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번에 말씀 드렸듯이 저희 성당에는 대만 현지 신자들을 위한 미사 이외에 필리핀 신자들과 베트남 신자들을 위한 미사가 있습니다. 그리고 필리핀 미사가 끝나면 함께 점심식사를 하는데 보통 이십여 명 정도가 참석하고 당연히 필리핀 음식입니다. 자취를 하는 사람들은 드물고 대부분 공동 생활이나 기숙사 생활을 하기에 아주 특별한 경우가 아니면 필리핀음식을 먹을 기회가 없으니 보통은 일주일 만에 고향의 음식을 맛보게 되는 것입니다. 물론 베트남 미사가 끝난 후에도 마찬가지입니다. 저도 함께 식사를 하며 음식 먹는 표정들을 보면 다들 그렇게 환할 수가 없는 것이 단순히 한끼를 때우는 것이 아니라 음식을 통해 고향에 대한 향수, 두고 온 식구들에 대한 그리움을 달랠 수 있기 때문일 것입니다.
저도 외국에서 꽤 오래 살고 있고 또 현지인들과 함께 생활하다 보니 한국음식을 먹을 기회가 거의 없습니다. 다행히 한류 덕분에 다른 나라는 모르겠지만 제가 살았던 필리핀이나 지금 살고 있는 대만은 웬만한 현지 큰 마트에 가면 한국라면, 된장, 고추장, 김치까지 있어 아쉬운 대로 '한국의 맛'을 접할 수는 있지만 그래도 한국음식점을 가지 않는 이상 제대로 된 한국음식을 먹기가 힘듭니다.
다행히 저는 몇몇 가리는 음식을 제외하고는 먹성도 좋고 입맛도 까다롭지 않아 현지 음식에 잘 적응하는 사람이라 외국 생활을 오래 하면서도 먹는 것 때문에 힘들었던 적은 거의 없습니다. 가리는 음식이라고 해도 민물고기나 양고기 등인데 이런 음식들은 한국은 물론이고 외국에서도 자주 식탁에 올라오는 음식이 아니라 큰 문제가 되지 않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평소에는 생각도 없던 한국음식이 뜬금없이 생각나는 경우가 있고 특히 몸이 아프면 아주 간절해집니다. 그럴 때는 불고기, 잡채, 김치찌개처럼 제대로 된 한국음식은 차치하고 밑반찬류인 멸치볶음도 괜찮고 콩나물도 상관없이 먹을 수만 있다면 감사할 따름입니다. 그만큼 오랜 시간을 거치면서 몸으로 기억하는 입맛은 어쩔 수가 없는 것 같습니다. 제가 이러니 필리핀 음식을 먹으면서 행복해하는 그들의 마음을 충분히 이해하고도 남고 또 저까지 기분이 좋아집니다.
음식이라는 것은 이렇게 기본적인 배고픔을 해결하고 나면 추억을 불러다 주는 도구가 되기도 하고 향수를 달래주는 도구가 되기도 하고 행복을 가져다 주는 도구가 되기도 합니다.
요즘 한국에는 '일상에서 느낄 수 있는 작지만 확실하게 실현할 수 있는 행복'을 뜻하는 '소확행(소소하지만 확실한 행복)'이라는 신조어가 있다고 합니다. 외국 생활을 오래하다 보니 한국에서는 별거 아닌 한국 음식 하나에도 이런 소확행을 경험하게 됩니다. 그리고 고향 음식을 먹으며 표정이 밝아지는 저희 성당 필리핀 신자들을 보면 행복은 멀리 있지 않다는 것을 새삼 깨닫게 됩니다.
이처럼 음식이라는 것이 '생존을 위해 먹는 것' 그 이상의 의미가 있는 것은 분명하지만 제가 하고 있는 중요한 일 중의 하나가 '제3세계 국가의 가난한 지역 어린이들을 위한 무료급식'이기에 한 가지 꼭 집고 넘어가고 싶은 것은 우리처럼 음식을 통해 소확행을 누리는 사람들이 있는가 하면 세계 곳곳에는 '생존을 위해 음식을 먹는' 기본적인 배고픔도 해결하기 힘든 사람들이 여전히 있음을 기억했으면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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