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성 현대차 SK LG 오너들 연쇄회동
앞 세대 완고한 경영방식과는 큰 차이
쿨하지만 결국은 성과로 입증해야
5월 정의선-이재용 회동을 시작으로 6월 정의선-구광모, 7월 정의선-최태원, 그리고 지난 21일 이재용-정의선 재회동까지. 비즈니스 관점으로만 보면 구매업체 대표가 주요 협력사 대표들을 찾아가 만나는 평범한 미팅이다. 하지만 구매사 대표가 미래형 수소전기차에 총력전을 펴고 있는 현대자동차의 정의선 수석부회장이란 점, 그리고 협력업체 대표는 수소전기차 필수장비 배터리를 생산하는 이재용 삼성전자부회장, 최태원 SK회장, 구광모 LG회장이란 점이어서 특별할 수 밖에 없다. 재벌 체제가 공고해진 반세기 역사를 통틀어 4대 그룹 총수가 계열사 사장들을 이끌고 상대 사업장을 공개 방문해, 테크놀로지의 미래를 이야기하고, 다시 답방하는 모습은 여태껏 한 번도 없었던 장면이다. 삼성과 현대를 만든 이병철 회장이나 정주영 회장이라면 이렇게 할 수 있었을까. 이건희 정몽구 구본무 회장은 또 가능했을까. 아마도 완고하고 폐쇄적이었던 그 세대에선 이런 일이 일어나지 않았을 것이다.
대기업에서 총수들을 가깝게 경험했던 이들의 말을 종합하면 창업세대와 2세대 간에도 경영스타일의 차이가 있지만, 3, 4세대로 가면 모든 면에서 괴리가 더 커진다고 한다. 이병철-이건희 회장도 다르지만 이재용 부회장은 훨씬 더 다른 스타일이고, 정주영-정몽구 회장에 비해 정의선 부회장은 전혀 다른 유형의 경영자라는 얘기다. 예컨대 2세대 경영자들은 아버지가 힘들게 회사를 만들어 키워가는 과정, 많은 돈을 벌었지만 부도 위기와 정치바람을 겪는 과정을 보며 성장했다. 밥상머리부터 작업 현장까지 엄한 교육을 받았기 때문에 수직적 부자 관계와 수평적 동업자 의식이 함께 존재했고, 아버지가 만든 것은 꼭 지켜야 한다는 사명감이 있었다. 이들의 리더십은 매우 봉건적이고 위계적이었지만 그래도 국가에 대해선 '보국(報國)' 의식, 직원들에 대해선 가부장적 책임감이 있었다.
이에 비해 3, 4세대들은 배경 자체가 다르다. 태어날 때부터 풍족했고, 어려움을 모르고 컸으며, 외국 유학을 통해 글로벌 마인드와 네트워크를 쌓았다. 이들이 생각하는 경쟁의 운동장은 한국이 아닌 세계이고, 글로벌 각축전을 목격하며 기술과 혁신 외엔 어떤 것도 기업을 지켜주지 못한다고 믿게 됐다. 필요하다면 누구와도 손잡고, 불필요하다고 판단하면 할아버지와 아버지가 만들고 키운 것도 기꺼이 접는다. 공동체에 대한 부채 의식도 적은 편이다.
4대 그룹 젊은 총수들의 연쇄 회동 행보도 결국은 이런 맥락에서 이해해야 한다. 다양한 정무적 해석이 나오지만, 기본적으로 기업하는 방식 자체가 달라진 것이다. 사실 이병철-정주영 시절까지 거슬러가지 않더라도 삼성과 현대차의 관계가 썩 좋은 건 아니었다. IT와 모빌리티의 경계가 무너지면서 삼성과 현대차는 이미 잠재적 경쟁자가 됐다. 그럼에도 정의선 부회장이 이재용 부회장을 찾아간 건, '화석연료 자동차의 시간'이 얼마 남지 않은 상태에서 수소전기차로 생존하려면 그 누구와도 동맹 관계를 구축해야 한다는 걸 알고 있기 때문이다. 다른 총수들의 생각도 마찬가지일 것이다.
뼛속까지 실용화된 경영스타일로 볼 때 늘 애정과 온기만 있을 리는 없다. 싸울 때는 양보없는 전쟁이 벌어진다. SK와 LG의 배터리 전쟁은 만약 앞선 세대였다면 다르게 진행됐을지도 모르지만, 결국 전례없는 살벌한 소송전으로 진행되고 말았다.
경제 현실은 훨씬 척박해졌다. 1,2세대들은 낡은 방식이었지만 그래도 경이적 성과를 일궈냈다. 젊은 총수들은 물려받은 것만 있을 뿐, 아직까지 보여 준 게 없다. 일단은 개방적이고 격식을 차리지 않으며 쿨해 보여서 좋다. 하지만 거기까지. 결국은 산업 전쟁에서 승리로 입증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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