀 프리티도 용기를 북돋아준다. “어서 신어 봐. 누구 눈치도 보지 말고, 트럼프처럼.”

한껏 신이 난 제이미는 졸업파티에 당당히 드레스를 입고 가기로 결심한다. 게이 선언에 이은 드래그퀸 선언. 주변의 차가운 시선 따위는 두렵지 않다. “커밍아웃 2회차 도전하는 나 자신, 매우 칭찬!”

뮤지컬 ‘제이미’는 15세에 커밍아웃을 하고 17세에 드래그퀸이 된 영국 소년 제이미 캠벨의 실화를 다룬 작품이다. 2011년 방영된 BBC 다큐멘터리를 토대로 2017년 뮤지컬로 탄생했다. 2018년 로렌스올리비에어워드 주요 부문 후보로 지명됐고, 왓츠온스테이지어워드 베스트 뉴 뮤지컬상 등 3개 부문에서 수상한 뒤 한국으로 건너왔다. 영화화 작업도 진행 중이다.

성소수자 문제를 다룬 작품이라면 흔들리는 정체성, 주변의 따가운 시선, 그로 인한 고뇌와 방황을 다룰 법하다. 그런데 ‘제이미’는 그야말로 깜찍, 발랄하다. 실제 제이미는 졸업파티를 준비하면서 다큐 제작사에 먼저 연락했다. 카메라가 돌고 있으면, 대놓고 해코지는 못할 것이라 생각해서다. 이 전략은 적중했다. 졸업파티 당일, 당황한 교사들이 제이미를 막으려 하자 파티장에 있던 학생 학부모들이 먼저 나서서 제이미를 들여보내라고 요구한 것. 이 장면은 뮤지컬에도 고스란히 담겼다.

뮤지컬 '제이미'에서 연기 호흡을 맞춘 조권(왼쪽)과 최정원. 홀로 아들을 키운 엄마 마가렛의 이야기도 가슴 뭉클하다. 쇼노트 제공

뮤지컬 '제이미'에서 연기 호흡을 맞춘 조권(왼쪽)과 최정원. 홀로 아들을 키운 엄마 마가렛의 이야기도 가슴 뭉클하다. 쇼노트 제공


장애가 없지는 않다. 이민자인 프리티까지 싸잡아서 모욕하는 백인 아이 딘, 아들을 역겹게 여기는 아빠, 현실적인 꿈을 가지라는 선생님까지. 그러나 “나는 그냥 나”라는 제이미의 명랑한 반격에 이 모든 장벽은 가볍게 무너진다. 이 말은 또한 ‘나답게’ 살아가고 싶은 우리 모두를 위한 응원이기도 하다.

제이미의 깜찍, 발랄은 주변 사람들 덕이다. 드래그퀸을 꿈꾸는 제이미 곁에는 “네가 무얼 하든 완전 소중”하다며 전폭적으로 지지해 주는 엄마 마가렛이 있다. 이웃집 이모 레이는 ‘포클레인 기사’라고 적힌 제이미의 적성검사 결과지를 박박 찢으며 “한정판 제이미 보유국에 사는 게 행복하다”고 한다. 친구 프리티도 “너 자체만으로도 아름답다”고 응원한다.

그래서 이 뮤지컬의 가장 큰 매력은, 우리는 도대체 어떤 어른이 되고 싶은가, 자연스럽게 되돌아보게 한다는 데 있다.


뮤지컬 '제이미'는 신나는 군무와 유쾌한 음악으로 객석을 들썩이게 만든다. 쇼노트 제공

뮤지컬 '제이미'는 신나는 군무와 유쾌한 음악으로 객석을 들썩이게 만든다. 쇼노트 제공


드래그퀸이 소재인 다른 작품들과는 달리 화려한 드래그쇼는 나오지 않는다. 하지만 어깨를 들썩이게 하는 경쾌한 음악과 박진감 넘치는 스트리트 댄스가 무대를 꽉 채운다. 위트 있는 대사도 양념 역할을 제대로 한다. 극장 안에 젊고 건강한 에너지가 팔딱거린다.

제이미 역할은 가수 조권, 아스트로 MJ, 뉴이스트 렌, 배우 신주협이 번갈아 맡는다. 이 가운데 조권은 마치 제이미 그 자체인 양 연기한다. 하이힐을 신고 호들갑을 떨다가도 순식간에 돌변해서 뇌쇄적인 눈빛을 쏘아 대는 조권의 끼에 넘어가지 않을 도리가 없다. “편견에 맞서 싸우는 분들에게 용기와 자신감을 전하고 싶다”는 조권의 바람이 이 무대에서만큼은 꼭 이뤄질 것 같다. 9월 11일까지 서울 역삼동 LG아트센터.

김표향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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