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0대 재선의원 당대표' 타이틀 거머쥘까… 박주민의 도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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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0대 재선의원 당대표' 타이틀 거머쥘까… 박주민의 도전

입력
2020.07.21 18:15
수정
2020.07.21 19:4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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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지갑ㆍ거리의 변호사'로 사회적 약자 보호  활발 
검찰 때리기ㆍ공수처 설치 등 여당 투사 활동도

박주민 더불어민주당 의원이 21일 오후 국회 소통관에서 8.29전당대회 당대표 경선 출마를 선언하는 기자회견을 하고 있다. 뉴스1


''40대 재선의원 당대표' 타이틀, 만들어 낼 수 있을까.'

박주민(46) 더불어민주당 최고위원이 21일 8ㆍ29 전당대회 당대표 경선 출마를 선언했습니다. 박 의원의 이번 도전에는 두 가지 의미가 있는데요. 우선 집권여당 당대표 선거에서 '40대 기수론'을 내걸었다는 점입니다. 한 마디로 박주민을 통한 민주당의 세대교체를 주장한 거죠. 민주당이 여당이 된 이후 40대가 당대표 경선에 뛰어든 건 박 의원이 처음입니다. 2018년 8ㆍ25 전당대회 때 당시 55세였던 송영길 의원이 이해찬(66)ㆍ김진표(71) 의원과 경쟁했고, 2016년 8ㆍ28 전당대회에선 당시 당대표로 선출된 추미애 의원이 57세로 후보들 중 가장 어렸죠. 당시 문재인 의원과 박지원 의원이 붙었던 2015년 2ㆍ8 전당대회 땐 이인영 의원이 세대교체론을 들고 나왔지만, 그때 그의 나이는 51세였습니다.

경쟁 상대가 만만치 않다는 점도 눈에 띕니다. 문재인 정부 초대 국무총리 출신이자 여권의 유력 차기 대선주자인 이낙연 의원, 민주당의 불모지인 대구에서 당선되며 4선 의원 이력을 만들어 낸 김부겸 전 의원입니다. 박 의원이 재선의원이긴 하지만 30년 넘게 정치를 한 이들과 비교하면 정치 초년병이나 다름 없습니다. 권투로 치면 플라이급과 헤비급이 한 경기에서 맞붙는다고 봐야죠.

박 의원이 어려운 경쟁 상대들을 누르고 당대표가 될 경우 '집권여당의 40대 재선의원 당대표'란 전무후무한 타이틀을 거머쥐게 됩니다. 2015년 문재인 대통령이 초선의원 신분으로 새정치민주연합(현 민주당) 대표를 지내긴 했지만, 당시 문 대통령은 손 꼽히는 당내 차기 대선주자였고 최대 계파인 친문재인계의 대표 선수였죠. 이 점을 고려하면 박 의원의 도전은 이례적이라고 볼 수 있습니다. 2년 전 전당대회에서 압도적인 표 차로 1위 최고위원 기록을 세웠던 그가 이번 전대에서도 또다른 기록을 만들어 낼지 주목됩니다.

공익변론 앞장선 '거리의 변호사', '세월호 변호사'로 이름 알려

2016년 1월 25일 당시 문재인 더불어민주당 대표가 오후 국회에서 열린 영입기자회견에서 '세월호' 참사 관련 유가족 변호사 등 인권 변호사로 활동해왔던 박주민 전 민변 사무차장에게 입당원서를 받은 뒤 기념촬영을 하고 있다. 고영권기자

1973년 서울 출생인 박 의원은 학창시절 서울 시내 외국어고 중에서도 공부 잘 하는 학교로 손에 꼽히는 대원외고를 졸업했고, 서울대 법학과를 나와 2003년 45회 사법고시에 합격했습니다. 대학 시절 학생운동에 몸 담기도 했지만 길지는 않았습니다.

변호사가 된 뒤 그는 민주사회를 위한 변호사 모임(민변) 사무차장을 지내면서 사회적 약자를 대변하는 데 적극적으로 나섰습니다. 참여연대 부집행위원장도 맡으며 진보 시민단체에서 큰 활약을 했습니다. 서민을 대변하고 이들의 억울한 사연을 해결하면서 '거리의 변호사'로 불렸죠.

박 의원은 세월호 유가족을 대변하는 변호사로 이름을 알리면서 '스타 변호사'로 자리매김 하게 됩니다. 세월호 가족대책위원회 법률대리인을 맡아 희생자 유가족들을 챙겼습니다. 국회 앞에서 시위를 할 때면 유가족들과 숙식을 함께 하며 야외 농성을 벌이는 등 누구보다 발 벗고 나섰습니다. 그 스스로 정치에 뛰어든 이유를 지지부진했던 세월호 특별법을 완성하고 유가족 지원 방안을 찾기 위해서 라고 할 정도였으니깐 말이죠.

박 의원은 변호사 시절 세월호 사건뿐 아니라 정부ㆍ여당과 싸우며 공익변론 활동을 도맡았습니다. 평택 미군기지 이전 부지 주민들을 위한 법률 지원, 한미 자유무역협정(FTA) 반대 상경 농민 저지에 대한 국가배상 청구소송, 쌍용차 해고 노동자 법률지원, 밀양 송전탑 반대 활동 법률지원, 용산 참사 희생자 지원, 국가정보원 대선개입 관련 국정원 직원과 경찰 고발 등 사회적 파장이 큰 굵직한 사건들을 해결하는 데 앞장섰습니다.

