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임금채권보장법’ 개정안 입법예고
1000만원 상한, 3개월 체불임금 지원
회사에 구상권 행사...안 갚을 땐 '세금체납'

지난달 16일 서울 중구 명동거리의 한 상가에 임시휴업 안내문이 붙어있다. 뉴스1
경기도의 한 제조업체에서 일하는 정승환(가명ㆍ35)씨는 지난 5월부터 석달간 월급을 받지 못했다. 정씨가 밀린 월급을 달라고 하자 사장은 “코로나19 때문에 어렵다”며 오히려 “문을 안 닫는 게 다행인줄 알라”고 답했다. 정씨는 지역 노동권익센터에 연락해 상담도 받아봤지만 ‘퇴사를 한 뒤 소송을 제기하는 방법밖에 없다’는 답만 돌아왔다고 한다. 정씨는 “생계가 어려워 차라리 그만두고 실업급여를 받을까 생각까지 해봤다”고 토로했다.
정씨처럼 임금체불로 고통받는 재직자들의 생계보호를 위해 정부가 법 개정에 나선다. 우리나라는 기업의 도산으로 임금이나 퇴직금을 받지 못한 근로자에게 국가가 사업주 대신 일부를 보전하는 ‘체당금 제도’가 있다. 임금채권보장기금(임채기금)에서 우선 지급하고 추후 기업으로부터 돌려받는 제도로 1998년부터 실행됐다. 하지만 이는 퇴직자에게만 해당돼 임금체불의 대부분을 차지하는 재직자에겐 언감생심이었다.
고용노동부는 22일 재직자 체불임금을 보장하는 내용의 ‘임금채권보장법’ 개정안을 입법예고했다. 개정안은 근로자가 재직 중 임금체불을 당할 경우 최근 3개월분에 대해 1회에 한해 정부가 기업 대신 소액체당금(상한 1,000만원)을 지급하는 내용이 담겼다. 또한 법원의 임금체불 확정판결이 없어도 지방노동관서에서 임금체불확인서를 발급 받으면 체당금을 지급하도록 절차도 간소화했다. 현재 소액체당금 신청부터 지급까지 평균 7개월이 걸리는데 이를 약 2개월로 줄이는 것이다.
정부의 법 개정 시도는 두 번째다. 고용부는 지난해 1월 ‘임금체불 청산제도 개편방안’을 내놨다. 우리나라 체불임금 규모가 ‘임금체불 공화국’ 이라는 불명예를 안을 정도로 크다는 문제의식에 따른 것이다. 2000년대 임금체불 피해자는 연간 23만3,000명(체불액 8,132억원)이었으나 지난해에는 34만5,000명(1조7,217억원)으로 크게 늘었다. 미국ㆍ일본의 경우 체불노동자가 전체 노동자의 0.2~0.6% 수준인데 비해 우리나라는 약 1.7%에 달한다.
정부와 여당은 지난 20대 국회에서 제도 개편과 관련한 법 개정안(신창현 더불어민주당 의원 대표발의) 입법을 추진했다. 그러나 개정안은 임채기금의 재정건전성에 대한 우려 등으로 논의에 진전이 없어 국회 임기만료와 함께 폐기됐다. 지난해 예산정책처도 “체당금 지급 후 사업주에게 구상하는 변제금 회수실적이 저조한데 체당금 지출은 지속적인 증가가 예상됨에 따라 임채기금의 재정건전성 악화가 우려된다”고 경고하기도 했다. 변제금 회수율은 2017년 이래 줄곧 30%를 밑돌다 지난해 34.3%를 기록했다.
코로나19로 도산 위기인 기업이 늘어나 지출 증가가 불가피한 상황에서 임채기금 건전성 우려는 더 커질 수밖에 없다. 이를 감안해 정부는 저소득 근로자에게 먼저 제도를 적용하고 단계적으로 대상을 확대하겠다는 설명이다. 고용부 관계자는 “현재 변제금 회수는 민사절차라 상당한 시간이 걸리지만 개정안이 통과되면 이를 세금체납으로 변경해 보다 빠르게 징수할 수 있다”며 “코로나19로 인해 어려움을 겪는 근로자들이 더 많을 것으로 예상되는 만큼 올해 안에 개정안이 국회를 통과하도록 노력하겠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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