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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흘'이 4일?…실검 사태에서 드러난 한국어 사용 민낯

입력
2020.07.22 15:18
수정
2020.07.22 15:45
0 0

'금일'이 '금요일'?…순우리말ㆍ한자어 착각 흔해
"잘못 지적하면 '꼰대'라며 거부감 드러내기도"
전문가들 "상식이니 알아야 해 식의 강요는 답 아냐"

'사흘'이 22일 오전 7시40분 네이버 실시간 검색어 1위를 차지했다. 네이버 캡처

'사흘'이 22일 오전 7시40분 네이버 실시간 검색어 1위를 차지했다. 네이버 캡처


정부가 21일 청와대에서 문재인 대통령 주재로 국무회의를 열어 '관공서의 임시공휴일 지정안'을 심의ㆍ의결했습니다. 이에 토요일인 광복절(8월 15일)에 이어 월요일인 17일까지 사흘 동안 휴일이 이어지게 됐습니다. 그런데 갑자기 '사흘'이 인터넷 포털인 네이버 주요 검색 순위에 올랐습니다. 왜일까요?

이유는 '광복절부터 사흘 연휴'라는 표현을 두고 인터넷 게시판, 사회관계망서비스(SNS), 언론사 기사 댓글 등에서 갑론을박이 벌어진 겁니다. 일부 네티즌들은 "15일부터 17일까지 연휴가 이어지면 토, 일, 월 3일인데 왜 사흘이라고 하냐"는 글을 게시했습니다. "오타 수정 부탁한다"는 댓글도 있었습니다. '사흘'이 3일을 뜻하는지 4일을 뜻하는지 논쟁이 벌어지자 급기야는 '사흘'이 실시간검색어 1위를 차지하기도 했습니다.

한 트위터 사용자가 지난해 "일본 만화책 번역본에서 '3일'을 '사흘'로 오역했다"며 지적하고 있다. 트위터 캡처

한 트위터 사용자가 지난해 "일본 만화책 번역본에서 '3일'을 '사흘'로 오역했다"며 지적하고 있다. 트위터 캡처


표준국어대사전에 등록된 '사흘'은 세 날, 즉 3일을 뜻합니다. 우리 말로 날짜를 세는 순서는 '하루, 이틀, 사흘, 나흘, 닷새, 엿새, 이레, 여드레, 아흐레, 열흘'이죠. 11일부터는 열하루, 열이틀, 열사흘, 열나흘, 열닷새(보름), 열엿새, 열이레, 열여드레, 열아흐레이고 20일은 스무날입니다. 21일부터는 스무하루, 스무이틀, 스무사흘, 스무나흘, 스무닷새, 스무엿새, 스무이레, 스무여드레, 스무아흐레입니다. 30일은 ‘그믐’입니다.

기수(基數)와 서수(序數)가 다른 한국어는 조금 어렵습니다. 외국인들은 '일, 이, 삼, 사'와 '하나, 둘, 셋, 넷'의 차이를 구분하기 어려워하죠. 이번 논란은 날짜서수인 '사흘'을 '4흘'로 착각한 데서 나온 것 같습니다. '사흘'의 '사'와 아라비아 숫자 4의 발음이 비슷하다보니 뜻을 헷갈려 벌어진 일이죠. 이에 온라인 커뮤니티의 한 누리꾼은 "우리말은 특이하게 날수를 다루는 수사가 있다. 가끔 뭔가 규칙성이 안 보이는 것도 있다(아***)"며 어려움을 토로하기도 했는데요.

'금일'을 '금요일'로 착각한 웃지 못할 사례도 있습니다. 온라인 커뮤니티에는 한 취업준비생이 '금일'을 '금요일'로 잘못 생각해 인사담당자와 갈등을 빚은 사례가 올라왔습니다. 누리꾼들은 "(금일은) 굳이 한자어를 안 써도 소통 가능한 언어니까 모를 수 있지 않나(둥****)", "나도 대학생 때까지는 '명일'을 쓸 일이 없으니 몰랐다가 취직하고 나서 '내일'이라는 사실을 알았다"는 반응을 보였습니다.


순우리말에 대한 대중의 마음은 바뀐다?

이번 '사흘 실검' 사태는 일반인들이 우리말에 대해 얼마나 거리감을 느끼고 있는 지를 보여준다는 해석도 나옵니다. '사흘'은 '하루, 이틀'에 비해 자주 사용되지 않습니다. 보통 '사흘'부터는 3일, 4일 등으로 부르는 경우가 많습니다.

국립국어원 이기연 학예연구사는 22일 한국일보와 통화에서 "(실시간검색어 1위까지 했다는 사실에) 조금 놀랐다"고 전했습니다. 그러면서 이번 '사흘 사태'를 두고 "일상 생활 속에서 자주 쓰지 않는 말에 대해선 대중이 잘 모르게 되고 그러다보면 쓰이지 않고 자연스럽게 잊혀진다"라고 말했는데요.

순우리말과 한자어 사이의 맥락 차이도 작용했다는 풀이도 덧붙였습니다. 이 연구사는 "순우리말은 '말맛'이 좋고 소리와 뜻이 예쁘다는 강점이 있지만 동시에 고리타분하고 촌스럽다는 느낌 때문에 거부감 든다는 약점도 있다"는 겁니다.

이번 논란이 시대적 변화를 보여준다는 분석도 있습니다. 이 연구사는 "틀린 것을 틀렸다고 하면 '그래 너 많이 알아서 좋겠다'는 식으로 반응하는 정서가 있는 것 같다"면서 "'꼰대' 혹은 '어떤 권위'에 대한 거부감이 드러났다"고 바라봤습니다. 길호현 서원대 국어교육과 교수도 "예전에는 모르는 게 있으면 창피해하면서 숨겼는데 이제는 잘 모르는 것을 당당히 드러내며 댓글을 통해 자신의 의견을 표출해 나가는 것 같다"고 전했습니다.


2015년 영화 '암살' 관련 기사를 다룬 한 매체가 기사 제목에 '사흘'을 '4흘'로 표기했다. 홈페이지 캡처

2015년 영화 '암살' 관련 기사를 다룬 한 매체가 기사 제목에 '사흘'을 '4흘'로 표기했다. 홈페이지 캡처


그렇다고 무조건 순우리말만 써야 한다고 강제하는 것이 답이 될 수는 없습니다. 길 교수는 "한자어, 외래어 보다는 순우리말 사용을 장려하는 동시에 대중이 어떻게 생각하느냐는 흐름도 충분히 감안해야 한다"고 밝혔습니다. 이를 위해선 "학교에서 독서 등을 통한 어휘력 키울 수 있게 하고 상식의 수준을 끌어올려야 한다"는 설명입니다만 이게 짧은 시간에 이뤄지기는 쉽지 않죠.

길 교수는 "(이번 논란을 봤을 때) '당연하다'고 여겨지는 상식의 개념도 바뀌는 것 같다"면서 "마냥 이건 상식이니까 무조건 알아야 한다는 식으로 강제할 수는 없다"고 말했습니다. 이 연구사도 "대중은 우리말 표현이나 표기의 잘못을 지적 받으면 가장 먼저 '우리말이 어려워서 그렇다'라고 생각한다"며 "어떻게 하면 우리말이 어렵고 불편하다는 인식을 줄일 수 있을까 하는 것이 더 중요해졌다"라고 밝혔습니다.

손성원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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