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애인을 바르게 불러주었을 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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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애인을 바르게 불러주었을 때

입력
2020.07.22 16:18
수정
2020.07.22 17: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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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지선
이지선한동대 상담심리사회복지학부 교수

©게티이미지뱅크



1974년 미국 오레곤주에서 열린 장애인 자기권리옹호대회에서 “더이상 정신지체로 불리는 것이 아니라 먼저 사람으로 대해지길 원한다”라고 말한 것을 시작으로 ‘피플 퍼스트’운동이 미국 전역으로 퍼져나갔다. 장애보다는 ‘사람이 먼저다’라는 정신을 알리기 위해 미국의 장애인 권리 옹호단체들은 생각을 담는 그릇인 말을 바꾸는 운동부터 시작했다. 장애보다 사람이 우선되는 언어(People First Language)를 알렸다. 아마도 영문법 책에서 장애인은 ‘the disabled’라고 배웠던 기억이 있을 것이다. 그런데 이 단어 자체에는 어디에도 사람을 나타내는 말은 없다. The disabled가 아니라 People with disability(장애를 가진 사람)로, 휠체어에 갇힌 사람이 아니라 휠체어를 사용하는 사람으로, 정신적으로 지체된 것이 아니라, 지적장애를 가진 사람 등으로 올바른 단어 사용의 많은 예시를 알렸다. 한글로 번역하면 조금 어색하게 느껴지지만, 이렇게 언어를 바꾸어 가는 운동은 빠르게 확산되었고 장애인과 관련한 법들이 개정될 때 미국의 모든 법에 장애인은 People with disability로 변경되었다.

우리는 무엇을 할 수 있을까? 1981년에 제정된 ‘심신장애자복지법’이 1989년에 ‘장애인복지법’으로 개정되었다. 심신장애자라는 용어를 ‘장애인으로 변경한 지가 30여년이 흘렀지만 그 시대의 언어가 익숙하신 분들은 여전히 장애인을 장애자라고 지칭하는 경우를 자주 본다. 오랜 세월에 걸쳐 ‘장애자’라는 단어에는 부정적 경험과 의미들이 쌓여 버렸다. 실제로 상대방을 비방할 때 ‘장애자’의 뒤 두 글자만 사용해 욕설처럼 쓰이는 것을 종종 볼 수 있다. ‘자(者)’ 글자가 낮춤을 의미해서라기보다는 용어를 바꾸어 장애인의 사회적 위치와 의미 등을 바꾸어 보려는 의도이다. 또 자주 사용되는 용어는 ‘장애우’이다. 좀더 친근하고 가깝게 대하고자 하는 의도로 친구를 뜻하는 '우(友)'를 사용했는데 친구라 하면 보통 나이가 비슷한 사이에서 사용되는 우리나라 문화에서 장애우는 공식 용어로서 부적절하다. 나보다 나이가 30세가 많은 분께, 게다가 처음 보는 사이에 친구라고 부르게 되는 경우가 될 수도 있다. 오랫동안 가깝게 지내온 사이도 아닌데 친구라고 부르는 것은 어색한 표현이 될 수밖에 없다. 장애인을 친근하게 대하고 싶은 마음으로 사용하기도 하지만, 우리가 TV에서 보고 자주 보고 친근하게 느껴지는 유재석, 강호동씨 같은 경우에도 연예우가 아니라 연예인이라고 부르는 것처럼 장애우보다는 장애인이라고 지칭하는 것이 옳다.

오랫동안 장애인을 지칭하는 언어들이 비하의 의미를 담고 있어 이제 사용되지 말아야할 용어가 많이 있다. 봉사나 장님이 아니라 시각장애인, 불구자나 지체부자유자가 아니라 지체장애인, 벙어리가 아니라 언어장애인, 정신지체가 아니라 지적장애인으로 사용해야 한다. 그러나 여전히 뉴스에 헤드라인에는 제대로 기능하지 못하는 상황에 장애를 빗댄 비칭들을 사용되고 있어서 올바른 언어 사용에 혼돈을 주고 있다.

수년 전에 나를 오랜만에 보신 아버지 친구분이 “이제 많이 정상이 되었네!”라고 하신 적이 있다. 많이 회복되고 좋아 보여서 하신 말씀인지는 충분히 알지만, ‘그렇다면 그전의 나는 비정상이었던 걸까?’하는 생각으로 이어졌다. 장애가 없는 사람들을 지칭하며 흔히들 ‘정상인’이라고 잘못 말한다. 표준을 뜻하는 정상(norm)의 개념은 사람에게 쓸 수 없는 개념이다. 장애가 없는 사람이 정상이라면 장애가 있는 사람은 비정상이고 이상한 사람이 되어 버린다. 비장애인을 정상인으로 말하는 것은 장애인의 다른 것을 ‘틀리다’라고 말하는 것과 같은 것이다.

누군가를 지칭하는 용어는 그 사람이 사회적으로 어떤 위치에 있는지를 보여 준다. 그리고 올바른 용어가 무엇인지 결정할 때 가장 중요한 것은 당사자가 그렇게 불렸을 때 어떻게 느끼는지이다. “내가 그의 이름을 불러 주었을 때 그는 나에게로 와서 꽃이 되었다”라는 시처럼 장애인의 이름을 바르게 불러 주어 함께 ‘사람’으로, 서로에게 꽃같은 존재로 살아갈 수 있기를 바란다.

이지선 한동대 상담심리사회복지학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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