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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식이법으로 주차난 겪는 주택가

입력
2020.07.23 04:30
26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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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집자주

36.5℃는 한국일보 중견 기자들이 너무 뜨겁지도 너무 차갑지도 않게, 사람의 온기로 써 내려가는 세상 이야기입니다.

민식이법 시행으로 스쿨존 내 생활도로에 불법주정차된 차량이 사라졌다.

민식이법 시행으로 스쿨존 내 생활도로에 불법주정차된 차량이 사라졌다.


월요일자 신문을 제작해야 하는 직업의 특성상 격주 일요일마다 근무를 한다. 이런 주에는 평일 중 하루 쉬며 집안일 등을 하며 보낸다. 최근 금요일에 집에서 쉬고 있는데, 아침부터 밖에서 시끄러운 소리가 났다. 주차단속 과정에서 실랑이가 벌어진 듯 했다.

단속 직원은 경고장을 붙였는데도 이동하지 않았다며 대동한 견인차로 차량을 끌어갈 태세였다. 주민은 '여태 단속 한번 안 하던 곳인데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 사태로 세수가 부족해서 그러느냐'며 반발했다.

이 동네는 신구 건물이 섞여 있는 서울지역 주택가다. 100여m 거리에 초등학교가 있어, 집 앞 6m 생활도로 전체가 어린이보호구역(스쿨존)으로 지정돼 있다. 이날 소동은 일명 민식이법 시행으로, 지자체가 스쿨존 단속을 강화한 뒤 벌어진 일이었다.

민식이법은 스쿨존 내 교통 사고 시 운전자 처벌을 강화하는 것 외에 불법 주정차 단속을 강화하겠다는 것도 주요 내용이다. 스쿨존 사고의 원인 중엔 불법 주정차로 인한 운전자 시야 방해도 큰 부분을 차지하고 있기 때문이다.

초등학생인 딸 아이도 집 앞 놀이터 입구를 가로막고 있던 차량이 갑자기 출발하면서 사고를 당할 뻔 해, 이번 조치를 누구보다 반겼다. 사실 그간 지자체에 단속을 강화해줄 것을 요청도 해봤지만, 제대로 된 단속은 거의 이뤄지지 않았다.

실제로 지난해 서울시의 자치구별 스쿨존 내 단속 건수는 큰 차이가 난다. 서초구(3만7,000여 건)와 노원구(3만5,000여 건)는 많은 편이지만 일부 자치구는 1만4,000여건에 불과하다. 해당 자치구의 스쿨존 수는 104개로 서초구(94개)보다 많다. 민원이 들어와야 단속을 하는 소극적인 행정을 벌인 탓이다.

그러다보니 집 앞 골목 절반은 항시 주차된 차량이 차지하고 있기 마련이었다. 아이들은 등하교를 할 때마다 요리조리 차량을 피해 다녀야만 했다. 어린이 보호를 위해선 최소한 스쿨존에서만이라도 불법 주정차를 강도 높게 단속해야 하는 이유는 충분하다.

그러나 이러한 단속 강화는 오랫동안 거주해온 주민 입장에선 억울한 일일 수도 있다. 동네에는 영화 기생충에 나오는 반지하가 있는 주택들이 여러 채 있는데 모두 개별 주차장이 없다. 구에서는 90년대 초중반부터 이들 집 앞 주차를 사실상 권장하며 생활도로에 주차구획선을 그렸다. 학교 앞 통학로도 예외 없이 자율주차구역으로 지정했다. 사설 주차장이 없는 동네의 주차 정비를 위한 정책이었다.

그 후 1층에 주차 가능한 빌라 신축이 많아지자, 구획선을 없애기 시작했다. 그리고 이달 1일 스쿨존 정비를 마치며 자율주차구역을 모두 해제했다. 노후주택 주민들은 하루 아침에 주차공간을 잃은 셈이다. 옛 공영 주차장에도 노인복지관 등의 신축 건물이 들어섰다. 더 이상 동네에서 합법적으로 주차를 할 수 없게 된 것이다.

그럼에도 지자체는 근본적인 해결책인 주차장 확보 방안은 찾지 않고 오로지 단속만 벌인다. 과거 정책은 전 지자체장이 했다며 나 몰라라 한다. 대통령이 바뀔 때마다 정책의 일관성은 간 데 없고 새 판을 짜는 행태와 꼭 닮아 있다. “갈대 같은 공무원을 어찌 믿을 수 있겠느냐”며 주민들이 항변하는 이유다. 이런 막무가내식 행정에 주택가는 점점 더 살기 힘든 곳으로 변하고 있다.

박관규 산업부 차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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