'거지 갑' 박주민의 왕성한 의정활동, 정치후원금은 부자 갑

박주민(가운데) 더불어민주당 의원과 민주사회를위한변호사모임, 참여연대 관계자 등이 2017년 11월 28일 국회 정론관에서 재정민주화를 위한 국민소송법안 발의 기자회견을 하고 있다. 서재훈 기자자

박 의원을 나타내는 또다른 말로 '거지 갑(甲)'이 있습니다. 국회에서 노숙자처럼 하고 다닌다고 해서 붙여진 별명인데요. 현장에서 늘 메고 다니는 그의 백팩에는 수많은 자료와 함께 물티슈와 칫솔 등 각종 세면도구가 들어 있습니다. 언제 어디에서 씻게 될지 모르기에 들고 다니는 겁니다. 잠자는 시간을 쪼개가며 일하는 그의 버릇 때문에 붙여진 별명이죠.

거지 갑과 함께 그의 '워커홀릭' 기질을 나타내는 별명이 또 하나 있습니다. 바로 '박주발의'입니다. 발의한 법안 수가 너무 많아 생긴 별명인데요. 박 의원의 이름과 법안 발의를 합쳐 부르는 말입니다. 20대 국회 때 공동발의에 이름을 올린 법안까지 더하면 무려 1,285건의 법안을 발의했습니다. 대표발의 법안만 해도 132건에 달했죠. 21대 국회가 열리고 두 달 동안 낸 법안만 해도 21건에 이릅니다.

눈에 띄는 의정활동 때문인지 박 의원은 정계에 입문하자마자 군계일학이었습니다. 지지자들은 그에게 십시일반으로 후원금 몰아주기로 화답했구요. 20대 국회가 열린 2016년에는 국회의원 후원금 계좌를 개설한지 4일 만에 한도 1억5,000만원을 채웠습니다. 이듬해인 2017년 국회의원 300명 중 가장 많은 정치후원금 모금액(3억4,858만원)을 모았죠. 거지 갑이란 별명과는 어울리지 않은 기록입니다. 초선으로서는 드물게 정치부 국회 담당 기자들이 선정하는 '백봉신사상 대상'을 수상하기도 했습니다.

야당ㆍ검찰과 정치 대결서 앞장선 1등 최고위원

이해찬(오른쪽) 더불어민주당 대표와 박주민 의원이 17일 오전 국회에서 열린 더불어민주당 최고위원회의에서 대화하고 있다. 뉴스1

박 의원은 2016년 20대 총선 때 당시 문재인 대표의 제안으로 입당한 총선 영입인사였습니다. 그래서 그는 '친문계' 의원으로 분류되기도 하는데요. 대중적 인지도와 친문계의 전폭적 지원으로 2018년 8ㆍ25 전당대회에서 당당히 '1위 최고위원'에 올랐습니다.

지도부에 입성한 배경 때문인지 박 의원은 최고위원이 된 이후에는 당내 현안 해결에 힘쏟았습니다. 거리의 변호사보다는 당 지도부 일원으로 자신이 맡은 정치적 역할에 충실했죠. 자신의 전문영역인 법리 해석을 다투는 일에 앞장섰습니다.

2019년 2월 김경수 경남지사가 드루킹 댓글조작 사건으로 1심에서 유죄로 구속되자 '사법농단 세력 및 적폐청산 대책위원회' 위원장을 맡아 사법부와의 전면전을 이끌었습니다. 조국 전 법무부 장관 이슈로 여권이 위기를 맞았을 때에는 강도 높은 검찰개혁을 주장하며 '검찰 공격수'를 도맡았죠.

특히 20대 국회에서 국회 법제사법위원회 민주당 간사였던 백혜련 의원과 함께 여권의 숙원 사업인 고위공직자범죄수사처(공수처) 설치 법안 처리에 누구보다도 적극적으로 뛰었습니다. 7일에는 국회에서 '공수처 설치 현황 점검 토론회'를 열며 공수처 입법 후속조치를 준비하고 있습니다.

박 의원은 20대 국회가 문 닫기 직전 당 지도부가 추진했던 '일하는 국회' 만들기에 집중했습니다. 박 의원은 당시 국회의원 국민 소환제 도입과 본회의 불출석 패널티 제도 도입 등을 골자로 한 일하는 국회 법안을 대표발의했습니다. 이해찬 민주당 대표가 툭하면 국회를 보이콧하는 제1 야당의 행태를 두고 볼 수 없다며 법안 추진을 공식화 한 뒤 박 의원이 결과를 만들어 낸 것이죠. 일하는 국회 법안은 20대 국회 때 임기만료로 자동폐기됐지만, 박 의원은 15일 국회의원의 국민소환제를 담은 '국민소환에 관한 법률안'을 다시 발의했습니다.

박 의원은 이날 당대표 출마를 선언하며 '현장과의 교감'을 강조했습니다. 거리의 변호사 시절 서민을 대변해 온 자신의 특기를 다시 살리겠다고 약속한 겁니다. 그는 출마 기자회견에서 "현재 당의 모습은 현장에 있지 않고, 국민과 과감하게 교감하지 못하며, 국민을 믿고 과감하게 행동으로 나서지 못하는 모습"이라며 "176석의 힘으로 사회적 대화의 장을 열고 거기서 얻은 해결책과 힘으로 야당을 설득하겠다.

현장으로 가고 발로 뛰어 사회적 대화의 장을 적극 열겠다"고 다짐했습니다. 2년 전대처럼 이같은 그의 외침이 국민의 마음을 흔들 수 있을지 다음달에 열릴 전당대회 결과를 지켜봐야 할 것 같습니다.


류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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