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로나19 바이러스가 세상에 출몰한 지 6개월. 속수무책으로 밀리기만 하던 인간은 백신 개발로 반전을 꾀하고 있다. 하지만 그 사이 코로나바이러스에 또 다른 변이가 발생한다면? 백신은 도루묵이 될 거다. 사스, 에볼라, 신종 인플루엔자, 메르스, 코로나19가 증명하듯, 감염병은 다시 돌아오고야 만다. 백신은 바이러스와의 전쟁에서 결코 게임체인저가 될 수 없다.
최근 감염병에 맞설 수 있는 근본적 대안으로 ‘원헬스(One Health)’를 얘기하는 책들이 속속 출간되고 있다. 원헬스는 사람과 동물, 사회 구조가 모두 한데 연결되어 있으니 인간 중심에서 벗어나 생태계의 공존을 회복해야 한다는 주장이다. 원헬스를 화두로 감염병 대응의 근본적 방향 전환을 고민해볼 수 있는 책들을 모았다. 과학저술가로 활동 중인 강양구 지식큐레이터의 도움을 받았다.
질병의 시각을 넘어서야 진짜 답이 보인다
바이러스의 시작을 찾기란 어렵다. 코로나19 바이러스도 중국 후베이성 우한의 한 수산시장에서 최초로 발생했다는 정도만 드러났을 뿐 그 기원을 두고 설왕설래가 여전하다. 하지만 진화생물학자이자 공중보건계통지리학자인 롭 월러스는 단호하다. 유엔식량농업기구(FAO)에서 감염병 추적 연구에 참여했던 그는 ‘팬데믹의 현재적 기원’(너머북스)에서 신형 감염병을 불러온 주범으로 초국적 거대 농축산업(Agri-business)을 지목한다.
그의 설명은 이렇다. 거대 농축기업에서 공장식 시스템으로 생산하는 가축과 작물은 유전자 구조가 단일해 소규모 농가에서 키워진 것들과 비교해 면역력이 극히 취약하다. 환경 파괴로 야생동물의 서식지가 줄어든 바이러스 입장에선 안착하기 좋은 최적의 숙주인 셈. 순식간에 감염된 개체들은 농장 노동자를 감염시키고, 농축산기업이 만든 판로를 따라 전 세계로 순식간에 퍼진다는 게 저자의 추론이다.
초국적 거대 농축기업들이 점령한 중국 광둥성에서 조류독감이, 멕시코에서 돼지독감이, 서아프리카에서 에볼라바이러스 같은 신종 감염병이 생기고 퍼지는 건 결코 우연이 아니란 설명이다. 그런 점에서 저자는 구조적인 원인과 명확한 책임소재 규명을 위해 바이러스의 이름을 기원한 장소에서 붙여야 한다는 도발적 주장도 편다. 감염병이 퍼지게 된 사회 구조적 맥락을 반드시 살펴야 한다는 취지에서다.
하지만 WHO를 비롯, 각국의 정부들은 이를 쉬쉬하려 든다. 초국적 거대 농축기업들의 눈치를 살핀다는 거다. 인간과 동물, 생태계의 공존을 추구하는 ‘원헬스’도 강경파인 저자가 보기엔 성에 차지 않는 소리다. 그는 한발 더 나아간다. 생태계를 파괴하는 자본과 기업의 책임을 따져 묻고, 건강 생태학의 기초가 되는 소유권, 생산 주체 등을 개혁하는 ‘구조적 원헬스’를 지향해야 한다는 것.
‘에코데믹, 끝나지 않은 전염병’(책세상) 역시 새로운 감염병의 출현과 확산을 부른 주범으로 인간을 지목한다. 인간이 무분별하게 환경과 자연의 순환 과정을 파괴한 탓에 감염병의 역습을 받고 있다는 것. 저자가 감염병을 ‘에코데믹’(환경전염병 내지는 생태병)’으로 부르자고 제안하는 이유다. 과학과 의학의 치료법에만 기대서는 감염병은 치유되지 않는다. 책은 인간의 ‘각성’을 해법으로 제시한다. 인간은 감염병의 희생자가 아니라 가해자라는 사실을 알아야 감염병을 물리칠 수 있다는 말이다.
◇동물이 건강해야 인간도 세계도 건강해진다
'동물기계'(에이도스)는 ‘원헬스’의 첫 단추가 동물복지 회복이라 제안한다. 이 책은 동물권과 동물윤리 논의의 씨앗을 뿌린 고전으로 꼽힌다. 영국의 동물복지 활동가였던 루스 해리슨이 1964년에 쓴 책으로, 공장식 축산시스템의 야만적인 사육 환경 속에서 ‘고기 기계’로 전락해버린 농장동물들의 비참한 삶을 생생하게 고발해 큰 파문을 일으켰다. 영국 정부는 즉각 조사위원회를 꾸려 실태 파악에 나섰고, 현재 전 세계적으로 통용되는 ‘동물의 5대 자유’ 원칙이 만들어지는 계기가 됐다.
물론 60년이 흐른 지금도 현실은 크게 달라지지 않았다. 햇빛 하나 들지 않는 비좁은 배터리 케이지에 옴짝달싹하지도 못한 채 갇혀 강제로 성장호르몬을 맞고, 항생제로 범벅이 된 사료를 먹으며 살아가는 닭, 돼지, 송아지들은 우리 식탁 뒤편 축사에서 여전히 길러지고 있다.
그래도 변화는 서서히 오고 있다. ‘의사와 수의사가 만나다’(모멘토)는 인간의학과 동물의학을 접목시키는 새로운 의학적 관점인 ‘주비퀴티(zoobiquity)’를 처음으로 제시한다. 인간이 겪는 질병의 치유법을 동물에게서 찾는 흥미로운 사례들을 보며 인간은 자연 위에 군림하는 왕이 아니라 다른 생물들에 의존해 함께 살아가는 수많은 종 가운데 하나일 뿐 이라는 사실을 깨닫게 한다.
한발 더 나아가 인간과 동물 관계의 모든 스펙트럼을 탐구하는 ‘우리가 먹고 사랑하고 혐오하는 동물들’(살림)이란 책도 있다. 이들 책이 말하는 메시지는 동일하다. ‘동물이 행복하지 않으면 인간도 결코 행복해질 수 없다’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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