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주당뿐만 아니라 지도부와 원내, 국회 구조에 성인지 감수성을 갖는 조직 문화가 정착돼야 합니다. 전당대회, 원내대표 선출 등 원구성에서 여성 비율을 의무적으로 30% 이상으로 구성할 필요가 있습니다.”
지난 4월 오거돈 전 부산시장이 성추행 의혹으로 사퇴한 후 남인순 당시 더불어민주당 최고위원은 재발방지를 다짐하며 이렇게 제안했다. 주요 의사결정 대부분을 남성이 맡고 있는 조직 문화 속에서 성인지 감수성은 뒤떨어질 수밖에 없고, 성추행 등 비위에도 경각심이 덜할 수밖에 없는 구조 자체를 바꾸자는 취지였다. 이에 따라 민주당은 최고위원에 여성 비율을 30% 이상으로 의무화하는 방안을 논의했으나 최근 접었다. 의사결정과정 참여에 여성 만을 우대할 수 없다는 이유를 들었지만, 결국은 ‘말로만 여성 정치 참여 활성화’를 외친 것이란 비판이 제기된다.
민주당은 다음달 치러지는 전당대회를 앞두고 전국대의원대회준비위원회(전준위)에서 최고위 내 여성 비율이 30% 이상 되도록 노력한다는 문구를 당헌에 추가하는 방안을 논의했다. 하지만 전준위 일부 위원들의 거센 반발로 인해 결국 지난 14일 현행 유지로 결정됐다. 민주당 최고위원은 당 대표와 원내대표, 선출직 5명과 당 대표가 지명하는 2명으로 구성된다. 현재는 선출직 최고위원 5명 중에서만 여성 1명 이상을 포함하도록 돼 있다.
21일 한국일보 취재를 종합하면 '최고위 여성 30% 의무화'는 선출직에서 여성이 많이 나오지 않는 한, 당 대표 지명직 2인을 모두 여성으로 해야한다는 우려에 부딪혀 무산됐다. 위원장을 포함해 20명의 위원들이 논의하는 전준위에서 이 사안과 관련해 적극적으로 의견을 개진한 위원은 6~7명 정도였던 것으로 알려졌다. 의견이 하나로 모이지 않자 이달 초 일부 위원은 전준위 의결 전 최고위 의견을 들어보면 어떻겠느냐고 제안했다.
하지만 비공개 최고위에서 이해찬 당 대표가 30%를 강제하는 조항에 대해서는 반대한다는 단호한 뜻을 밝힌 것으로 전해졌다. 중진 여성 의원들이 이 대표를 설득했지만 꿈쩍도 하지 않았다는 전언이다. 이와 관련 전준위 관계자는 “현 지도부가 규정을 바꾼 뒤 적용은 다음 지도부가 하게 되니 그에 대한 부담은 없는지 물어보자는 취지였다”고 설명했다. 그런데 당헌ㆍ당규를 개정하는 회의는 통상 당 대표와 지도부를 선출하는 정기 전당대회 직전에 열린다. 때문에 ‘차기 지도부에 부담 되지 않는 시기’라는 설명은 궁색한 변명이라는 지적이 나온다.
이 밖에도 전준위에서는 여성 의원들의 세력이 다양한데 후보군을 어떻게 추릴 것인지에 대한 걱정, 선출직 5명 중 여성을 1명 이상 포함한 규정으로 오히려 전당대회에서 여성 후보가 득표에 불리하다는 얘기가 남성 의원들을 중심으로 나왔다고 한다.
21대 국회는 역대 최다인 57명의 여성 의원이 배지를 달았다. 최초의 여성 부의장도 탄생했다. 그러나 이 같은 변화는 비례대표 후보에 남녀 의무 배치 등 노력이 있었기에 가능했다는게 정설이다. 이와 관련 민주당의 한 관계자는 “당헌에 규정하고 있는 여성 30% 비율이 지켜지는 경우가 거의 없어 당 최고의결기구인 최고위원회의에서 만큼이라도 지켜져야 할 필요가 있다”고 주장했다. 민주당은 다음 전당대회에서 이 사안을 다시 논의하기로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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