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관리위원 1명당 60건...업무폭주에 회생법원 숨넘어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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관리위원 1명당 60건...업무폭주에 회생법원 숨넘어간다

입력
2020.07.24 06:00
12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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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산지법은 1명이 지난 3년 평균 80건 관리
춘천, 청주, 제주는 법원 상주 위원이 0명
전문식견 발휘는커녕 기본 업무 쳐내기도 바빠

회생절차의 전문성을 보강하고 사건을 신속하게 진행하기 위해 1998년 관리위원 제도를 도입했지만, 과중한 업무로 인해 제도의 취지를 살리지 못한다는 지적이 나온다. 서울회생법원. 한국일보 자료사진

회생절차의 전문성을 보강하고 사건을 신속하게 진행하기 위해 1998년 관리위원 제도를 도입했지만, 과중한 업무로 인해 제도의 취지를 살리지 못한다는 지적이 나온다. 서울회생법원. 한국일보 자료사진

기업 회생 사건을 신속히 처리하고, 회생 법원의 전문성을 강화하기 위해 관리위원회 제도를 도입한 지 22년이 지났지만, 인력 부족에 시달려 제도의 취지를 살리지 못한다는 지적이 나온다. 관리위원들이 처리해야 할 업무가 폭주하면서 은행 등 공인된 금융기관에서 15년 이상 근무한 베테랑들의 전문 식견을 제대로 활용하기 어렵기 때문이다. 예산부족으로 관리위원을 대폭 증원하기도 여러운 처지라 관리위원들은 기본 업무에만 매달리고 있다.

1명이 80건 맡거나 상임위원 없는 곳도

관리위원회 제도는 각종 도산(파산, 회생 사건을 아우르는 용어) 사건이 늘어나던 1998년 도입해 현재 모든 지방법원에 설치됐다. 금융권 출신의 관리위원들은 회생 신청부터 종결까지 모든 절차를 감시ㆍ감독하고 그때마다 재판부에 의견을 제시한다. 각종 심문에도 참여하고, 회생 계획이 결정된 이후에는 판사로부터 업무를 위임 받아 회생 기업의 계약 체결이나 직원들의 임금 지급 허가를 내기도 한다. 가장 중요한 업무는 회생 개시 여부를 검토하고, 회생절차에 대한 중장기적인 계획을 세우는 것으로, 관리위원 중에서도 계약직 공무원으로 채용돼 법원에 상주하는 상임위원들이 담당한다.

문제는 지난해 기준 전국 상임위원의 1인당 평균 사건 수가 60건으로 과다하는 점이다. 최근 3년간 과부하가 가장 심했던 법원은 상임 관리위원 1명이 배치된 부산지법이다. 지난해 기준 부산지법 회생담당 상임 관리위원이 담당한 사건은 71건. 2017년 83건, 2018년 92건에 비해 줄어들었지만, 관리위원은 폭주하는 사건 처리에 비명을 지르고 있다. 9명이 배치된 서울회생법원 상임위원의 경우 1명이 일주일에 1, 2번 정도만 심문에 참여하지만, 부산에서는 1명이 거의 매일 심문에 들어갈 수밖에 없다.

춘천, 청주, 제주지법은 심지어 상임위원이 없다. 채무자 회생 및 파산에 관한 규칙에 따라 3명의 비상임위원으로 구색만 갖췄다. 세 법원은 회생 신청 자체가 적은 편이라 부산지법보다 상황은 낫지만, 판사들이 전문가의 의견을 신속하게 접할 수 없다. 회생 절차의 다음 단계로 넘어갈 때까지 검토 기간이 길어질 수밖에 없는 상황이다. 상임위원의 부재는 ‘스피드’가 생명인 회생사건에는 치명적이라는 게 법조계의 분석이다.


법원별 관리위원회 설치 현황. 그래픽 강준구 기자

법원별 관리위원회 설치 현황. 그래픽 강준구 기자


‘전문성 보강ㆍ신속 처리’ 제도 취지 퇴색

‘도산 전문 법원’이라고 해서 서울회생법원의 사정이 더 나은 것도 아니다. 9명의 상임위원이 1인당 40~50건의 사건을 처리하고 있는데 역시 업무 강도가 높다. 하루 8시간씩 한 달 20일 동안 근무한다고 가정하면, 산술적으로 사건당 한 달에 4시간씩 투자해야 한다. 하지만 실제로는 중소기업이 제출하는 200페이지짜리 보고서를 보는데만 4시간이 걸린다고 한다.

사정이 이렇다 보니 전문법원답게 여러 위원이 조직적으로 움직여 맞춤형 판단을 하고 통찰력 있는 가이드라인을 제시하기 어렵다. 그저 기한 내에 업무들을 ‘쳐내기’에 바쁘다. 시간이 없어서 판사들에게 제출하는 보고서도 거칠게 작성될 수밖에 없고, 판사들이 사건 검토에 더 많은 시간을 할애할 수밖에 없는 악순환이 반복된다. 한 상임위원은 "5년 전 124건을 처리하던 때에 비하면 많이 나아진 편이지만, 20건 정도가 적정하다"고 하소연했다.


한 상임위원의 업무노트. 그는 현재 40여건의 회생 사건을 담당하고 있는데 '사고'가 날까 전날 미리 할 일을 적어놓고 잠든다고 한다. 윤주영 기자

한 상임위원의 업무노트. 그는 현재 40여건의 회생 사건을 담당하고 있는데 '사고'가 날까 전날 미리 할 일을 적어놓고 잠든다고 한다. 윤주영 기자


상임위원들이 제 역량을 발휘하지 못하는 것도 문제다. 서울회생법원의 상임위원들은 보고서 양식을 검토하는 일에 가장 많은 시간을 할애한다. 기본적인 회계 원칙을 지키지 않은 보고서들이 올라오는 일이 태반이기 때문이다. 작성 방법을 안내하며 보고서를 돌려보내는 일이 반복적으로 발생할 수밖에 없다. 좋은 변호사와 회계사를 선임하면 보고서도 깔끔하게 올라오겠지만, 회생을 신청할 만큼 절박한 사람 또는 기업에겐 그럴 여력이 없다. “신청자들이 부담을 덜 느끼도록 최선을 다해야지 다짐하면서도, 그들의 수족이 된 것 같은 느낌도 든다”는 자조가 나오는 이유다.

관리위원 업무폭주에 회생기업들이 제때 구제를 받지 못하는 게 가장 큰 문제다. 이에 법원행정처는 내년 서울회생법원에 2명, 부산, 춘천, 청주, 제주지법에 각 1명씩 상임위원을 배치해 급한 불부터 끄겠다고 밝혔다. 회생법원 주변에서는 "언발에 오줌누기 처방"이라는 비판이 비등하지만, 법원행정처 관계자는 "계약직 공무원을 뽑는 일이라 예산을 감안할 수밖에 없다"고 설명했다.

윤주영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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