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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느 ‘명망가’의 죽음

입력
2020.07.21 22:00
27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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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의 죽음이 ‘최종적 형태의 가해’이기에 앞서, 명망을 얻은 공인은 이렇게 가서는 안 된다. 그건 그가 꿈꾸고 이루어낸 사회에 빚을 떠안기고 떠나는 거다. 그의 끝은 시대와 시민과 나란히 하지 못했다. 13일 고 박원순 서울시장의 영결식이 끝난 후 영정이 나가고 있다. (TBS 유투브 캡처)

그의 죽음이 ‘최종적 형태의 가해’이기에 앞서, 명망을 얻은 공인은 이렇게 가서는 안 된다. 그건 그가 꿈꾸고 이루어낸 사회에 빚을 떠안기고 떠나는 거다. 그의 끝은 시대와 시민과 나란히 하지 못했다. 13일 고 박원순 서울시장의 영결식이 끝난 후 영정이 나가고 있다. (TBS 유투브 캡처)


그의 죽음에 대한 수많은 논평과 칼럼과 분석과 코멘트와 댓글을 봤다. 사회학자, 철학자, 정치인, 법률가, 법조인, 종교인, 작가, 인권 운동가, 페미니스트, 유튜버, 인플루언서, 연예인 등등이 언론이나 자신의 소셜미디어에 운운했다. 필부필녀들은 뉴스의 댓글로, TV를 보면서, 술자리에서 한마디씩 거들었다.

한 사람의 죽음 앞에 전 국민이 ‘말’을 한 건 근간에 없던 일 같다. 그런데 그 말들은 갈가리 흩어졌다. 정파적 이해와 젠더 혐오와 험한 말들이 공방을 치렀다.

추모와 장례의 문제에서는 더 갈라졌다. 하얀 꽃상여에 덮인 그의 주검이 재가 돼 고향으로 운구되는 그 시간, 피해자는 변호인이 대신 읽은 기자회견에서 “저는 앞으로 어떻게 살아야 할까요”라고 외쳤다. 주룩주룩 비 내리던 그날의 극명한 이 대비, 그 풍경을 잊을 수 없다.

어떤 죽음은 사회를 통합하고 어떤 죽음은 사회를 분열한다. 언론인 임철순의 칼럼 ‘관 뚜껑이 덮일 때’에 빚진다.

“원래 공인의 죽음은 사회의 공공재산이며 후세에 전해지는 문화유산의 한 가지여야 한다. 아름답고 좋은 죽음은 길이 향기롭게 기억되고, 성숙하고 완성된 죽음은 사회 통합에 기여한다.”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공인이 된 ‘명망가’의 죽음은 역사적 평가와 시대적 가치, 대중의 심리에 큰 영향을 끼친다. 그래서 그 죽음 자체가 소멸이 아닌, 유산이라 표현한 것일 게다.

역사는 위인의 퇴장에 ‘의미’를 부여하지만, 사회는 그 죽음에 ‘감응’한다. 꼭 영웅이나 국가원수가 아니어도 그렇다. 정치인, 종교인, 학자, 작가, 예술가, 배우, 가수의 죽음도 그렇다.

2009년 2월 김수환스테파노 추기경께서 선종하셨다. 40만명이 넘는 시민들이 찬바람에 검은 옷깃을 여민 채 수㎞의 조문 행렬을 이루었다. ‘바보’의 마지막 얼굴을 보기 위해, 10초의 추모를 위해, 종교와 이념과 관계없이 5시간을 기다렸다.

추기경의 각막 기증이 알려지면서 그해의 장기 기증 희망 등록자가 두 배 반으로 늘었다. 1993년 11월에 열반한 성철 큰스님의 장례도 그랬다. 사회를 통합한 죽음이요, 무화가 아닌 불멸이요, 죽음의 ‘선한 영향력’이다.

그런데 ‘친절한 원순씨’의 죽음은 무언가. 그는 우리에게 분열의 씨앗과 대립의 날을 더 벼려놓고 떠났다. 국면 전환의 빌미를 호시탐탐 노리는 정치권은 논외로 치자. 누가 뭐라 하든 말든 이념과 정파성이 ‘양심수’ 수준인 이들, 자기들만의 기울어진 온라인 운동장에서 함께 노는 이들, 논란을 일으켜 존재감을 과시하는 게 버릇인 관심종자들, 자신의 발언이 가져올 이해를 정치적으로 저울질한 이들…. 막말과 물어뜯기의 한판이었다. 침묵은 선택적 분노로 공격받았다. 언론마저도 정파성에 충실해 포폄을 했다. ‘내 안에 내가 너무나 많은’ 인간 내면에 대한 가없는 연민만이 남았다. 그분뿐이 아니다. 대중의 사랑을 받던 노회찬 의원의 죽음도 우리를 허망하게 하지 않았던가.

한마디 고해성사 없이 간 그분은 이 분열을 예견했을까. 나는 모든 자발적 소멸 앞에선 엄숙하게 성찰하고 싶다. 하지만 이 죽음은 아니다. 적어도 한 사회의 축이었던 명망가의 죽음은 이래선 안 된다. 난 그래서 이 죽음에 동의해줄 수 없다. 명망가의 죽음엔 공소권 소멸이 없다. 그는 끝났지만 우리는 끝나지 않았다.



한기봉 한국신문윤리위원회 윤리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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